▲ 뉴타운개발로 삶터에서 밀려난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자녀들이 현장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 신발을 빨아서 말리고 있다. 삶이 가혹해도 삶은 계속된다.(사진/한상봉 기자)

웃을 수 없는 먹고사는 밥벌이

‘민간인 사찰’이란 말이 하도 돌고 돌아 입에서 단 냄새가 날 정도다. 누구는 그것을 가지고 말장난을 한다고 ‘민간인 사찰’은 조계종 산하의 절이 아닌 개인소유의 사찰을 말한다고 할 정도이니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사찰의 피해자였던 김종익 선생에게는 결코 웃을 수 없는, 먹고 사는 밥벌이를 송두리째 빼앗긴 인생의 낭떠러지 같은 일이었다.

이번 일에 등장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관직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부 핵심들의 명패가 극히 일부이지만 쏟아져 나왔다.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 총리실 국무차장·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청와대 기획관리 비서관· 전 청와대 기획 조정 비서관 등등이다. 거기에 단체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선진국민연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 그것이 모자랄까 봐 옵션으로 등장한 용어인 영포목우회와 왕비서관 등은 일종의 덤이지만 그것이 국정 난맥을 가져오는 핵심이기도 했다.

사람들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

민간인 사찰이라는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린 일에서 비롯된 사건이 전개과정을 거치면서 정부여당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가든, 혹은 임기의 반환점을 넘은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가든 그것은 구중궁궐에서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쏟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몫이라고 해두자. 필자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니 그들의 싸움에 들어갈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다.

아침에 눈 뜨면 나가야 하는 직장과 일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이유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라면, 가족들의 먹는 것· 사는 집· 교육비· 의료비 등의 문제만 아니라면 현재의 직장을 다닐 가장이 얼마나 되며, 들판에 나가 농사를 짓거나 목숨을 바다에 맡기고 물고기를 잡을 어부가 얼마나 될까?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먹고사는 문제 말고 현재의 우리 자신들 위에 얹혀 있는 삶의 무게가 또 있을까?

그런가 하면 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하고 신문의 1면이 모자라 관련기사가 2면 3면 4면을 연일 채우는 사람치고 그 자리 물러나서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할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자신은 억울하다고 기자들 앞에서 울먹이거나 도끼눈을 치켜드는 사람은 그 자리 물러나더라도 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이나 장관하다 물러나면 백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대학교수가 되고, 이런저런 기관 감사나 이사장이 되고, 검사나 판사가 물러나면 변호사 되고...... 그들에게는 이미 먹고사는 것이 고민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부가 축적된 것인가? 언제? 어떻게?

‘늘어진 상팔자’ 그댄 누구인가?

세상에는 두 부류가 있다. 그러나 두 부류의 비율은 인구의 50대 50이 아니라 20대 80이라는 불균형으로 이루어진 두 부류이기에 온당치 못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일차목표가 아닌 20%에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일까?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 마당에 무슨 욕심이 있으랴마는 언제나 욕심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레크리에이션처럼 삶을 즐기는 사람들, 권력과 명예가 눈에 어른거려 다른 이들의 먹고사는 일이 저급한 생존경쟁으로 보이는 사람들, 새벽밥 먹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뒤처진 자들이 거치는 어떤 통과의례처럼 여기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란 구원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보이는 사람들, 언제까지나 “이대로”를 외치고 싶은 사람들 등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다가온 한 끼의 무게를 안다면 먹고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다. 그대는 어디에 속하는가? 혹시나 그대야말로 먹고사는 문제 앞에 어떻게 하다 보니 ‘늘어진 상팔자’는 아닌지?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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