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의 자료는 9월 9일자 가톨릭신문 2565호와 평화신문 936호이다.


‣ 죽은 자가 누구인가?
흔히 말하는 부음기사를 가톨릭신문에서는‘위령기도를’이란 이름으로 21면에, 평화신문은‘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란 이름으로 19면에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교회관련 신문이기에 성직자의 선종에 대한 내용이나 때때로 아주 유명한(?) 평신도외에 그 꼭지에 등장하는 고인들은 주로 성직자의 부모님들이다. 한평생 자식을 성직에 봉헌하고 묵묵히 기도 속에 사신 부모님들의 생애는 많은 사람의 위안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일반신문의 부고와 종교신문의 다른 점은 이런 곳에서 짙게 배여 나와야 한다. 천주교회에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교리적 혹은 신학적으로 [미디어 흘려보기]에서 다루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주 두 신문의 공통 1면 톱기사인‘생명수호대회’와‘죽음’의 가치는 결코 다르지 않다. 생(生)이라는 관문에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의 가치는 어느 잣대에서나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 집에 초상이 나서 문상을 가서는 한참을 울다가 “그런데 누가 돌아가셨나요?”라고 묻는다는 우스개는 남의 말이 아니다. 부음기사가 아닌 단순한 부고 속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하여 부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자들에게 조문을 잊지 말라는 부고는 아닌가?

우리 언론사들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지만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신문사에서 ‘부음 쓰기’는 초년기자들의 통과 의례였다고 한다. 신입 기자들은 부음기사 작성을 통해 사망자의 정보를 얻어내고 정확한 기사를 쓰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또 때로는 부음쓰기가 기자의 전문영역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 2006년 9월 20일 설원태-부음기사의 양과 음) 일반신문이 부음기사에 죽음이 아닌 그 사람의 생을 담으려는 노력에 비해 오히려 그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신문이 일부 고인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이 관행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의 세 가지 부고기사를 비교하여 보시라.

A:정00씨가 28일 오전 7시30분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00씨, ∆∆씨 등 두 아들이 있다. 고인은 시골의 소박한 농부였다. 주변 여건 상 활발한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유족들은 고인에 대해 "아들 잘 되는 것과 농사 잘 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 없는 평범한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00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에 진행되며, 고인은 경북 김천의 선산에 묻힌다.

B:000신부(00교구 00성당)의 부친 000 옹이 8월 21일 새벽 1시경 선종했다. 향년 72세. 장례미사는 23일 00성당에서 봉헌됐으며, 유해는 경기도 수원교구 안성 공원묘원에 안장됐다.

C:000(00교구 안식년) 신부 모친(000, 77). 장례미사 : 6월 26일 대전 00성당, 장지 : 성환 천주교회 공원묘지.

A기사는 한 지방신문의 부음기사이고, B기사는 가톨릭신문의 부음기사이다. C기사인 평화신문은 아예 간략한 전보문이다. A기사의 감동이 다르지 않는가? 유족의 지위를 떠나서 고인을 중심으로 한 짧은 기사이지만 고인의‘일상’을 압축하였다는 것이 눈물겹지 않은가? 아마도 어느 신문 할 것 없이 지명도가 떨어진 평범한 사람에게 기사를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보통 ‘벼룩시장’식의 한 줄 기사에 그 사람이 아닌 누구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색을 낸다. 하기는 그 ‘누구’에도 끼이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조차 애당초 꿈도 못 꿀 일이다. 교회언론은 지금 현재 부고의 대상뿐 아니라 시골공소를 위해 평생을 묵묵히 사신 분이나 각종 교회관련 단체에서 주어진 소임에 노력한 많은 분들의 귀천에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일상’에서 신앙이 나오고, ‘일상’이 죽음으로 이어지며, 그 죽음이 부활의 시작이기에 새로운 교회언론의 첫발을 무덤에서 시작한다. 교회종지기 권정생 선생님이 그립다.
 

 

/김유철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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