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창립 28주년 창립기념 예배 봉헌하다

지난 5월 1일은 노동절이면서 동시에 한국 개신교의 유일한 수도회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창립일이기도 하다. 디아코니아 자매회는 현재 천안 병천면, 옛 한국신학연구소 자리에 모원(母院)을 두고 있으며, 전남 무안에 분원이 있다. 모두 10여 명의 언님(자매)들이 수도허원을 하고 살고 있는데, 올해로 28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천안의 모원에 있는 ‘영성과 평화의 집’ 3층 본당에서 창립예배를 가졌다. 이날 예배에는 이현주 목사가 초대 설교자로 오셨으며, 10명의 디아코니아 언님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단비교회의 정훈영 목사와 자녀들, 그리고 손성현 박사의 가족들만 참석한 오붓한 자리였다.

안병무 박사와 더불어 만든 공동체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는 1977년, 10여 명의 개신교 미혼 여성들이 민중신학자였던 안병무 박사(전 한신대 교수)와 서울 서대문 기독교장로교 선교교육원에서 '공동체'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소외된 이들과 아픈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수 정신으로 함께 일하며 공동체 삶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그들은 몇 차례 준비모임을 더 갖고 1980년 1월, 서울 영등포에서 4명의 자매가 3개월간 공동생활을 한 끝에, 진정한 공동체적 삶을 위해 한 '공간'에서 살면서, 각자의 '일과 삶'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출가'를 결심했다.

1980년 5월 1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 여성숙 선생이 있던 한산촌 결핵 요양소의 여자병동을 숙소로 만들고, 김옥태, 김정란, 노영순, 이영숙, 한은숙 다섯 자매를 주축으로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가 출범하였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 병든 이, 눌린 이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이웃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받으며 그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참 이웃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참된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디아코니아(DIAKONIA)의 삶임을 믿습니다. 아멘.

―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우리의 신조' 중에서


어진 삶을 갈망하다

디아코니아(diakonia)란 '시중들다', '봉사하다'는 의미를 가진 디아코네인이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 봉사, 구제, 혹은 섬기는 일을 의미한다. 원래, 개신교의 디아코니아 운동은 1836년, 독일의 라인 강변에 있는 카이저져스베르트 지방에서 시작됐다. 산업의 발달로 도시로 몰려든 청소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회봉사에 관심이 없었던 당시의 교회제도 안에서, 개신교 목회자인 프리드너 목사가 '돌보는 일'을 시작했고, 젊은 여성들이 이 섬김과 봉사의 삶에 뛰어들었다. 1946년 이후 설립된 세계 디아코니아 연맹에는 현재 33개국, 72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다. 독일 유학 중 '구라파에서 교회는 죽었다'고 절망하고 있던 안병무 박사는, 이 디아코니아 여자공동체의 활동에서 희망을 보았다.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는 1982년 독일 카이저베르트 디아코니아 연맹에 가입, 83년에는 세계 디아코니아 연맹에도 가입했다.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들은 서로를 '언님'이라고 부른다. '언'이란, 한자 어질 인(仁)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이다. '어진', '덕이 있는', '착한'이라는 뜻을 가졌으니 '언님'은 '어진 님'이 되는 셈이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라는데, 어쨌거나 디아코니아 '언님'들은 그 '어진 삶'을 살려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인간을 섬기는 여성들

대부분이 30대 전후였던 디아코니아 언님들은 1982년, 평생을 독신으로 살겠다는 종신서원을 드리고, 한산촌 결핵 요양소를 운영하면서 1983년부터는 농촌 보건 및 지역사회 개발사업을 병행했다. 무의촌에 가서 보건진료소를 짓고, 의료봉사를 하고, 마을 목욕탕, 어린이 집을 만들고,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오지를 '자립 마을'로 키워 가는 일을 하였다.

무안에 있는 공동체에선 1998년부터 목포시에서 위탁받은, 영세 어르신을 위한〈행복노인복지관〉을 운영해 왔는데, 이곳에선 매일 점심을 제공하고 밑반찬을 싸주는데, 150명∼200명 정도의 노인이 모여든다. 재가 복지사업도 하는데, 목포시 전 지역에 거주하는 영세가정, 환자,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생계비, 의료비 지원과 가정방문, 상담 등을 하고 있다.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영세 가정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이다.

자기를 비우는 영적 성장을 위하여

그러나 활동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수도생활이다. 그래서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디아코니아 모원을 세우게 된 것이 1998년의 일이다. 예수께서도 병자들을 고치신 후엔 물러나 기도하셨으니, 봉사활동과 물러나 기도하는 영성 생활이 균형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이 당시 마침 안병무 박사의〈한국신학연구소〉가 서울로 이전함에 따라서 비어버린 그 자리에 수련원을 지은 후, 디아코니아 자매들은 '마리아와 마르타의 삶'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천안 병천면의 모원은 '영성과 평화의 집'을 비롯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어, 조용한 기도(피정)나 교회수련회를 원하는 이들에게 프로그램과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과 학습, 방문객을 돌보는 일도 녹록치 않다. 디아코니아 자매회 언님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에 묵상기도로 시작하여 오전과 오후에 각자 맡은 소임을 다하고, 저녁식사와 묵상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창립기념 예배를 위해 준비한 '영성과 평화의 집' 현관에는 그들이 각자 밝혀놓은 촛불이 만다라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으며, ‘무아(無我)’라고 새겨진 큰초가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영성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디아코니아 자매회에서는 성직자 없이 언님들이 직접 빵과 포도주를 주고 받으며 성찬례를 행한다. 물론 성찬례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세례 여부를 묻지 않는다. 식탁에 함께 하려는 마음이 곧 그분을 받아 모시는 자격이라고나 할까.

척박한 개신교 토양에서 영성생활을 꿈꾸다

이현주 목사

 

 

 

 

 

 

 

 

 

 

 

 

이날 만나본 김정란 언님(영성과 평화의 집 원장)은 그동안 가장 어려운 점이 다양한 기질을 지닌 언님들이 더불어 활동을 하고 충분히 소통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활동의 바탕에 영성적 토대가 든든히 서야 하는데, 개신교회 안에서는 수도전통이 없기 때문에 영성생활을 배울만한 데가 여의치 않아서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피정센터나 수도회를 찾아다니며 배울 점을 찾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예수회의 ‘말씀의 집’에서 피정도 하고 사랑의 시튼 수녀님들에게 자문을 청하기도 하였다. 이제 어느덧 28년이나 되었는데, 많이 안정되었고 활동과 관상생활이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한다.

자매회가 자리잡은 수도원은 장식이 별로 없이 담백한 모습이었다. 본당에도 나무로 만든 간단한 십자가와 꽃다발을 빼고는 다른 장식이 없어 ‘여백같은’ 공간이었다.

염려 말고 그 길을 마저 걷자

이날 손님으로 초대된 이현주 목사는 예수께서 죽는 순간에 “다 이루었다”하신 말씀을 되새겨 주었다. 죽는 순간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걱정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 역시 그런 말 못하고 “도중에 있다”고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우리의 희망사항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길 위에서 계속 걷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현주 목사는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전 것을 다 버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만나고 나서 율법으로 배운 예전의 가치관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처럼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기를 갈망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분이 행하시고 바오로가 따라걸었던 길을 반복해서 걷고 배우려고 자매회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비워서 나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그분은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우리가 그분으로 꽉 차 버리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오늘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립 기념예배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한 뒤에 열린 피로연에서 언님들은 청소년들과 살면서 배운 ‘난타’ 공연을 선보였다. 언님들은 정훈영 목사의 막내딸이 선물한 손수건과 양말을 받으며 참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수건을 허리에도 묶고 머리에도 써보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들은 디아코니아 자매회의 29해를 향해 다시 걸음을 시작하는 것을 축하하였다.

언님들의 난타공연

 

 

 

 

 

 

 

 

 

 

 

 



/한상봉 20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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