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상 위에 두 개의 신문이 놓여 있다. 2560호 가톨릭신문과 931호 평화신문이다.
교회와 관련한 많은 이들이 대안언론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 일까?

2. 1927년에 창간한 가톨릭신문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가톨릭신문의 이념은 암울했던 일제식민통치하에서 민족 청년 선각자들에 의해 1927년 4월 1일자로 창간된 천주교회보의 창간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간사시인 소식보도(消息報道)는 한국교회 소식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소식 등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속하고 올바르게 전하고, 의견교환(意見交換)은 교회 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장으로 교회발전에 기여하며, 교회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여 보조일치(補助一致)의 정신으로 민족복음화을 이루는데 앞장 서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당시의 이념을 바탕으로 매스 미디어를 통한 교회의 일치와 단결, 교회의 발전과 민족복음화를 위해 소식보도, 보조일치, 조국성화의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홈페이지 참조)

3. 그런가 하면 1988년에 창간한 평화신문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화신문의 이념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있는 소통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체현하여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 하는 데 있다. 우리는 가톨릭 언론인으로서 방송과 신문을 통해 부여된 사명을 다한다.
-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한다.
- 우리는 윤리와 도덕성을 고양하여 자정기능을 촉진하고 사랑과 치유에 앞장선다.
- 우리는 모든 사실에 대해 진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제작, 보도한다.” (홈페이지 참조)

4. 가톨릭신문에서 ‘가톨릭’을, 평화신문에서 ‘평화’를 품어내기를 바란다. 기사의 취재와 편집이 얼마나 스스로가 밝힌 이념에 맞는 것인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 안에 ‘하느님 백성’이라 할 교회 구성원의 목소리가 골고루 담겼는지,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조직으로서의 교회와 율법으로서의 교리와 계층으로서의 신분에 막혀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애초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기 바란다.

5. 모니터의 기본방향은 두 신문사 공통주제에 대한 보도의 차이점 혹은 단독보도에 대한 비평은 물론이지만 일반 신문 모니터와는 달리〈외독의 미디어 흘겨보기〉에서는 외부 필진의 기고 역시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지명도가 있는 인사들이 일반신문에서는 여러 사회 계층을 의식하여 조심조심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는 달리 교회신문에서는 왕왕 일방적인 의견을 칼럼이나 여론이란 이름으로 기고를 하며 신문사들은 “외부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란 방패막을 활용하여 정작 자신들의 할 말을 대신하게 하는 것 또한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이슈 역시 다루고자 한다.
 

6. 두 신문을 모니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징적인 일이지만 여름휴가 관계로 7월 29일자는 평화신문이, 8월 5일자는 가톨릭신문이 휴간을 하는 관계로 두 신문을 대상으로 공평하게 모니터 하는 것은 한 주간 뒤로 미루었다.
 

두 신문 모두가 독자들에게 거저 나누어주는 무료신문이 아니라 정해진 구독료를 내고 보는 유료신문이기에 독자들은 소비자이다. 소비자의 정당한 제품에 대한 모니터링이 더 건전한 회사와 제품을 만드는 바탕이 될 수 있기에 이제 시작하는〈외독의 미디어 흘겨보기〉가 서로에게 좋은 만남이기를 기대한다. 두 신문사의 발전을 기원한다.

 

/김유철 2007-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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