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요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참으로 많은 신자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교회 이야기,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옛날 같으면 성격 탓에 가까이서 듣지 않았을 것들이다.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그런 이야기들이 재밌고 꽤 영양가도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제 일부러는 안 찾지만 맞닥뜨리면 즐긴다.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반성되는 것이 많다. 가장 많이 뉘우치게 되는 것이 책상머리에서 배운 신학으로 몸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재단하던 일이다. 내가 흔히 범한 잘못은 항상 성당과 교회행사장을 가득 메우는 이들 때문에 교회가 쇄신되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당당히 비판하고, 정 안되면 아예 성당을 비우게 해서라도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나로서는 언제나 저자세로 일관하는 신자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그런 모습들이 보기 싫어서 본당에서 하는 행사에 일체 참여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 신자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짧았고 나 중심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신자 분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큰 울림을 보게 되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고독하고 허무한가를 깊이 느끼게 될 때이다. 교회와 사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내용들이 참으로 간절한 것을 느낄 때도 종교에 대한 멋진 정의가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이런 내적인 갈망을 교회 안에서 풀지 못하고, 그저 여기저기 공부다, 기도회다, 봉사다 하면서 몰려다니고 있다. 마치 자신의 내면과 일상에서 찾지 않고 기사이적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기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신자들 간의 갈등, 사제와 수도자에 대한 실망을 이유로 좌절하거나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아예 교회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분들도 많이 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교회 또는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느낀다. 교회는 온갖 사목의 이름으로 신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려고 하는데 실상 요구되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친구가 되어 들어주거나 함께 있어 주는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까닭이다.

안타까운 것은 신자들이 이런 욕구를 사제들을 통해 실현하고 싶어 하는데 여건이 그리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사제들은 바쁘고, 바쁘지 않은 경우라도 이런 욕구를 읽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술을 마시거나 관계에 매달리게 된다. 과연 교회가 신앙으로 유지되는 것인지 이런 관계의 사슬 때문에 유지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이 자신과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도 발견한다. 이런 욕구를 결코 남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새삼 종교와 신앙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는 신자들의 시름이 곱절 더 해진다. 취직 못한 자식 걱정, 늘어만 가는 빚 걱정, 건강 걱정, 준비 안 된 노후에 대한 불안, 삐걱거리는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은 참으로 시름에 겹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심정 간절할 것이다.

이런 분들의 공허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도 친구가 되어주기는 커녕 힐난하던 일이 이제 참으로 송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물론 교회활동을 자기실현의 기회로 보는 분들도 적지 않게 본다. 이 분들에게서는 경제적 풍요가 주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극히 소수이다. 여전히 많은 분들은 내적 공허함과 싸우고 있고,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런 분들에게 과연 교회와 신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사목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가 요즘 나의 기도제목이다.

나는 공허한 신학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사목을 꿈꾼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물론 그 이전에 내가 먼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사람인지 하느님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매일 스스로를 낮춰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미물들에게 까지 몸을 낮추는 겸손과 자기 비움을 실천하는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을 보며 자신에 대한 채찍질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2008.10.8.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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