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에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가 창설한 오푸스 데이(Opus Dei)는 '하느님의 사업'이란 뜻으로, 스페인에 뿌리를 두고 페루 등 중남미 지역과 아프리카 일부, 로마와 교황청 안에서도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교회 내 가장 강력한 보수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비판할 수 없는 '아버지'로 숭배되는 에스크리바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아버지'라고 불리는 창설자인 에스크리바 몬시뇰은 회원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1975년 선종하고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재직하던 1992년 복자품에 올랐고, 10년 후인 2002년 성인품에 올랐다. 창설자가 성인품에 올랐지만, 오푸스 데이 자체는 여전히 '비밀세계'에 갇힌 채 폐쇄적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처럼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세력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에스크리바의 후계자였던 폴틸리오는 "우리는 그분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하고 뉴욕타임지에 답변하기도 했다. 

에스크리바는 1928년 미사를 올리다가 오푸스 데이를 만들라는 환상을 경험했는데, 그 환상은 스페인식 금욕주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망과 결합되었다. 특히 그의 고행은 스페인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종종 욕실 벽에 피가 튀길 정도로 심하게 자기 몸을 채찍질 했다는 보고도 있다. 그는 평생 실리스(예전 수도자들이 입던 말털로 짠 셔츠)와 살갗을 찌르는 뾰족한 끝이 달린 쇠사슬을 걸치고 다녔다.

에스크리바는 스페인 내란을 경험하면서 프랑코의 군대가 장악하고 있는 진영에서 999개의 격언을 모은 책인 <길>이라는 오푸스 데이의 영적 안내서를 썼다. 스페인 내란으로 그는 전투적 반공주의를 내면화했으며, 이후 상류층에 편입되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귀족칭호를 얻어내고, 엄격한 위계질서를 오푸스 데이에 적용했다. 페니 러녹스에 따르면, 에스크리바는 자신을 "교회 내의 부패에 맞서 싸우는 현대의 기사"로 여겼다고 한다. 여기서 교회내 부패란 "교회 안의 자유주의적 경향과 민중에 대한 당파성, 권위적 교회에 대한 쇄신 요구 " 등이다. 

한편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행정부와 경제계, 금융계 등에 진출할 지식인, 엘리트들을 필요로 했다.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개인의 완덕을 추구하고,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서약하며, 남성과 여성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다.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은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이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방적인 태도에 반발하고 있다.

엄격한 위계조직, 오푸스 데이

1982년 바티칸으로부터 오푸스 데이가 인가를 얻은 뒤로는 자체적으로 신학교를 세워 사제를 배출하고 있으며, 바티칸의 인명부인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정식명칭은 '성 십자가와 오푸스 데이(Holy Cross and Opus Dei)이며, 스스로 평신도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교황청 인명부에는 사제와 신학생들의 이름만 기재되어 있을뿐 공식적으로는 회원 가운데 평신도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오푸스 데이는 스스로 '평신도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오푸스 데이 사제단인 '성십자가 사제회'가 주도하고 있다.

교구 소속의 교구 사제들은 협력자 이상의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오푸스 데이 사제들은 자유주의적 교회분위기에 영향을 받기 전인 소년기에 오푸스 데이에 영입되어 자체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된다.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오푸스 데이 소속 사제가 아닌 다른 사제들에게는 고백성사를 볼 수 없다. 성사가 일상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스페인의 경우엔 오푸스 데이 사제들의 성사 독점은 회원들에 대한 심리적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전한다. 

'성 십자가 사제회'의 사제들이 오푸스 데이의 영적 지도자로 역할하지만, 오푸스 데이의 회원들은 대부분 평신도들이며 엄격한 위계질서로 짜여져 있다. 

독신생활을 하는 정회원들은 중상류층에서 선발되며 남녀 별도로 공동생활을 해야 하며, 새로운 회원 모집에 열의가 있어야 하며, 법학이나 회계학 등 전문직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거기서 나온 수입 역시 오푸스 데이에 귀속된다. 이들은 잘 정돈되고 안락한 센터에서 살며, 훌륭한 옷차림을 요구받으며, "나를 따르시오, 그러면 물질적 성공과 영적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로 새로운 회원을 맞아들인다. 

준회원들은 기혼자들이며, 정회원의 지도를 받으며, 오푸스 데이 센터에서 생활하지 않는 노동계급이나 대학생, 일반 직장인들이 포함되는데, 엄격한 고행이나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 아래 있는 보조회원은 시간의 일부만을 오푸스 데이에 헌신하는 기혼자들이며, 수입의 10%까지 기부하고, 고해성사와 '속마음 터 놓기', 오푸스 데이 사제들이 진행하는 피정에 참석한다. 

에스크리바는 기혼상태를 찬양하지 않았는데, "결혼은 사병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그리스도 군대의 장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과 달리 생식은 종족보존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것 없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협력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오푸스 데이에 동조하면서 재정적 기부를 하는 게 보통이다. 

정치, 교육, 언론, 금융계의 보이지 않는 손, 오푸스 데이 

한편 오푸스 데이는 회원들에게 특정한 정치이념을 내세우지 않지만, 스페인 내란 당시에 파시스트였던 프랑코 장군을 지지했으며, 1956년 프랑코의 경제개발계획을 지지하여 스페인에서 정치세력이 되었다. 프랑코 통치 말년에는 19명의 각료들 가운데 10명이 오푸스데이 소속이었다. 그러나 1973년 프랑코가 죽은 뒤에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었으나 경제 금융게에서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스페인 최대의 은행의 이사 브로사와 은행장 발스는 오푸스 데이 정회원이었다.

한편 스페인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오푸스 데이는 칠레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는데, 이들은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을 실각시킨 미 CIA 지원하의 군부쿠데타를 지지했으며, 그들 중 하나인 헤르난 쿠빌로스는 피노체트 장군 휘하의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페니 러녹스에 따르면, 오푸스 데이는 그 수입과 정력의 대부분을 스페인,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의 중산층 자녀들을 위한 고등학교와 대학에 쏟고 있는데, 교과과정은 주로 교육, 언론, 경영, 법학 등이며, 주류 평신도 사회에 침투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오푸스 데이가 가장 깊이 침투해 있는 나라는 페루이며, 주교 가운데 상당수가 오푸스 데이 소속 사제들이다. 다른 중남미 지역 역시 교황청의 지원으로 오푸스 데이에 대한 동조자들이 주교로 임명되고 있다. 최근에는  멕시코 출신 오푸스 데이 소속 고메즈 대주교가 미국 LA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페니 러녹스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오푸스 데이는 전 세계에 487개의 대학과 고등학교, 52개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694종의 간행물, 38개의 통신사와 광고대행사, 그리고 12개의 영화사와 필름 배급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한다. 오푸스 데이는 정회원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밀어주며, 그들을 통해 대학, 신문사, 기타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히 정회원들은 세속적으로 성공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평신도 영성과 세속적 성공

오푸스 데이는 1967년 10월 8일자에 행한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자'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열망, 그대의 일, 그대의 사랑이 있는 바로 그곳이 날마다 주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가장 물질적"인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 자신을 성화하고 하느님과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자기 직업과 일을 통해 일상을 성화하자"는 훌륭한 말의 이면에는 자기성화와 세속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동시에 얻으려는 자기 모순이 내면화되어 있다. 이는 중세적 고행을 통해 육신의 욕구를 감퇴시키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찾음으로써 거룩한 인간이 되고, 그 결과로 세상을 성화시켜야 한다는 고결한 이상이 담겨 있지만, 오푸스 데이는 그 일을 고결한 귀족들과 사회적 엘리트들의 '힘'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기에 불가피하게 회원들의 '세속적 성공'을 축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들의 세계관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택했던 세상을 향한 개방성에 분개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유주의가 신앙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믿기 때문에 공의회 이전의 전통적 교회로 회귀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인상을 풍긴다. 알다시피 오푸스 데이는 회원들이 현대세계로부터 오염될까 두려워하여 끝없이 '진리의 독점적 소유자인 오푸스 데이 사제'들에게 속을 다 털어놓고 날마다  양심성찰을 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서적에 대한 엄격한 검열을 통해 읽어야 할 책과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을 여전히 구분하고 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우리에겐 신학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겐 교도권의 지침만이 존재하며, 교황과 교도권에 대한 충실성을 담보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자기 공동체에 대한 일체의 의심을 차단시키는 오푸스 데이는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위험하다. 

한국사회에서 오푸스 데이와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통일교다. 통일교는 민중신학자인 서남동 목사조차 혹했을 만큼 대단한 신학적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교주 문선명 개인에 대한 우상화, 다단계식 회원영입 방식, 신앙과 물질적 성공의 동시 추구, 종교의 기업화, 세력 확장 논리, 비밀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비밀주의는 공동체의 건강성을 검증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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