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적 평화운동, 사제-수도자 중심으로 간다
-안중근, 또 다른 평화 아이콘

지난 6월 19일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한 <종교-폭력-평화> 심포지엄에서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의 발제를 논평한 박준영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은 한국 천주교에 평화문제에 접근하는 근본주의가 대두하고 있는 현실을 진단했다. 그 논평문을 싣는다.  -편집자

▲ 박준영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현대 교회의 평화 근본주의 경향

20세기 가톨릭교회의 평화 교리는 초기 그리스도교회에서 보였던 평화 근본주의로의 회귀 성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그 원인은 세 가지다. 

(1) 핵전쟁, 인류 자체가 멸망하는데 방어든 뭐든 전쟁 자체가 안 된다

첫째는 인류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핵전쟁과 인류 절멸의 위험이다. <지상의 평화>는 1963년 4월에 발표됐다. 반년 전인 1962년 10월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핵전쟁 위기를 낳았던 쿠바 위기(1962. 10)가 있었다. 인류 절멸의 생생한 공포가 세계를 휩쓸었다. 이에 따라 서양 중세에 등장한 '정의의 전쟁' 이론 같은 것조차, 전체 인류의 절멸이라는 위험 앞에서는 희미한 그림자가 됐다.

제3차 대전이 일어나면 핵전쟁이 될 것이 200% 확실한 상황에서는 정의도, 심지어 종교 자체도 평화의 발아래에 놓이게 됐다. 평화가 모든 인류 공통의 종교가 된 것이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 전통에서는 옛부터 전쟁 때마다 반전 운동은 있었지만, 1960년대 미국의 월남전 반전 운동은 핵전쟁과 인류절멸의 위험이라는 더욱 강력한 도덕적, 현실적 근거가 있었기에 그 어느 반전 운동보다 호소력이 강력했다.

1980년대 유럽에서의 반핵 평화운동은 거대한 소련 기갑부대를 전술 핵무기로 막는다는 나토의 전략이 기정사실이 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 반핵운동은 자연스레 생태주의로 연결된다. (독일인들이 반핵운동과 환경운동의 선두에 선 것은 바로 독일이 전술 핵무기가 펑펑 쓰일 제3차 대전의 주무대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2) 교회가 망해서 잃을 것이 없게 됐다

두 번째 원인은 가톨릭 교회의 본산인 로마가 1871년에 이탈리아에 점령되고 따로 하나의 주권 국가였던 교황령이 없어진 것이다. 이로써 이전의 교황들이 교황령의 국가 원수로서 교황령 자체부터가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전쟁을 용인했던 반면, 그 이후의 교황들은 그런 부담이나 그럴 이유 자체가 없어졌으므로 홀가분하게 도덕적 차원에서 전쟁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강한 도덕적 권위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제1차 대전 당시 교황인 베네딕토 15세는 전쟁 중지를 호소하며 평화주의자로 부각되는데, 이때부터 교황청은 또다시 국제무대에서 “도덕적 권위”로서의 발언권을 점차 회복하게 되며, 지난 번 교황인 요한바오로 2세 때 가톨릭교회의 세계적 권위는 다시금 절정에 이른다. 지금 교황이 된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 명칭으로 베네딕토 16세(2005-현재)를 취한 것은 베네딕토 15세를 모범으로 해서 자신의 교황 임기는 평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3)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셋째는 현대 문명의 발달로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바뀐 점이다. 현대의 전쟁은 무기의 장거리화, 자동차화, 피해의 거대한 규모 등에 비추어 선공자의 이점이 아주 크다. 방어자는 첫 공격을 당한 후 피해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으며, 아예 반격의 기회조차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 방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적의 공격 징후가 뚜렷할 경우의 선제공격이 “방어” 행위로 정당화되며, 이것이 방어적 선제공격 개념이다. 이에 따라 단순히 누가 선공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고전적인 “방어 전쟁” 개념은 적용이 어렵다.

“방어 전쟁” 개념으로는 비난할 수 있는 전쟁이 많지 않다. 오히려, 방어 전쟁 개념은 전쟁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화해주는 것이다. 이에,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고매한 종교로서는 거의 모든 전쟁을 승인하거나, 아니면 전쟁 자체를 아예 거부하는 방향으로 전쟁에 대한 입장을 재정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근본주의적 반전사상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정당 방위로서 방어전쟁을 인정하기는 한다. (간추린 사회교리, 500.501항) 그러나, 교회는 평화주의 진영에서 많은 새 지지자와 존경을 발견하고 있으며, 이에 고무되어 평화 근본주의적 발언이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남북한 간의 휴전 상태인 남한의 주교들조차도 “우리는 모든 전쟁을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문구는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북한 남침 같은 경우의 방어 전쟁까지도 반대한다는 뜻이 된다.

▲ 세상의 평화를 갈망하던 교황 요한 23세

평화는 정의의 열매

<간추린 사회교리>에 정리돼 있기는 하지만, 현대 가톨릭교회의 평화 교리의 기초가 된 문헌이 둘 있다. <지상의 평화>와 <민족들의 발전>이다.

먼저 <지상의 평화>는 가톨릭 교회를 개혁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가 1963년 4월에 공의회 1차 회기를 마치고 남긴 마지막 회칙으로서, 공의회 자체와는 상관없으나, 공의회 이후 교회의 실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두 달 뒤인 1963년 6월 3일 죽었고, 공의회는 후임자인 바오로 6세에 의해 재개되어 1965년에 끝났다.

발표자가 설명한 2003년 2월의 주교회의 성명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에서 유일한 인용처는 <지상의 평화>다.

“군비 증강이 또 다른 군비 증강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110항 참조). 강대국들이 무기 산업에 쏟아 붓는 비용의 백분의 일만 들여도 전세계의 기근과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세계의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그해 10월에 주교단이 내놓은 두 번째 이라크전 반대 성명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2003년 10월 13일)에서도 <지상의 평화>는 평화 교리의 기초임을 알 수 있다.

“올해 첫날,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선임자이신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반포 40주년을 기리면서, '모든 시대의 인류가 갈망하는 지상의 평화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신 바 있습니다. 그릇된 힘의 논리가 아닌 하느님의 질서가 평화의 관건이며, 진리, 정의, 사랑, 자유가 평화의 네 기둥이라고 교황님께서는 역설하셨습니다.”

“또 정확히 말하자면, 평화는 '정의의 작품'(2002년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입니다.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그 질서의 열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회 질서의 열매가 바로 평화입니다(사목 헌장, 78항 참조).”

위에서 보는 것처럼, 가톨릭은 평화를 정의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시켜 보고 있다. 거꾸로 보자면, 불의한 상황이 폭력과 갈등, 전쟁의 원인이며, 나아가 불의 그 자체가 바로 피해자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이다. 그래서 정의가 없이는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가톨릭교회에서 사회문제를 담당하는 공식 기구 이름이 '정의평화위원회'인 것은 이러한 인식 때문이다.

<민족들의 발전>은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했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정의와 평화가 그 이름이며 동시에 그 사업 계획”인 새로운 기관을 명료하게 언급했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사목헌장>, 그리고 공의회의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근거로 설립된 것이다.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의평화위원회의 비제도권 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들의 발전>은 “아프리카의 해”로 불리던 1960년 이후 수많은 신생국가와 식민지 제도의 청산을 배경으로 한다. 발전과 정의, 평화의 상호 관계를 염두에 두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많은 제안을 내놓고 있다.

평화운동의 사례들

(1) 로마의 영향

1988년 서울 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 성체대회의 주제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다. 이것은 1980년대 소련 고르바초프가 주도한 동서 냉전 해체, 그리고 남북한 간의 분단 상황, 이 두 가지 현실이 반영된 주제였다. 이 대회가 성공한 이후, 한국 가톨릭교회는 “평화”를 가톨릭교회의 중심 이미지로 채택한다.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이라는 이름 선택도 이 맥락이다.

늘 강조하듯이, 가톨릭교회가 가진 국제적 성격 때문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유럽 중심의 문물이 소개되는 통로 구실을 해왔다. 로마에 본산을 둔 가톨릭교회가 유럽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한국 교회는 매우 진보적인 행위도 로마가 하는 것이라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2003년 한국 주교회의의 이라크 전쟁 반대 성명은 국내 평화운동적 의미도 있지만 교황의 강력한 반대 입장을 지원하는 의미도 강하다.


(2)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운동

이와 비교해, 천주교 제주교구의 해군기지 반대운동 사례는 순수한 지역적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평화운동은 고매한 이상과는 달리 구체적 현실로 들어가면 국익이라는 이익과 명분에 반하는 수가 많다.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그러하다. 한국 주교들이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것은 교황청의 강력한 반대 입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적인 주교들이지만, 교황에 대한 지원, 충성이라는 차원이 작용했다.

반면에 제주도 해군기지는 한국 내부의 일이며, 국방이라는 국익을 정부가 내세운 사업이기에 확고한 평화 신념이 없이는 반대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한 사례로 다뤄야 할 것이다.

제주도를 관할하는 천주교 제주교구는 '평화의섬 특별위원회'를 두고 아예 전 교구 차원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주교구를 맡고 있는 제주교구장은 현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다.

제주교구는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 건설하려는 정부 계획이 “평화, 환경,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같은 그리스도교인 제주도 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제주도의 평화와 행복을 지키려는 목자회' 모임의 “이미 결정된 사안이므로 집행돼야 한다”는 입장과 대비된다.

한편, 정진석 추기경은 2007년에 제주에서 열린 한국 가톨릭청년대회 참석차 방문한 자리에서, 제주교구의 반대 입장에 대해 (4.3사건 등)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 존중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3) 평화와 환경

평화의 개념이 환경 차원에까지 확장되고 있는 현상은 지난 10년 안쪽의 일이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의 진보적 사회 운동은 생태/환경 운동을 포괄한다기보다 오히려 미묘한 경쟁 관계였다. 우선 1990년대 들어 보수적인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가 앞장서 환경을 주 의제로 들고 나온 것은 “정의 문제를 물타기하려는 것”, 또는 “정의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으니까 대신에 괜찮은 아이템인 환경을 끌어들인 것”이라는 눈길을 받았다.

또 한편으로, 정의구현 사제단의 무관심에 실망한 일부 젊은 선구적 환경 사제들은 따로 환경사목협의회라는 비공식 조직을 결성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젊은 사제들이 각 교구와 조직의 실무 중추로 자리잡으면서 서서히 정의와 환경은 대립이 아니라 합일의 관계로 들어선다.

이를 상징하는 것은 원로 사제인 문정현, 문규현 형제 신부다. 문정현 신부는 군산에서 1997년 9월부터 군산 미 공군기지 민항활주로 사용료 인상 반대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발로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문규현 신부는 부안에 있던 시절 새만금사업 반대운동에 나서면서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중심이 된 오체투지 순례단 기도문 제목인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며” (2008. 9. 4)는 인간 세상을 넘어 생태계 전체로까지 넓어진 평화와 생명 개념이 접목된 좋은 사례라고 할 것이다.

(4) 안중근이라는 또 다른 평화 아이콘

안중근의 평화사상과 “방어 전쟁” 행위로서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1993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정당 방어”로 인정하기 전까지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살인” 범죄로 단죄했다. 올해는 안중근 순국 100주년이기도 하지만, 근래 안중근의 평화 사상이 지역 교회로서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평화 교리와 실천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교구가 안중근을 모든 가톨릭 신자의 모범인 성인으로 시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 4월 지구의 날을 맞아 한국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4대강 개발 저지를 위해 "평화와 치유를 비는" 낙동강 순례에 나섰다. 이들은 4대강사업을 반대하며, 훼손된 산천과 삶의 터전을 잃은 뭇생명들, 그리고 피폐해진 인간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지향을 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5) 누구의 운동인가?

가톨릭 평화운동의 또 한가지 특성은 성직자, 수도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자체가 다른 종교에 비해 성직자 중심적 성격이 원래 강하기도 하지만, 굳이 가톨릭이 아니라도 현대의 평화운동은 아니러니하게도 평신도가 아니라 성직자 중심성을 더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원래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평신도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 또 교회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종교가 평신도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도덕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를 그대로 따라 실천하기 어려운 평신도들은 순수한 종교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서조차도 주역이 되기 어렵다. 반면에, 성직자, 수도자들은 고매한 교리를 그대로 실천하기가 쉬우며, 따라서 이들이 운동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5월 13일에 양수리에서 있었던 생명평화 미사에서 사제는 100명이나 참석했지만 평신도들은 겨우 600명 참석했다. 군대에서조차 성직자들은 고매한 비폭력 교리를 실천하기 쉽다. 군종 장교에게 적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는 지휘관은 없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면 즉결 처형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피를 손에 묻히지 않는 고매한 성직자의 종교적 권위는 더욱 높아지며, 반대로 사회운동은 더욱더 성직자에 의존하게 된다. 사회운동은 원래 이권다툼이 본질인데, 운동의 실천이 절대 비폭력 주장처럼 근본주의화되면 사회운동은 거의 종교 수행의 수준의 수련과 결단을 요구하게 되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직자, 수도자 아니면 참여하기 어렵게 된다.

가톨릭 교회 안의 진보적 운동은 평신도 중심, 평신도 참여라는 제2차 바티칸 개혁 공의회 정신을 내걸고 있고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 근본주의 경향이 강해질수록 평화운동은 평신도가 직접 참여하기 어렵게 되고, 이에 따라 성직자 중심주의가 강화되면 교회는 의도하던 바와는 달리 보수화되어 진보적 운동을 질식시킬 것이다.

평화운동이 거대 담론과 수도승적 수련의 형태가 아니라, 각 가정과 개인 생활, 지역공동체 등에서 실천할 수 있는 평신도 활동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평화교육과 갈등해소 교육, 지역운동을 결합하는 방안을 제안해 본다.

박준영 /아시아 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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