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캡처/625전쟁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와 관련해 전쟁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준비되고 또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사에서는 다큐, 드라마 등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박물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열리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음악회와 페스티벌이 열린다.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방문하는 평화기행이나 학술행사 등 정부주도의 행사 외에도 민간에서 주최하는 행사 역시 다양하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다시 전쟁의 위기가 이야기되고 있지만,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하는 지금 모두들 ‘평화’를 외치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전쟁에 대한 기억은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어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전란을 극복하고 정치․경제 발전을 이룬 자랑스런 역사를 평화 지향의 선진일류국가 비전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기념사업의 취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은 일부분일 뿐이며, 그 과정에 사회적인 관계가 반영되어있다.

전쟁에서 기념되는 것은 대부분 군인들의 조국을 위한 희생, 충성심, 영웅화가 중심이다. 적군의 공격과 반인권적인 전투 속에 우리는 피해자로 환원되고, 국가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목숨을 잃은 군인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미화되며,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민간인들은 기억되기조차 힘들다. 이러한 전쟁 기념 속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된 부조리한 폭력에 대한 성찰이나 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끼어들 자리를 잃는다.

한국전쟁 60년을 기념하는 평화기도회가 22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분단을 넘어 평화로!'라는 주제로 열린다고 한다. 이 평화기도회에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평화와 자유의 전도사'로 초청되어 간증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3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침공을 시작했던 3월 20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민간인 사망자 최소 65만 명, 난민 450만 명(미국대학조사단, 2007). 오염된 식수나 부족한 의약품 등 취약해진 사회적 인프라를 고려한다면 숫자로 표현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죽거나 다치고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2001년 911테러 이후 보복공격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정권이 바뀌고도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전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전쟁을 일으킨 부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이며 그 이야기를 듣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최근 남북한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테러에 대한 보복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평화기도회에 초청했다는 것을 보며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모두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평화’가 뜻하는 것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 위치에 놓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과 안보를 주장하며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애도한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걸까. 며칠전 아프간에서 ‘점령 안정화 작전’을 벌이기 위해 출발한 파병 선발대를 보면서도 전쟁을 기념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겹쳐졌다.

우리의 군대가 가해자의 편에서 파병을 했던 베트남전쟁에서의 모습과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학살을 기억한다면 전쟁에 대한 다른 사회적 인식과 판단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기억은 정치적인 것이고 단순히 과거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쟁은 어떤 모습인지 다시 돌아봐야 할 때이다.

여옥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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