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적 쌍생아 부시와 MB

넌센스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되는 기독교 평화기도회에 부시(George W. Bush, 1946~) 전 미국 대통령이 간증자로 초대받았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하여 소위 ‘테러와의 전쟁’으로 집권 내내 전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부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짓고 한반도 긴장을 극대화시켰던 부시에게서 평화의 메시지를 듣겠다는 것이야말로 넌센스 그 자체가 아닌가. 수백만에 이르는 무고한 전쟁희생자를 만들어냈던 희대의 전범자 그가 참회의 간증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미친 지도자는 사회를 미치게 한다

광기어린 지도자는 사회를 광란으로 몰아간다고, 부시 정권 8년은 침략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물론 네오콘 세력들에 의해 실질적으로 주도된 측면이 있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부시 행정부의 행동 양태를 이해하려면 국가안보전략(NSS)보다 프로이트를 읽어야 한다.”는 정신분석학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의 지적처럼 거기엔 마치 게임하듯 전쟁을 즐겼던 부시 개인의 이상심리적 취향이 부인할 수 없는 주요인이었던 것이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 하에 약소국들을 대상으로 전쟁에 몰입할 때 부시가 보였던 과대망상적 태도에서 히틀러의 광기를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 전문의 저스틴 A. 프랭크(Justin A. Frank)의 <부시의 정신분석(Bush on the Couch : Inside the Mind of the President, 2004)>이란 책은 흥미롭기 짝이 없다. 거기서 저자는 세계 정치의 운명을 틀어쥔 한 권력자의 무의식적 행동 원리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1882~1960)의 대상관계이론 모델을 토대로 삼아 발전시킨 응용 정신분석을 통해 예리하게 통찰 분석하고 있다.

그가 왜 옮고 그름, 선과 악, 동지와 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나누는 경직되고 이분법적 흑백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 그가 왜 종교적인 연민이란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은 안중에도 없거나 이해하지 못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가학적 행동을 버젓이 저질렀는지, 그가 왜 언행불일치의 거짓 행동과 거짓 사고를 예사로 하면서 협박 언어를 서슴없이 구사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부시의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 즉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관심과 무능력, 끝없이 외부에 적을 만들어서 불안을 투사하는 파괴적 환상, 하느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대망상의 뿌리에 어린 시절에 받은 끔찍한 고통과 상처, 부모의 양육에서 비롯된 공포와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그 당시의 현직 대통령을 향해 의문을 품는다. 그토록 친절하고 쾌활한 사람이 어떻게 정부의 극빈자 지원 프로그램 기금을 삭감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신앙심 깊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라크를 폭격하고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즐거워하며 자축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국유림의 벌목 제한을 해제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어떻게 ‘건강한 숲 작전’이란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단 말인가?

▲ 지난 2008년 4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하는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사진출처/청와대)

지도자의 심리적 건강은 국가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또 다른 현직 대통령이 있다. 이 책의 국내 번역본이 출간된 시기가 2005년인데 마치 ‘국내판 부시’의 출현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부시와 MB는 신기할 만큼 닮은 ‘심리적 쌍생아’이다.

부시를 향한 의문은 그대로 MB에 대한 의문이 된다. 그토록 친절하고 눈물 많은 사람이 어떻게 정부의 소외계층 복지예산을 삭감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신앙심 깊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용산 진압작전을 펼치고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4대강을 파괴하는 사업에 대해 어떻게 ‘4대강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부시의 심리적 특성으로 책에 적시된 표현들인 불안을 감추는 과잉행동, 거역할 수 없는 파괴 충동, 이분법적 흑백 세계, 평면적인 인간 이해, 법 위에 군림하는 무법자, 무적불패의 전능감,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사디스트, 진실을 감추는 뒤틀린 혀, 거짓 행동과 거짓 사고의 협박 언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 경직된 사고와 편집증, 근본주의적인 신앙과 죄의식의 결여 등은 그대로 옮겨도 무방할 지경이다.

저자 프랭크의 “내면에 프로그램된 인생 각본에 사로잡혀 외부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지도자는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국가에 그대로 전이시켜 그것을 공익으로 합리화한다.”는 지적은 우리로 하여금 지도자의 심리적 건강이 국가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당연히 한 인간의 내면세계는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일국의 지도자야 말할 나위가 있으랴. 집권 단 2년 만에 모든 것을 수십 년 전 상황으로 후퇴시켜버린 MB 정치의 난맥상을 보며, 절대군주제가 아닌 대통령제 하에서도 지도자의 정서적 안정은 민주제도의 정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고결하고 넉넉한 인품으로 덕치를 실현하는 지도자를 꿈꾸며

그러기에 나는 늘 차기 대통령만큼은 무엇보다 깊고 넓은 마음의 덕성을 지닌 자였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그에겐 대화와 타협을 하면서도 원칙과 근본을 살려낼 수 있는 통찰력이 있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멋과 보는 이로 하여금 은연중에 미소 짓게 만드는 편안하고 넉넉한 가슴의 여유가 있다. 사회가 심층의 동인(動因)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고 수면의 부표물들이 일으키는 얕은 물결에 의해 출렁이면서 원색(原色)이 난무하는 삭막한 세상을 사람다운 세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깊은 혼의 인간적 감성과 덕성을 그는 지녀야 할 것이다. 그를 통해 국민들이 이제껏 지도자들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온전히 치유 받았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흔히 리더십의 3요소로 얘기되는 신뢰(Confidence), 성품(Character), 신념(Commitment)의 바탕이 고결하고 넉넉한 인품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지도자와 더불어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오도된 가치관을 재정립하면서 오히려 정치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활기를 안겨줄 수 있는 행복한 사회를 그려본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곧 ‘꽃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고 했던가. 오늘은 그런 지도자가 더욱 그립기만 하다.

정중규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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