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g을 만나다

대방역 근처에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다. 알록달록한 의자와 카페를 빙 둘러 진열된 수공예품들이 오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트인 입구가 시원한 이곳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여성공동체 W-ing에서 운영하는 ‘신길동 그 가게’이다.

열정의 공간: W-ing

요즘 W-ing은 평택 안정리의 기지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평택으로 자원 활동을 가고 있다. 매 주 가서 하는 일은 영상과는 관련이 없는 할머니들의 수발 등이다. 최정은 W-ing대표는 “영상을 찍는 것 자체보다도, 그분들을 타자화할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삶을 최대한 함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의 삶의 한 부분만을 보고 그들을 정의하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W-ing은 무력한 쉼터에 대한 편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주도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타자화에 대한 W-ing 공동체 회원들의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W-ing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형성된 결과들이다. 특히 2007년 여름동안 진행되었던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라는 인문학 강좌 중, 철학자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철학을 통해 타자화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참여자들은 “나도 타인이 될 수 있지 않나.”, “내 삶을 향유할 때 타인을 함께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 “내가 많이 억눌렸으니 뭔가 바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들을 나누기도 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나누는 과정에서 한 참여자는 “내가 업소 안에서만 갇혀 봤던 것들이 결국 그림자만 봤었던 것”이라고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강좌가 진행되던 바쁜 와중에, 하루는 강좌에 참여하는 한 분이 최 대표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에서 대학생들이 플라톤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너무 뿌듯했어요. 대학에 가면 이렇게 공부하는구나 싶고, 나도 그거 공부했는데 하는 자부심도 느껴지고.”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참가자의 이야기는 실무자들에게 고맙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게 인문학의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자기는 계속 물으면서 살 거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내가 어디서 왔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들을요.”

지금은 참여자들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주고 있는 인문학 강좌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전

처음 W-ing은 1953년 10월 ‘테레사 모자원’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열었다. 당시 전쟁 후에 남겨진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위한 목적으로 여성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66년 재단법인 ‘은성원’으로 명칭을 개명하고 빈곤 여성들을 위한 직업보도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최정은 대표가 ‘은성원’에 온 것은 지금부터 12년 전인 1996년이다.

“당시에는 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제외하고는 갖추어진 것이 별로 없었어요. 지원도 거의 없어서 열악했죠.”

당시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보건복지부의 ‘윤락행위등방지법’이 관련 법률로 있을 때였다. ‘윤락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자를 선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의 목적처럼, 성매매피해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교화의 대상’ 정도였다. 그들이 피해자라는, 그래서 그들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전무한 상태였다. 문제를 가리고, ‘교화의 대상’을 모아서 수용하는 식의 접근이 전부였다.

‘성매매특별법’, 사회인식이 변화하기 시작

이런 사회인식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피해여성이 사회구조 속에서 피해자임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부족함은 많았다. 피해여성들을 지속가능하게 도와 물질적, 정신적인 도움을 꾸준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원은 피상적인 부분에만 머물러 있었다. 당시의 ‘은성원’ 역시 이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공허함을 느끼고 뭔가 다른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변화는 우연한 기회에 왔다. 2005년 외부의 요청을 받아 쉼터의 식구들이 직접 영상을 제작, 참여를 하여 여성인권영화제를 열었다. 카메라에 스스럼없는 이들을 보면서, 최 대표는 영상이 이들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영상워크샵을 시작했고 동숭동 ‘하이 퍼택 나다’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발표회는 성공적이었다. 영상을 준비하고 상영한 이들에게는 자존감을 심어주었고, 관람한 이들에게는 인식을 새롭게 하는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영상미디어센터’가 탄생한다.

치유적 글쓰기: “내면의 힘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W-ing은 영상에서 얻은 성과들을 통해 ‘치유적 글쓰기’ 과정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통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 과정은 이숙경(줌마네 대표)씨가 도움을 주었다.

최 대표는 처음 이숙경씨를 섭외하면서 쉼터 식구들을 특별하게 바라보지 말아 주도록 부탁했다.

“그 전에도 강사 분들이 오시면 부담을 느끼셨어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들을 하셨는데 저는 강사 분들께서 마음을 제대로 열지 않아서 그러셨다고 생각해요.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 솔직하게 다가간다면 부담을 느끼실 필요가 없거든요.”

이숙경씨의 글쓰기 강좌는 크게 성공적이었다. 하루 3시간씩이나 글을 쓰면서도 시종일관 즐겁게 글을 쓰고 나누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글을 쓸 수가 있어요. 특히 이숙경씨가 ‘내면의 힘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 참가자들에게 공감을 일으켰죠.”

최 대표는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도 느낀 바가 컸다고 말했다. 글쓰기 과정의 성과는 다시 ‘W-ing'에 전환점을 가져온다.

인문학 강좌로 부족함을 채우다

2006년 봄, W-ing은 처음으로 철학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영상과 글쓰기 과정의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뭔가 부족함을 계속하여 느끼던 중에 비영리 기업의 컨설팅을 받는 것이 어떤지를 조언 받았다. 이를 통해 비전만 방대했던 사업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비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멈추지 않는 성장, 한계 없는 도전”이라는 모토로 철저하게 ‘여성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곳으로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게 된다. 단체 이름이 ‘W-ing(Women Initiative Networking Growing)’으로 정해진 것도 이 시기이다.

처음 철학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강의 계획을 정하는 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컨설팅을 하던 이가 우연하게 도움을 주었다. 철학 석사 출신이기도 했던 컨설턴트는, 자신도 철학 교수의 꿈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준비를 도왔다.

“강의계획, 강사섭외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다음 날 이분이 강의계획서를 만들어서는 가져오시더군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최 대표는 이런 도움과 함께, 이 시기에 임영인 신부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레멘트 과정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부족하다고 느끼던 것을 끝까지 해결하고자 했던 최 대표와 실무자들의 노력이, 인문학과의 만남을 이끌었던 것이다.

W-ing은 철학 프로그램과 함께 곧 여성학도 도입했다. 여성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후 철학, 여성학, 문학, 역사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게 된다.

이런 강좌들은 항상 조모임과 발표로 끝을 맺었다. 또, 원래 있는 동화들을 재구성하거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처럼 자신들의 몸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도 하는 여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우리 안의 타자’라는 주제로 위안부 여성에 대한 자신의 느낌, 경험들도 나누고, 자신의 생애사를 발표하였다. 다 같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고 타자성에 대한 나눔도 가졌다. 인문학 과정은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삶으로 다양하고 풍부하게 스며들어갔다.

최 대표는 올해는 영화, 문화 영역을 통해 나눔을 가지는 과정들을 늘려갈 계획을 밝혔다. 현재 준비의 일환으로 영상 전문가도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여성영상재단 ‘움’의 도움도 받고 있다.

창업 등의 사회진출을 준비

지금 ‘신길동 그 가게’가 있는 자리는 얼마 전까지 피부관리샵이 있었던 자리였다. W-ing의 식구 중 한명이 자격증을 취득하여 창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을 하는 성공적인 사례로, 방문한 여성부 관계자도 “오랫동안 이 업무를 해왔지만 성공사례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다른 단체들도 벤치마킹을 하러 방문했다. 최 대표는 이를 통해 사회진출에 대한 성공사례를 더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부관리샵은 운영을 하던 이가 결혼을 하면서 아쉽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사람에게 투자를 하면 그 사람만이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서 변화도 있고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보다는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들이 거쳐서 성장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지요.”

‘신길동 그 가게’는 그래서 시작되었다. 현재 쉼터 식구 중에는 바리스타(커피전문가)가 되는 훈련을 받은 이들도 있다. 또 다른 분야로의 진출도 준비 중이다. W-ing은 식구들의 창업, 진학, 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돈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의 힘이 모여야 하는 일”

W-ing의 여러 성과들 뒤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장 먼저 현재 정부 지원금이 대부분인 재정상황에서 독립적인 재정을 꾸릴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점이다. 정부의 지원금은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는 인증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고, 복잡한 보고 등의 문제가 있어 양날의 칼이다. 또, 외부의 후원 역시 아직도 성매매피해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했다. W-ing은 개인 ‘W-ing 서포터즈’들을 더 확대하여 재정후원, 물품후원을 통해 독립재정을 꾀하고자 한다.

학습지도, 사무지원 등의 자원 활동도 언제나 환영이다. W-ing 안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이를 정리하고 관리할 시스템을 만들어줄 이들과 컴퓨터를 활용할 줄 아는 이들을 도움을 필요로 했다.

최 대표는 W-ing의 여러 사업들은 “돈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사회의 힘이 모여야 하는 일”임을 강조했다.

‘성매매’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한 시민운동이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룬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어 공포된 이후, 성매매피해여성이 피해자임을 확인하는 단어로서 ‘성매매’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윤락’, ‘매춘’, ‘매매춘’ 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하여 쓰이고 있다. 이들은 여성이 타락했음을 의미하거나, 성을 봄에 빗대어 표현하는 등으로 문제를 왜곡하는 단어들이다. 성을 구매하는 이들, 성매매피해여성들이 피해자인 상황 등은 묻혀 버린다.

한편으로, 최근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성매매를 없애겠다는 캠페인과 선언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부산광역시는 ‘성매매 없는 클린 부산’이라는 구호를, 강원도는 작년 상담실적으로 20,134건과 보호시설에 384명을 ‘보호’했음을 각각 홍보했다. 하지만 이런 구호들이 나온 한 달 뒤, 부산의 한 ‘보호시설’에서는 성매매피해청소년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시설은 현관문을 잠그고, 외출 외박도 금지했으며. 외부와 연락을 끊기 위해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도 제한했다. 이곳의 직원은 “학교나 집에서 전혀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편집자

백승덕 20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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