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평화신문 4월 20일자에 신자의원 당선자 결과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30명(비례대표 포함)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통합민주당 22명, 자유선진당 11명, 무소속 6명, 친박연대와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이 각 2명 등 모두 75명(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25%)으로 로 총선 사상 최대 숫자라고 한다. 평가를 담은 기사가 아니었기에 논평은 피하고, 이 기사가 갖는 의미만 생각해보려 한다.

내게는 이회창 씨에서부터 시작하여 문국현, 강기갑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당선자들의 면면이 가장 먼저 눈에 띠었다. 두 번째는, 정파는 다양했지만 이념적 스펙트럼에 있어서는 절대다수가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 점이었다. 이 두 특징이 눈에 띠는 동시에 교세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남한 인구의 10% 안팎에 불과한 천주교가 국회의원 수에서는 25%에 이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지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교회 모임이 아닌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이 일이 도마에 올랐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어느 친구가 말했다. “천주교는 이제 국회의원들이 걸쳐야 할 겉옷이 된 것 같아, 저렇게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것을 보면... 천주교의 위세를 어떻게든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된 것 아닐까?” 속옷은 안 보이니(천주교 신자라고 혼자만 알고 있으면 다른 이들이 못 볼 것이라서), 겉옷으로 걸쳐야 그나마 신자라고 알아 볼 것이라는 계산에서 종교에는 마음이 없이 젯밥만 생각하고 천주교에 달려왔다는 해석이다. 군대에서 지휘관의 종교에 따라 진급대상자들의 종교가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와 같은 유의 해석인 셈이다. 이 말을 듣고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천주교는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는데다, 당분간 이러한 권위에 도전할 집단이 거의 없는 까닭에 얄팍한 정치인들이 그런 계산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자칫 이들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 저급한 인신공격이 될 우려가 있다. 이들보다 도덕성이 더 낫다고 자부할 수 없는 나이기에 이들도 나름의 신앙을 갖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면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최근 20년의 각종 교회 대상으로 사회조사결과를 보면 신자 구성층의 질적 변화가 눈에 띤다. 이러한 구성의 질적 변화는 교회의 문화를 다양하게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 필자의 관찰결과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어떤 변화가 이로 인해 일어났을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사제, 수도자, 신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질문을 받은 것이 ‘김용철 변호사를 옹호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였다.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으니 보편적인 의견이라 할 수 없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논쟁을 걸어온 것이 아니니 찬반 의견을 말하기가 곤란했지만 나는 나름의 사제단 옹호 논리를 폈다. 과거에는 민주화, 인권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이슈가 급선무였지만, 이제는 국가권력 만큼이나 아니 더 클지도 모르는 경제권력(자본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한국사회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는 것과 아마도 사제단에게는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도덕성 문제보다 자본권력에 짓눌리게 될 다수 국민들의 이익이 더 중요했을 것이라는 논지였다. 그러나 대부분 설득을 당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2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이제 종교는 그런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영성과 교회 내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사회집단들이 과거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교회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누었던 대화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런 의도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이제 정말 사회정치적 이슈가 교회 안에서 공적 의제(public agenda)가 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가슴 답답하게 다가왔었으니까. 게다가 과거 같으면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제들에게 이러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사라졌으니 자칫 사제단이 ‘성전의 모퉁이돌’이 아니라 ‘걸림돌’로 여겨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이유에서 당선자들의 다양한 정파적 스펙트럼 보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오른쪽 중심이라는 사실과 이것이 신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거의 겹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내게는 더 중요해 보인다.

개신교는 우리보다 더 많은 당선자를 냈으니, 전체 국회의원의 절반 이상이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채워진 셈이다.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대학교수 집단, 고위관료 집단, 한국의 여론 주도층에서도 이런 그리스도교 편향이 발견된다. 한국의 파워엘리트 안에서 나타나는 편향과 두 종교 모두에서 최근 발견되는 보수적 정치성향, 계층적 편향은 이제 두 종교 모두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보여주었던 예언적 역할이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짙게 한다. 이것이 국회의원들이 천주교를 겉옷으로 생각하든, 속옷으로 생각하든 큰 차이가 없다고 보게 되는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박문수 200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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