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80년대 팝송으로 즐겨들었던 엘도라도(El dorado)는 스페인 전설 속에 등장하는 어휘로 '금가루를 칠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콜롬비아의 고산도시 보고타 가까이 있던 인디언 마을의 전설적인 통치자였다고 한다. 축제 때 벌거벗은 몸에 황금가루를 칠하고 의식이 끝나면, 구아타비타 호수에 뛰어들어 가루를 씻어냈다고 하며 신하들은 보석과 금으로 만든 물건들을 이 호수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이 축제의 전설은 유럽인들에게는 전해져 황금을 소유하고픈 욕망을 부추기는 소재로 작용하여, 대항해시대를 열어놓은 동인이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일본을 금이 엄청나게 묻힌 땅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한동안, 종종 만나 밥을 먹곤 하던 남자 후배가 전화를 해와, 한남동 순천향병원 근처를 걷다 저녁을 먹고 근처 찻집에 들어가 얘기를 나눴다. 물류이동 쪽에서 사업을 하는 그에 의하면 전체 물류량은 일정한데 물류업체는 늘어나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파산을 향해 걷는 것 같다니 뭐라 위로할 말이 없었다.

실감나지 않는 경제뉴스

이 피로에 지쳐가는 사업가들 사이에서 요즈음 거대 투자은행의 행보는 그들 저마다 사업을 확장하거나 줄여나가다, 또는 도산을 경험하면서 느끼던 쓰라림을 다시 한 번 되씹으며 분노를 증폭시키는 일인 듯했다. 후배의 생각은 경제흐름에 많은 우려와 회의를 담고 있었다. 산업은행이 과연 리먼브라더스의 도산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인수의 뜻을 내비쳤을까 하는 의문에는 외환은행이 팔리던 무렵, 꿰어맞추기식으로 계산된 자산 대 부채비율의 조작(?)을 지켜보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에 주의를 주며 서두르지 않게 조절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안도를 하는데 후배의 염려는 나보다 깊었다. 그의 깊은 염려와 나의 안일함을 풀어줄 투명한 대책이 일관성있게 펼쳐지길 빌어볼 뿐이었다.

모 시사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한 판의 거래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투자은행의 관점에서 보면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의 수익원인 예대마진-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액-은 '코 묻은 돈'이고 조선업이 수년간 기술자 수천 명을 투입해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제조업 역시 미친 짓'이라니 겨우 기초생활비를 버는 내 입장에서는 감도 안 잡히는 일들이라, 요즈음 경제뉴스들은 내 머리 속에 '엘도라도'라는 어휘를 출몰하게 할 뿐 실감으로 다가오는 일은 아니다.

청춘을 회복하며 희망을 얘기하던 무렵

순대국집 옆에 약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근처 한남역과 순천향병원, 그리고 한남동성당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이층 찻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유난히 향기로웠다. 알루미늄과 철이 섞인 질감의 작은 주전자에 서 따라주는 거품이 이는 뜨거운 커피는 불신과 혼란의 와중에도 우리들이 만나 차 한 잔을 나눠 마시는 행복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나를 찾아준 후배에게 좋은 누나가 되어줄 수 있을런지 나는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미국발 뱅크럽시보다 더 위태로운 나의 내면을 감추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 탓인지 우리들은 절망 속에서 감지하는 허무를 주메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의 어느 시점에선가 후배와 나는 들뜬 목소리로 희망을 나누었건만,
희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창부.
아무에게나 아양을 떨어서 모든 것을 바치게 하고
네가 많은 보물-너의 청춘을 잃었을 때
그녀는 너를 버린다.
(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희망>)


찻집의 주인아저씨가 우리에게 와인을 두 잔 서비스해서 우리는 와인의 기운 속에서 청춘을 회복하며 희망을 얘기하던 무렵 어울려 지내던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후배의 이야기 속에서 어느 지인은 지금 감방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거대 투자은행이 자유무역으로 국경을 넘어와 저지르는 일탈을 한 개인의 범주 안에서 벌이는 형국이었다. 해외에 주재하는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공문서를 위조하여 사욕을 채우는가 하면, 남미에서는 값이 싼 에메랄드를 일제 지퍼라이터 속에 숨겨 들여와 종로의 보석상에 넘겨 이윤을 남기며 그 돈으로 태평양 상공에서 청춘을 보내다 결국 구속을 당했다고 한다. 티브이 뉴스화면에서 본 인천세관의 창고는 이러한 밀수상품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비일비재한 일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들만 모른 채.

비자 얻으려 머리도 밀고

우리들이 같이 알던 또 다른 지인은 솜씨 좋은 치기공사였다. 그의 누이 하나가 미국으로 들어가 치기공일을 해보니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수입을 올리자, 그녀는 남동생에게 비자를 받아 미국에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인은 스물 여덞 미혼의 남자인데다 어느 방면으로도 비자가 나오지 않는 처지였다. 규모가 작은 기공소에 몸담고 있다보니 갑종근로소득세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은행계좌에 최소 3천만원을 넣어둘 재력도 없었다. 주변에 집을 가진 가족이 있어 집을 담보로 그가 미국에서 머물다 불법거주로 숨어버린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미국의 손실을 갚아주겠다고 나설 사람도 없었고.

여러 번의 미대사관 비자신청을 거쳤으나 번번히 거절을 당하자, 그는 급기야 어느 불교단체에 선을 대어 스님신분증을 얻어 비자를 신청하고자 문서위조를 시도했고, 조계사 근처 불교용품점에서 승려복을 사입고 스스로 머리를 미는 해프닝을 벌였다. 소설 같은 현실, 소설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중이 제 머리를 깎는 돌출행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지인은 불가의 승려가 아닌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내는 기독교 교파의 공동체 일원으로 신분을 감추고서야 비자를 얻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후 후배도 나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후일담식으로 은행에 근무한 적이 있는 대학친구와 옛 지인의 해프닝을 이야기하다, 나는 가슴이 조여드는 아픔을 경험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달프다며 어디서 3천만원만 일주일 정도 구해서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비자가 나오면 돈을 빼내 돌려주면 될 것을, 그렇게 답답하게 굴었느냐며 냉소를 던졌다. 머릿속에선 그때 그녀에게 3천만원만 일주일간 빌려달라고 해볼 걸 하는 식으로 맞대응을 하며, 그녀의 생활범위에서 가능한 일을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는 무례를 가슴에 새겼다.

삼백만원도 융통하기 어려운 청춘의 아픔

유동성 위기...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AIG 등등 금융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다 파산을 당했듯이 우리들은 그 당시 삼백만원도 융통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시퍼런 젊음은 범죄의 냄새를 드러냈을 뿐, 자본의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교환가치로 환산해주는 은행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오죽하면 승복을 사다 입고 중 흉내를 내었을까 하는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답답한 인간이라는 비아냥을 듣거나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는 말로 미칠듯이 자신이 놓여진 현실을 벗어나보려는 청년들을 경계하곤 했다. 그의 승복과 맨머리는 우리들 가슴에 청춘의 아픔을 상기시켜주는 코드로 남아 있다.

대학시절, 학교잡지에 글을 쓰고 생각지 못한 큰돈을 받고난 후, 나는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교내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만찬을 벌였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에만 가면 금덩어리를 배에 가득 실어올 수 있으리라던 희망처럼 세상은 내게 화수분처럼 돈을 가져다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던 친구에게 라면 한 박스를 선물까지 했으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추억이다.

엘도라도, 욕망을 던져 넣으며

유물론의 뼈대를 세웠던 포이에르바흐(L. A. Feuerbach, 1804-1872)를 비롯한 유물론자들의 종교비판에 대해, 한스 큉 신부님은 허무주의-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세가 없다는, 부활이 없다는 의미의-는 지금까지 가설에 불과하며 허무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무신론의 한계를 지적하셨다. 희망이 속절없이 허무함을 드러내듯 절망 역시 그 끝을 드러내며 멀어지던 기억으로 신부님의 말씀을 내 안에 되새긴다.

안데스 산맥의 고산도시에서 벌어지던 축제는 어쩌면 물질의 축적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재물을 축적하고픈 욕망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호수에 금붙이들을 던져넣은 일은 우리의 옛이야기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남미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는 사이 엘도라도의 전설은 해석의 오해가 생겨났던 것 같다(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경제시스템에 대한 오해처럼)

 

/2008.9.24.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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