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사방이 뒤숭숭하다. 전시도 아닌데 멀쩡한 함정이 두 동강이가 나 우리의 젊은이들 수 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 규명이 안 된 채 세월만 간다. 밝히지 않는 건지 밝힐 수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명천지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사랑하는 내 자식 군대 안 보내기 운동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지진으로 천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 아비규환이다. 우리도 몹시 불안하다. 사형제도가 다시 머리를 들고 폐업 신고를 했던 공짜 징역살이 보호감호소가 재개업을 서둔다. 아무리 “4대강 중지!”를 외쳐도 청계천으로 한껏 재미를 본 사람은 눈도 꿈쩍 안 한다. 그래선가? 4.19혁명 반백년이 되는 날, 북한산 진달래능선엔 진달래가 꽃을 피우지 않았다.

6.2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시민사회단체와 야4당이 함께 추진해온 후보단일화 협상이 결렬됐단다. 아직도 허황된 욕심으로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 백이면 백 망한다는 걸 모든 유권자들이 다 아는데 당사자만 모른다. 4대강 사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왜 모를까.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은 멀다.

인천교구 주보에는 매주 마다 1면에 교구설정50주년기념 영성센터설립 모금현황이 실린다. 몇 개 본당이 참여해서 돈 낸 사람은 몇 명이고 얼마를 냈으며 앞으로 내겠다고 약속한 액수는 얼마라는 기록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침 꿀꺽 삼키고 넘어가는데 4면에 가서는 아예 숨이 콱 막힌다. 지구별, 본당별 참여신자수와 약정액, 봉헌액, 목표액이 큼직한 도표로 그려져 있다. 지구에서 돈을 냈거나 내기로 한 신부들의 수와 금액도 적혀 있다. 어느 본당은 90명인데 우리 본당은 0명이다. 분발하라는 얘긴가, 통회하라는 얘긴가? 이렇게 사람의 목을 조여도 되나? 정말 천주교회가 이래도 괜찮은 건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해보자. 우리의 지상 과제인 선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 나라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쩌리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교세다. 그것은 힘이요 권력이다. 신자수가 배가되면 수입도 배로 늘고 더 넓은 땅과 큰 건물이 필요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커지는 교회를 우리는 흔히 발전하는 교회, 성공한 교회라고 한다. 그 안에 성령께서 활발히 역사하시는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천주교도 개신교도 앞다투어 ‘새로운 양’, ‘잃은 양’ 찾기에 여념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한 번 더 묻자. 그렇게 기를 쓰고 신자수 늘려서 뭐하겠다는 건가? 돈과 권력이 생기니 그것을 이용하여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섬기겠다고? 좀 더 솔직해 보라. 예수 팔아 권력을 얻어 그것으로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게 아니고? 단언하거니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최하층 무지렁이들의 발을 닦아주며 어울려 먹고 마시는 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사자가 새끼 양과 어울려 풀을 뜯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다. 기업이 아닌 예수의 교회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 선교라는 미명 하에 끊임없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미 예수의 사람들이기를 포기한 집단이다. 예수가 없는 크고 화려한 교회당에 운집한 ‘믿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선포할 수 있을까?

우리 성당은 여름만 되면 벽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바닥이 흥건히 젖어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기회가 되면 대대적인 수리를 해야 한다고 벌써 오래 전부터 돈을 아끼고 아껴서 몇 억 원 쯤 적립해두었다. 얼마 전에 유명한 건축가 한 분을 모셔다 자문을 구했는데 아이구나! 방수 공사만 하는데도 이 돈으로는 택도 없단다. 어쩌란 말이냐? 내게도 문제는 여전히 돈이구나. 우울한 봄날이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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