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정양모 신부 강의를 신자에게서 앗아간 이유는?

 

▲정양모 신부

서울 목동성당에서 정양모 신부가 마태오복음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작년 11월부터 강의를 하다 도중에 외부의 압력으로 중단하게 된 일이 발생했다.

목동성당 신자에 따르면, 정양모 신부의 강의는, 처음에는 성경공부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조촐하게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즉 본당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공부가 잠시 쉬는 동안인 작년 11월부터 올 1월까지 약 3개월 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성경공부 봉사자 중 핵심간부에 해당하는 이 신자의 말인즉, <탈출기> 이상 공부하고 어느 정도 들을 귀가 있어서, 이른바 교회가 반교회적이라고 내친 정 신부의 강의를 들어도, 교회 제도권이 염려할 정도로 흔들리지 않을, 비교적 뿌리가 든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목동성당이 공동사목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런 좋은 강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고, 결국 본래 취지와 계획과 달리 봉사자뿐만 아니라 레지오 마리에 간부 등 수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정 신부의 마태오복음 강의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정 신부의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평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구심이 들었던 내용들이 속 시원히 해소되고 궁금한 것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반면 몇몇 신자들은 정 신부의 사상을 기존 가톨릭교리나 신앙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단'으로 못 박았다. 심지어 정신부가 저술한 책을 거론하며 ‘이것도 책이냐, 책값이 아깝다!’는 식으로 정신부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에 정 신부는 ‘그렇다면 다시 내가 그 책을 사겠다.’고 응대했다.

정 신부의 강의에 대한 불만은, 강의가 시작된 지 얼마 후부터 본당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는데, 정 신부의 강의에 대한 찬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팽팽하게 맞불이 붙었다. 하나는 ‘정 신부의 강의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정통교리와 다르다, 심포지엄에서나 다룰 내용이고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기는 위험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들이 인지장애나 판단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 만큼, 교리 논쟁을 떠나 정 신부의 강의에 대한 평가를 수강자 각자의 몫으로 맡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 신부의 강의사건은 바야흐로 본당 차원을 뛰어 넘어 급기야 서서울교육청(목5동성당에 위치함)에서 집무하고 있는 조규만 주교에게 전해졌다. (정양모 신부의 강의를 반대하는 신자들이 조규만 주교를 직접 찾아가 하소연했다고 한다.) 조 주교는 공동사목을 하고 있는 목동성당 신부들을 모두 불러 야단을 쳤고, 정 신부의 강의는 결국 도중하차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양모 신부에게는 목동 성당뿐만 아니라 서울교구 본당에서는 강의를 할 수 없다는 극단의 처방이 내려졌다.

여기까지가 정양모 신부가 목동성당에서 강의를 하게 된,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강의가 중단된 경위다.

신자들이 자기 신앙에 대한 지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본당에서 하는 성경공부도 있고, 신앙서적을 통한 독학도 있고, 또 제도교회 밖 여러 기구나 단체에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텍스트를 가지고 공부하기도 하고, 혹은 기도와 봉사 등 영성활동을 통해서 공부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신앙공부가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또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판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 속에서 학문과 신앙이 발전하고, 또 하느님의 섭리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른바 다양성의 시대이다. 비록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곳이 종교라 하더라도, 신앙의 다양성은 여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상업주의 색깔이 진한 차동엽 신부의 '무지개원리'가 버젓이 인정받고 있듯, 정 신부의 역사비평적인 해석학도, 그리고 그외 다른 다양한 학문적 접근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가톨릭교리 역시 학문적 발전과 현실 안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신앙생활 안에서 성찰될 수 있어야 생생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교리가 박제된 틀에서 벗어나 풍요롭게 살아있는 신앙을 낳을 수 있다.

조규만 주교가 왜 정 신부의 강의를 중단하게 했는지 그 깊은 뜻을 알 수는 없겠지만, 혹시 ‘본당 신자들은 아직 이런 강의를 듣기엔 너무 유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정양모 신부의 강의가 신자들의 신앙의식을 교란시킬 정도로 심각히 해롭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성서학자로서 강의하는 정 신부가 도무지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고 보는지? 신자들에게 듣고 묵상하고 사색하고 건전하게 비판하며 신앙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도록 할 수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신자들의 자발적인 성경공부를 막아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와서 강의하라고 해서 했고, 하지 말라고 해서 그만 뒀어요.”
정 신부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교회가 내린 처사에 대해선 이제 할 말이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제 그는 예전처럼 소규모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에만 초대될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도 예전처럼 가까운 본당을 두고 노 신부의 강의를 듣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교회지도자와 교회 제도권만 모른 채 교회의 바닥에서 확대되어 갈 것이다. 바람은 본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어와 알 수 없는 곳으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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