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오에 겐자부로, 아이리스 창, 그리고 한국 L작가

오에 겐자부로: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Oe Kenzaburo)가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 라는 제목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연설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비판을 가했다. 그는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하며 "전쟁 중의 잔학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영광의 자리에서, 해당 작가가 그의 조국을 향한 비판은 일본 우익들의 입장에서 보면 뼈아픈 시간이었겠지만 일본의 건강성을 체크하는 기분이어서 한없이 부러운 시간이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언급하는 인터뷰에서도 그는 "종군위안부나 난징(남경)대학살에 대한 기술이 사라져 있다. 이처럼 불리한 역사 기술을 빼는 것은 쇄국적인 멘털리티를 반영하는 것이다. 쇄국적인 사고방식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다른 나라는 물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세대들이 바로 잡지 못하는 구조를 인터넷을 통하여 허물어야 한다. 왜곡된 교과서를 본다 하더라도 요즘 세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울 학생과 동경 학생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으로 사실을 서로 확인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김지하 선생이 옥중에 있을 때 동료 문인의 이름으로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한 친한(親韓) 인사인데, 그의 글은 고향 시코쿠 지방의 울울한 숲이 배경이 된 작품들이 많다. 작품 속 캐릭터 중에는 깊은 숲에 갇혀, 그 배경과 조건에 압박당해 생명의 지향점을 잃어버리고 광기를 분출하는 순간들이 종종 나오는데, 인간 조건의 불안전한 한계로 인해 빚어지는 어긋남은 작품 속에서, 깊은 숲이 진한 산소향을 품고 있지만 또한 사람을 나무 울타리에 가두는 역할도 겸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경대에서 불문학을 공부했고 그분의 세대가 그러했듯(1935년 생) 사르트르, 까뮈 등의 영향을 받고 실존주의 작품을 쓰기 시작하다, 뇌손상 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으면서 문학적 전환기를 맞아 일상체험을 통한 인간실존으로 깊이가 더해진 듯하다. 성실한 작가, 신뢰감이 가는 작가로 각인된 분으로 사회모순과 인간의 이기적 자아를 뛰어난 은유로 그려놓아 별 볼일 없는 인간존재(?)와 위대한 생명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에 젖게 만든다.

오래 전, <말>지(誌)에서 마련한 그와 김지하 선생과의 대담은 흥미로웠다.

김지하: ... 21세기는 극동의 아시아 그 중에서도 코리아가 주역이 될 겁니다. 오랜 문화의 보고가 새롭게 개화되어 새로운 지구촌의 리더가 될 양분이 엄청나지요. 통일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오에: ... 세계의 어느 나라나 그 자신이 중심이 되며 동시에 주변이 되지요. 한국은 분명 중심국가가 될 겁니다. 동시에 그 자신의 개별적 특성으로 인해 독특한 주변이 되어 어려운 감정을 겪기도 하겠지요.


재구성이 어려울 만큼 내 기억은 낡았지만 분위기는 그러했다. 물론 김지하 선생보다 오에 겐자부로가 10년이나 연배이긴 했지만, 그 글을 읽는 내내 씁쓸했다.

생활의 방식; 그로 인한 모든 마이너스를 감당하면서

오에 선생이 장애인 아들을 두고 일어났던 한 토막 일화는 이러했다. 그가 멕시코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호텔에서 자고 있는데 아들의 발작을 알리는 전화가 그에게 닿았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건만, 그는 전화를 받고 호텔방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분신을 향한 연민에 짓눌리어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취해 결국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깨어났다. 몸을 추스린 그는 지인에게 대학의 일을 맡기고 일본행 비행기를 탄다. 아내가 아들을 돌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들의 부름에 언제 어디서든 달려오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로 인한 모든 마이너스를 감당하면서.

개인적인 핸디캡과 사회적인 결여... 그 두 가지의 압박은 사람을 스러지게 하고 더러 성숙의 자양분 역할을 하기도 한다.

드넓은 세상이지만 저마다 처한 입지는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의 삶을 작품 속에서 해석해 보여주고, 행동으로 분명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가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며 한편 나의 미소함에 민망함을 금치 못하게 된다.

오에 선생은 최근 <오끼나와 노트>라는 70년대 저작물이 문제가 되어 일본 우익들과 법정시비를 겪다 승소했다. 25세 때, 17세 일본 청년이 일본 사회당 당수를 저격한 사건을 소재로 쓴 <세븐틴>을 시작으로, 오에 선생은 천황제를 중심으로 뭉친 일본 우익들과의 싸움으로 일생을 보내셨다. 지금도 늘 협박전화에 시달려 전화도 사용하지 못하고 팩스만을 이용한다고 한다.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인종우월주의

잊을만하면 되풀이 되어, 어쩌면 이것 또한 일제의 문화통치가 아닌가 싶은 일본 각료들의 망언이 곧 다가오는 광복절 즈음에는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르겠다.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책의 저자는 일본의 유명 여류작가이며 가톨릭 신자이다. 그녀는 자신과 일본의 어느 고위 가톨릭 성직자와의 편지왕래를 담은 책을 내놓기도 하고, 안양 나자로 마을의 일본측 후원자 대표로서 사회적 명망이 높은 분이시다.

이 여류작가는 위의 책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밝혀놓았다. "문화와 문명의 선진국인 일본에서 자연스럽게 고도의 문명이 하위의 문명을 향해 흘러간 현상을 ‘식민지통치’라고 하는 건 콤플렉스의 표출이다. 식민지인들의 저급한 울분에 일본의 각료들이 소신있는 발언까지 망언으로 격하시키며 사과하는 건 커다란 우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나자로 마을 고(故) 이경재 신부님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선행을 행해온 그녀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상식은 참으로 어이없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인종우월주의가,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는 개인적 역량이 다른 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들을 보면 거개가 인종우월주의, 개인적 역량 우월주의에서 우러나는 것 같다. 그녀의 선행이 어쩌면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여 마음이 심란했다.
아이리스 창
아이리스 창, 난징대학살 고발

아이리스 창(Iris Chang 張純如)은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지난 2004년 11월 9일 캘리포니아 주(州) 도로에 세워진 자신의 차안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이다. 1968년 미국에서 태어나 AP통신 기자로도 활약하였고 97년 <난징대학살>로 일약 명성과 필력을 인정받았다. 1999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과 맥을 같이 하며 국내에도 번역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1937년, 상하이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은 중국인들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이미 심신이 녹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경의 그들은 건실한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상태였는데, 이때 사령관을 맡고 있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도꾜전범재판 때 사형되었다)가 지병이 있어 요양 중이어서 난징으로 향하고, 부대들은 군지휘관의 통제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휘권이 표류하는 중에, 군국주의적 색채가 강한 일부의 군인들은 지휘관의 인장을 도용하여 민간인 살해를 지시하는 공문을 띄워, 난징에서 일본군들은 허가된(?)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1937년 12월 중순부터 2개월간, 20만~50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죽어 양자강물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니 살기등등한 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난징대학살이 자행되는 시기, 수많은 외국인들과 구미 언론사의 특파원들이 난징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전후(戰後) 일본인들은 난징대학살을 은폐, 축소하였다. 그리고 근래에는 역사교과서에서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와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며 중일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정부와 군부가 위안부 할머니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종군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게 되면서, 역사의 수면 위로 위안부 문제가 공식 제안된 것처럼, 난징학살도 관계자들의 선상에서만 논란이 되어오다 1997년 아이리스 창의 논픽션 책으로 발간되면서 본격적인 역사의 문제로 급상승 물결을 타게 되었다.

일본, 용서 없는 사회

아이리스 창은 어려서부터 조부모님과 부모들로부터 들어온 난징의 학살에 대해 책으로 엮어내고자 하는 소명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성장하여 저널리즘에서 일하다, 자료를 모으고 직접 난징을 방문하여 생존자들의 구술을 들었다. 일본과 미국에 있는 모든 자료들을 섭렵하고 마쓰이 이와네를 비롯한 일본군들의 개인 자료까지 찾아내어, 그녀는 난징에서 벌인 일본군의 잔혹함을 증명해 냈다.

글 중에서, 작가 아이리스 창은 전쟁 중이라지만 1937년 난징에서 저지른 일본군의 잔인성에 대해 해명할 길을 찾지 못하겠다고 절규하며 그녀는 다만 군국주의로 치닫던 20세기 일본사회가 "용서 없는 사회"의 특성을 지닌 시대였고 그러한 가치관에 물든 젊은 남자들이 벌인 전장(戰場)은 가차없는 아귀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라고 쓰고 있다. 타인을 향한 잔인함만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용서없는 사회에서 패자부활전이란 기회는 오지 않으니까.

아이리스 창도 오에 겐자부로 선생처럼 일본 우익들의 끝없는 협박전화와 편지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녀의 재능과 짧은 생애 그리고 덧없는 죽음은 일본의 정체성과 일본 우익집단의 광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측은지심 없는 우월주의, 한국의 L작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만나지는 작가들을 묵상하며, 나는 우리의 유명작가 L선생의 뛰어난 자질을 생각한다. 그분의 글에 배인 은은한 유교적인 향취는 옛어른들을 만나는 기분이었고, 해박한 지적세계는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의 뛰어난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배인 우월감을 마주하면 그 분에게서 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하여 위태로웠다.

그분이 편역한 역사소설 속의 무수한 엑스트라 모두가 하느님의 현현으로 지혜의 화신임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주변의 할머니들 표현에 의하면, 사람은 모두 언챙이 아니면 해챙이라고 한다. 모자라는(?),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 속에 깃든 지혜를 만나게 될 때면 나는 그동안 그 지혜가 감춰진 한 사람의 왜곡된 삶을 보는 것 같아 쓰라렸다.

/이규원 2008-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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