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에서 우리신학연구소 평상모임 열고 공동체 문제 고민

지난 4월 22일 우리신학연구소 달맞이 나눔 ‘평상’이 용산에 있는 ‘수유+너머’에서 열렸다. 이는 그동안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달마다 열리던 월례발표회가 지나치게 학술적이어서 연구소 창립의 본래 취지인 “신학의 대중화”에 걸맞지 않았다는 반성 뒤에 나온 것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구소의 이미영 연구실장은 “평상이란 미국에서 가톨릭일꾼운동을 이끌었던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제안한 원탁토론회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많은 이들이 평상에 둘러앉아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한편 평상은 평신도들의 위치를 격상시키는 평신도 권리찾기라는 의미도 담고 있으며, 평소의 상상과 상념을 나누는 평일의 토론 자리로서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평상시 이야기를 나누는 마당이라고 소개하였다.

평상에서 편안하게 평상시 이야기를

이번에 진행된 우리신학연구소 ‘평상’은 발제자로 초대한 고미숙씨(수유+너머 공동창립자)에게 “지금 한국사회에서 공동체 운동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수유+너머 공동체 공간으로 옮겨서 실상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모임에는 공동체 운동에 대한 큰 관심을 알려주듯이, 박순희, 권오광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 등 천주교사회운동에 종사하는 활동가들을 포함하여 40여 명이 참석하였는데, 고미숙씨의 안내로 세미나실, 강의실, 아이들의 놀이방, 컴퓨터실, 연구실, 서고와 식당과 카페까지 둘러보고, 저녁밥을 먹은 뒤 평상을 열었다.

평상은 독일에서 17년 동안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귀국하여 우리신학연구소 청소년 대안교육센타를 준비하고 있는 이경란씨의 플루트 연주로 시작하여 수유+너머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고미숙씨의 발제가 1시간 가량 이어졌다.

어떻게 먹일 것인가 고민하는 지식생산공동체

고미숙씨는 대학에 교수로 진출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 속에서 수유리의 작은 사무실을 연구공간으로 열었는데, 나중에 고병권씨와 이진경씨 등이 합류하면서 ‘수유+너머’라는 연구공간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대표 없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추장’이 되며,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마다 매니저를 두어 움직이고 있다. 수유+너머는 ‘지식인공동체’로서, 기존의 대학 체계 안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자 네트워크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동으로 생활하는 연구자들이 늘어남에 따라서 ‘먹는’ 문제가 중요해졌고, 고미숙씨는 “어떻게 먹일 것인가?”로 고심하기 시작했는데,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과정을 고민하면서 이 공동체가 단순한 지식에 대한 추구에서 삶의 문제로 나아갔다고 말한다.

고미숙씨에 따르면 “지식인들이 사회적 권위를 부여 받으려면 앎이 일상과 하나가 되는 게 필요한데, 대학사회는 이미 그 활력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대학사회는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돈벌이에 교수들을 동원하고 있으며, 여기서 고유한 지식생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식이란 기본적으로 권력과 싸우는 것인데, 대학교수라는 기득권에 매여서 생산된 지식은 그 사람의 일상과 무관한 지식이어서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진보적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삶과 분리된 지식은 권위를 잃어버리고, 지식활동의 근본적 목적인 ‘구원’의 문제를 다룰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는 존재의 해방을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일상을 지배하는 돈과 지배력, 성욕 등의 윤리적 문제와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예전엔 교회나 절에서 다루었으나 근대에 들어와서 종교가 제도에 갇혀 버렸고, 중세까지도 종교와 지식이 하나의 틀 안에 있었으나 이젠 교회나 절이 삶의 부분적인 영역만 담당하고 지식인의 활동도 분절되고 파편화되었다고 평가한다. “동양에선 앎과 삶이 따로 놀면 내공이 딸려서 스승노릇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고미숙씨는 현재 불교마저도 그저 죽음을 관장하는 영역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며, 이를 스스로 터득해야 하려는 공부는 원초적 본능이라는 말한다.

우리 자신은 아무리 사회가 발전했다고 말하더라도 여전히 공자, 예수, 부처의 매트릭스 안에 있으며, 과거의 지식은 여전히 지금여기와 맞닿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고전 연구도 그러한 맥락 안에서 연구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공부들을 하면서 공동체를 살면, 그 생활 속에서 자신의 약한 고리를 발견하여 수행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혼자서 공부하면 이완할 수 없기 때문에 병들기 쉽고, 시간 안에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나의 무능함, 나의 실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승려나 수도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이유는 이런 경험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미숙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과 구도’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단지 사회운동가와 종교 교리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존재 해방을 통해 타인에게 생명력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존재 자체가 선물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경쾌하게 일상과 만나는 공부 공동체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협소한 전공의 경계를 넘어가서 세상과 만나야 하고, 경쾌하게 일상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공부 자체가 생동감 있게 변하고 삶과 통합된다는 것이다. 실상 제도교육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공부를 끔찍한 것으로 만들고, 영혼을 잠식하는 상품문화 안에서 돈벌이에 나서게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하는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며, 이를 밀고 나갈 열정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는 단지 학문세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넘어서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모든 이가 나름대로 추구해야 하는 것인데, 그 이유를 고미숙씨는 “우리가 산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고, 결국 공부는 우리 모두가 구원을 갈망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상을 진행하는 동안 복도에서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옆방에서 주방 예결산과 관련된 공동체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이곳에선 재미없게 보고하면 질책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아이디어로 삶이 묻어나는 회계보고를 하고, 그 생동감이 복도를 울리게 하는 모양이다. 평상을 접고 카페에서 뒤풀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바깥은 비가 내리고, 언덕바지를 내려가는 마을버스를 타려고 참석자들이 서둘러 우산을 접었다. 전철 역 근처도 아닌 산중턱에 자리잡은 수유+너머라는 공간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며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신학연구소 5월 평상은 5월 28일(수) 저녁 7시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 배경내씨를 초대하여 '청소년 인권교육'을 주제로 연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우리 사회 청소년에 대한 이해와 그들과의 소통을 고민해 볼 예정이다.

/한상봉 200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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