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규 칼럼]

 

▲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던 첫날에도 비가 무던히 내렸다. 미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 기도처로 삼을 천막을 짓던 이들은 명동성당 사목위원들의 기세에 밀려나 결국 가톨릭회관 주차장에 천막을 쳤다. 그러나 이 천막마저 다음날 오후 교구청 관리국 직원들에게 강제철거되었다. 이날 명동성당 앞에 서있던 예수상도 비를 맞고 있었다.(사진/한상봉)

지난 4월 27일 그날의 명동성당은 우리들의 그 명동성당은 아니었다. 1987년 그 해 6월, 민심을 거역하여 영구집권을 꿈꾸던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온 나라가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던 6월항쟁의 중심에는 명동성당이 있었다.

그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공권력 투입해 강제해산하려는 정권을 향해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찾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라고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끝까지 지켰다. 그의 결단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때 그 시절 명동성당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억울한 사람들과 생존권을 위협받아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요 대변자였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에겐 아고라요 해방구였다. 자연스레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오랜 시간 명동성당은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런 명동성당에서 MB정권의 4대강 개발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생명평화 매일미사 봉헌을 시작한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사제들의 기도천막이, 공권력도 아닌 가톨릭회관 직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철거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노루발 못뽑기(일명 빠루)를 들고 와 천막을 뜯어내고 사제들과 신자들을 위협해 쫓아냈다.

이미 천주교 주교회의에서까지 자연을 파괴하여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어기는 4대강 개발사업을 강력히 질타하는 주교단성명서를 공식발표했는데,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말살하려는 명동성당 '측',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얼마 전 주교회의의 결정에 항의하는 자칭 '뜻'있다는 평신도 단체가 유령처럼 출몰하더니, 이들은 과연 어떤 '뜻'을 갖고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지난 2월 11일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가 전국의 본당과 사제들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4대강사업은 우리 사회가 맘몬의 성채, 탐욕의 망루만을 높이 세우며, 무죄한 이들과 빈곤한 이들을 거침없이 팔아넘기는 폭력과 억압의 사회로 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단언했지만, 놀랍게도 그 맘몬의 성채와 탐욕의 망루가 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천주교회의 심장 명동성당 한 가운데 세워지고 있지는 않은가. 

▲부서진 천막 자리에 신자들과 사제들이 올라앉아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피하고 있다. 앞에는 부서진 천막 바닥재 잔해(사진/고동주 기자)

어느 때부터 명동성당은 더 이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무죄한 이들과 빈곤한 이들을 거침없이 팔아넘기는 폭력과 억압의 이 야만시대의 방관자로 그냥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이 폭력사건은 그 반증일까.

그러기에 이번 사건의 배경이 혹시 그 추진을 놓고 이미 논란이 일고 있는 '명동성당 일대 재개발사업'과 연관된 이명박 정권 내 관련 부처 눈치보기 차원에서 빚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거기 서울대교구는 교구청 건물 등으로 사용할 지상 9층, 13층짜리 빌딩 두 동과 지하 4층 규모의 임대시설,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현상변경 신청’을 올해 초 문화재청에 제출했으나 명동성당의 안전성을 염려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보류결정을 내렸으며 곧 재심을 앞두고 있다. 명동성당마저 휩쓸고 가는 듯한 서울공화국의 재개발 광풍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마침 대대적으로 언론보도가 되는 등 사건이 확대되자 가톨릭회관 426호에 기도장소 공간을 마련해주었다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해프닝성 돌발사건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지금 여기 한국천주교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회민주화 노력 이상으로 교회 내부의 쇄신 노력이 시급한 연유이다. 교회의 정체성과 영성 회복을 위한 ‘예언적 자극’이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음은 반드시 40년만의 최악이라는 4월 날씨 탓만은 아니리라.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잃고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이 혼란스런 시대, 어쩌면 명동성당마저 모두가 나서 지켜야만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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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지체장애 1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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