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아이들이 저마다 화분에 꽃씨를 심고 커가는 걸 관찰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피어날 꽃을 기다리며 꽃 이야기를 했다. 나와 책읽기를 하는 아이들 중에는 초등학교 2학년이 많아, 녀석들은 지금 구구단을 외우느라 지쳐있다. 특히 6단과 7단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게 귀엽고 한편 안쓰러웠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양재천변에 그득 피어난 풍년초꽃(망초꽃)을 꺽어다 장식하고 과자파티를 하면서 꽃에 얽힌 동화를 읽고 내가 아는 꽃 이야기를 해주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나팔꽃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나팔꽃을 몹시 아꼈다고 한다. 오사카 성(城)을 쌓고 그 둘레에 백만 그루의 벚나무를 심기도 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그의 심미적인 취향도 대단했던 것 같다. 그의 사후, 그를 따르던 무사들은 반으로 나뉘어 반은 주군의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셨고 나머지 반은 에도(東京)지방의 다이묘 도쿠카와 이에야스와 힘을 합하며 천하를 차지하는 싸움에 들어갔다.

이 전쟁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아들을 주군으로 모시던 어느 무사가 큰 상처를 입고 깊은 산골짜기 낯선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집주인은 상처 입은 무사를 위하여 날마다 흰죽을 끓여 부추를 넣은 보양식을 대접했다. 그런데 그 집 마당에는 나팔꽃이 자라고 있었다. 이를 본 무사는 주인이 들여보내는 죽을 먹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식으면 마당으로 들고 나가 나팔꽃 둘레를 파고 그 곳에 붓고 흙을 덮었다.

무사는 주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나팔꽃으로 환생하여 산골짜기 낯선 집 마당에 피어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충정이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흙 속에서 거름이 된 흰죽을 먹고 자란 나팔꽃은 주변의 다른 꽃들보다 더 탐스런 꽃송이를 피웠을 것이다.

이여의 그림

세상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꽃들이 피어나는 이유는 참으로 비슷비슷하다. 그 꽃의 기원을 밝히는 것에 해당하는 꽃의 전설을 보면 꽃들은 대개가 ‘다하지 못한 사랑을 위하여’ 피어났음을 알게 된다. 서로의 마음이 충실하여 죽음을 맞아 혼백이 되어서도 하늘과 땅으로 흩어지지 않을 때, 사랑의 약속에 머물러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었다. 꽃들은 저마다 아름답고 슬픈 전설을 지니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통하여 나름의 꽃말을 갖고 있다는 게 한 사람의 생애를 만나는 듯했다.

예를 들면, 나팔꽃에 얽힌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에 이여라는 이름의 화가가 있었다. 이여는 어려서 그림을 잘 그렸으므로 나라 안에 널리 이름이 퍼졌다. 거기다가 부인도 아름다웠고 마음도 고왔다.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여부부를 칭송하였다.

이여가 가는 곳이라면 항상 부인이 뒤를 따랐고 이여의 부인이 있는 곳이면 그 주위에는 붓을 든 이여가 있었다. 그런데 이여가 사는 마을에 마음씨 고약한 원님이 새로 부임해 왔다. 원님은 백성들을 다스릴 생각은 않고 고을에서 제일 예쁜 이여의 부인을 잡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잡혀온 이여의 부인은 원님의 부당한 명령을 듣지 않았고 그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여는 잡혀간 부인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그림을 그렸다.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림만 그리던 며칠 후, 이여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이윽고 감옥에 도착한 이여는 손에 든 것을 풀었다.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였다. 그림은 부인이 갇혀 있는 곳을 기어 올라가는 모습의 풀이었다. 이여는 땅을 파고 그 그림을 묻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창밖을 내다보던 이여의 부인은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는 보지 못했던 풀이 창살에 매달려서 마치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간 부인은 소리를 질렀다. "아! 저건 ?"

창살에 매달린 풀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은 그림을 그리다 쉴 때면 불곤 하던 이여의 나팔을 닮은 꽃이었다. 부인은 그 꽃을 보는 순간 곧 이여의 넋이 피어난 꽃임을 알았다. 슬피 울던 부인은 조그만 꽃 속으로 뛰어 들었다. 사람들은 이여가 불던 나팔을 닮은 꽃이라 하여 이 꽃을 나팔꽃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꽃을 보며 그 피어난 이유를 짐작하는 공통된 마음은 이루지 못한 사랑, 혹은 장애물을 넘지 못한 사랑이 꽃으로 환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픔을 느꼈던 것일까...?

무용지용(無用之用), 그래 꽃

누구였던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그는 총살형을 맞는 순간에 총을 겨눈 자 너머에 피어있는 꽃을 보며 죽는 자신과 죽이는 현실을 초월하였다고 평전에 기록되어 있었다.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덧없는, 경제중심의 탐욕에 물들어가는 마음을 성찰하게 된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언뜻 보기에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장구한 시간 속에서 보면 큰 쓰임새를 지니고 있다는 경구인데 꽃을 보며 드는 감정이 바로 무용지용이었다. 아마도 못 다한 사랑이 실체로 드러난 게 꽃이라서 그런지 꽃을 보면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히기보다 조금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것 같다. 세상이 아귀다툼의 장으로 달려가는 걸 그나마 차단해주고 있는 게 꽃으로 드러나는 무용한 듯한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역할인 듯하다.

꽃과 동화를 펼쳐놓고 과자를 먹으며 나는 아이들이 경험적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을 힘을 축적하길 빌었다. 무수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이야기의 세계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열어주어 살아가는 일에 여유를 가지게 해줄 것을 믿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동화 속에 나오는 꽃들의 전설을 읽고 이야기했다. 꽃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었다. 천리향이, 능소화가 그러했다.

/이규원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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