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어느 날 이지상이 찾아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기타를 옆에 세워 둔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이지상의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건물의 모양새로 보아 성공회대학교 교정 어디쯤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표지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결코 밝지 않은, 다소 눅눅해 보이는 그늘진 자리, 담쟁이는 겨우내 메말라 있던 자취를 채 떨어내지 못한 채 이제 막 조금씩 파란 이파리를 내놓으면서 위로 뻗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의자에 앉은 이지상은 웃는 듯 마는 듯 겸손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그 엷은 미소가 강인한 입매와 눈빛을 숨기지는 못한다. 이 사진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그의 분신인 기타다.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정면을 향해 있는 기타의 둥근 몸이 뿜어내는 강한 빛의 여운이 그 사선 위에 자리한 이지상의 눈빛과 연결되며 강한 악센트를 만들어낸다. 내가 사진을 잘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이지상이라는 인간의 아우라를 이처럼 절묘하게 드러낸 사진은 또 없지 않을까 싶다.

▲ <사람을 노래하다> 책 표지(사진 출처/삼인출판사)

이지상은 지난 20년 동안 노래를 만들고 불러온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통기타 하나만을 들고 세상의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늘 속 삶과 사람들을 노래해 왔다. 그의 모든 노래의 주제어는 사람이다. 크고 위대하고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작고 낮고 여린 사람들, 모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할퀴고 찢기고 유린당하면서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가 만드는 노래의 주인공들이다.

화려하고 강한 것들만 조명되고 기억되는 천박한 세상에서 그의 노래가 이른바 비주류의 울타리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는 마치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을 다 껴안으려는 듯 쉼 없이 노래를 쓰고 불러왔다. 이 책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는 그가 노래를 쓰고 부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잔잔한 기록이다.

이지상은 그가 맡고 있는 성공회대학교 강의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 수업에서 ‘노래 듣고 울어보기’라는 과제를 준다. 노래를 ‘듣기’ 보다는 몸으로 느끼고 춤을 추는 데 더 익숙한 세대에게 이 과제는 아마도 조금은 생뚱맞고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렇기에 ‘노래 듣고 울어보기’는 새로운 세대가 노래라는 예술을 진정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뜻 깊은 경험이 아닐 수 없을 테다. 노래를 들으며 울 수 있다는 것은 그 노래 속의 삶과 현실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세계를 낯설게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있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에 담긴 많은 노래와 그 노래 속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바로 그렇게 노래를 듣고, 노래 속의 세상을 읽고, 그 세상 속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새삼 낯설게 우리들 자신을 확인한다. 우리의 눈물은 그런 의미에서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각성의 눈물이며 그 각성에서 비롯하는 희망의 눈물이다.

이지상이 운영하는 누리집 ‘사람이 사는 마을’은 www.poemsong.pe.kr이란 주소를 갖고 있다. poemsong이란 단어가 말해주듯 그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시의 모습으로 그에게 포착되어 한 편의 노래로 완성된다. 그의 노래를 듣는 일은 언제나 노래와 함께 한편의 시를 읽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읽는 일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책에서 낮은 목소리로 세상과 역사의 모진 틈바구니에서 결코 스러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시를 읽게 된다.

이지상의 글도 그의 노래를 닮았다. 잔잔한 경어체로 나지막이 속삭이듯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역사의 핵심을 꿰뚫고 삶의 진정성을 들여다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그의 책은 그래서 삶의 낮은 자리에서 몸으로 겪어온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이고 현대사의 고비 고비를 수놓은 사건과 사람을 시인과 가객의 눈으로 길어 올린 시집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삶의 결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격조 높은 에세이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함께 눈물 흘리며 새로운 각성과 희망의 언어를 확인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에서 제공받은 것입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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