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성직자들의 아동성추행 문제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가톨릭교회가 위기를 겪는 가운데, 사제독신제가 아동성추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바티칸 교황청은 성직자의 독신주의와 성추문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월 14일 <AP통신>에 따르면 로마 그레고리안교황청대학교(PGU)의 교회법ㆍ심리학 명예교수인 쥐세페 베르살디 주교는 교황청 신문 '옵서바토레 로마노'의 기고문을 통해 "성직자 독신주의와 잇따르는 성추문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정설"이라고 강조했다. "미성년자 성적 학대가 독신 성직자보다는 속인(俗人)과 기혼자 사이에서 더 넓게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사제독신제, 정상적인 애정관계 가로막아

그러나 정상적인 결혼을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제들이 다른 출구를 찾아온 것은 사실이다. <마이데일리>에 따르면, 이 참에 프랑스 가톨릭 사제들 사이에서는 사제독신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피레네의 레옹 라클라우 신부는 마르가라는 한 여성과의 20년 넘게 애정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사제직에서 쫓겨났는데, "마르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믿음을 결코 가로막지 않았다. 반대로 사랑은 나를 고무하게 하였다"며 "나는 마르가와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대한 열정을 간직해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라클라우 신부는 마르가와 애정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동료사제들의 간섭이나 반대를 받지 않았으나, 2001년부터 마르가와 함께 살면서 "사제와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받기 시작했고, 결국 2007년에 사제복을 벗고 라클라우 신부는 마르가와 결혼했다. 그는 "독신 금욕주의를 폐기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교회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른 성직자들도 자신들의 파트너로 특정 여성과 오랫동안 애정관계를 맺어 왔던 것을 털어놓으면서 교회가 사제독신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세계적인 노숙자들의 아버지로서 추앙받고 있는 피에르 신부
‘집 없는 자들의 대부’로 알려진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 신부(1912~2007)는 2005년에 출간된 <맙소사…왜?>(Mon Dieu... pourquoi?)라는 책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아 교계에 당혹감을 던져준 적이 있었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어린 나이에 사제가 되어 "독신 서약에도 불구하고 성적 욕망을 완전히 억누를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이 성적 욕망에 굴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적 욕망이 내게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육체적) 관계를 지속한 건 아니다"라고 썼다. 

또한 아베 피에르는 "내연의 아내를 두고 있는 사제들을 알고 있다"며, "이제 교회도 결혼한 사제와 독신 사제 모두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독신 서약이 신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학적인 것"이라면서 사제독신제가 폐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사제 허용, 동성애자 커플의 자녀 입양도 지지했다. 그는 그 이전에도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한 성가대원과의 오랜 정신적 사랑'을 책으로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아베 피에르는 1949년에 ‘엠마우스회’를 설립하고, 집 없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생에 걸쳐 투쟁해왔는데, 프랑스인들은 하얀 수염을 하고 무주택자들을 위한 시위 현장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던 그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 

결혼할 것인지, 독신을 고수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아베 피에르 신부는 "성공회 사제들처럼 가톨릭 사제에게도 결혼할 것인지, 독신을 고수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사랑하는 여자와 오랜 세월 함께 살고 있는 사제들을 알고 있으며, 그런 사생활과 무관하게 그들은 여전히 훌륭한 사제들"이라면서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바오로2세의 사제독신제 폐지불가 원칙을 비판했다. 그는 "결혼한 사제를 수용하는 것은 성직 자체의 위기와 사제 기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때문에 독신 사제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 2005년 10월 2일에 개막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에서 사제 부족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제의 결혼 허용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 베네치아대교구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이 "신앙과 덕행이 입증된 기혼 신자들을 사제로 서품해 달라"는 다른 주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제독신제 문제를 제기했다.

바티칸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톨릭 사제의 수는 완만하게 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은 사제가 1975년 5만8천909명에서 2009년 4만666명으로 1만명 이상 줄었으며, 특히 프랑스의 경우엔 1975년 4만2천명에서 2009년 2만4천명으로 감소했다. 

이에 온두라스의 로베르토 카미예리 아소파르디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서 신자 1만6천명당 단 1명의 사제 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그리스정교에서 갈라져 나온 '멜카이트파' 가톨릭인 그레고리오스 3세 라함 대주교는 "독신제는 아무런 신학적 근거가 없다면서 만약 결혼한 사제가 동방교회의 성사에서 허용된다면 라틴이나 서방교회의 성사에서 결혼한 사제를 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고 <사랑의 성사>라는 교황권고를 발표하여 전례어로 라틴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사제독신제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교황은 "사제독신제는 소중한 보화"로서 동방 교회에서도 독신자 가운데서만 주교들을 선발하는 관습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동정의 상태'에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시기까지 당신 사명을 실천하셨다는 사실은 라틴 교회의 이 전통이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는 확실한 준거점이 된다"면서, "사제 독신제를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라틴전통에서 "독신 생활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활 방식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특별한 방식"이기에 "사제 독신제가 여전히 의무"라는 것이다.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이지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고..

▲ 문제의 베네통 티저 광고
그러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제직에 대한 강력하고 확고한 신념과 다르게 가톨릭교회는 사제독신제로 인한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독신생활의 이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숱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5년에 바티칸에 제출한 오 도노휴의 리포트에서는 "가톨릭 성직자의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거나 아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때 베네통사에서 사제와 수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소재로 광고를 만들어 '파격'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는 게 보고가 있다. 가톨릭 전문주간지인 NCR (National Catholic Reporter)의 존 L. 알렌 주니어와 파멜라 스케퍼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이즈가 만연하면서 수녀들이 가톨릭 성직자들의 안전한 성(性) 파트너로 인식되어 있으며 성추행 문제가 에이즈 발생 이전보다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제3세계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권위적인 사회에 정착한 권위적인 교회제도 안에서 수녀들은 사제들에게 복종을 요구받고 있으며, 때로는 성적인 요구마저 감내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문화적 배경이 작용한다. 혼전 성관계, 매매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어린 여자를 선물로 상납하는 행위, 정부(情婦), 단순히 오락으로 인식하는 성(性)문화 등이 만연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문란한 성관계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용인되는 사회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남성에게 복종할 것을 교육받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직자의 금욕은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한다. 따라서 사하라 이남의 가톨릭교회에서는 주교들이 공공연하게 "독신에 대한 관점이 다를뿐"이라고 말하며, 실제 그곳에서는 가톨릭 사제의 배다른 자식들을 그다지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더 놀라운 것은, 1999년 12월 30일자 캔자스시티 <스타>지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숨지는 가톨릭 성직자의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서 4배나 높으며, 그들의 사망 원인도 교회당국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래로 수백 명 이상의 신부들이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바이러스 보균자로 살고 있으며,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디트로이트의 예비 주교 토마스 검블톤은 "이 점은 가톨릭이 실패한 부분이다. 동성애자 사제와 이성애자 사제들은 그들의 성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성욕을 해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역시 사제독신제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천주교회 역시 사제들이 성적인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귄위주의로 인해 한국사회에서는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스캔들을 쉽로 기사로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 자체에서도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바가 없어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상당 수의 사제들이 특정 여성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교회 처럼 한국교회의 지도부 역시 '사회적으로 드러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묵인하는 입장'이며,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종의 보상금을 여성측에 전달하고 관계를 마무리하거나, 해당 사제를 한동안 교포사목으로 발령내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또한 해당사제가 여성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돈 문제와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즉 교회에 재산상의 불이익을 끼치지 않는 한 비교적 허용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이러한 여성과 돈 문제에 연루된 스캔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적이 있지만, 상대 여성이 신자인 경우엔 '가톨릭교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행위라는 이유로 여성측을 강박함으로써' 사실을 묻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많은 사제들은 "가톨릭 성직자의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거나 아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문제로 사제직을 접고 곧바로 그 여성과 결혼생활로 들어간 전직 사제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독실한 신앙과 건실한 사제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던 사제들이 많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자기 행위와 여성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상호 애정에 확신에서 용기있게 기득권(사제직)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 사제독신제 폐지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상태다. 이는 바티칸에 대한 한국교회의 특별한 충성심 때문이라기보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미국이나 중남미 교회처럼 당장에 사제의 절대부족 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제수급에 대한 한국교회의 자신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한편 교구 사제들의 성생활은 사실상 사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본인이 알아서 적절히 처신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앞서 아베 피에르 신부가 "사랑하는 여자와 오랜 세월 함께 살고 있는 사제들을 알고 있으며, 그런 사생활과 무관하게 그들은 여전히 훌륭한 사제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독신(성결)의무를 파기한 것을 빼고는 여전히 모범적인 사제인 사람들을 자책감과 죄의식 속에 가두어 버리는 사제독신제의 부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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