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만큼씩]

동지가 있다는 것처럼 희망찬 일은 없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동지는 제자들이다. 그러기에 뜻을 같이 한다는 것처럼 큰 연대는 없다. 그 연대가 공동선을 위한 일이라면 그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처럼 말이다.

농촌 공동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청년, 한 때는 대기업 노조위원장으로서 노동자의 희망을 가꾼 동지, 다시 흙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다가 생명농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처자식을 남겨두고 홀로 일송정 만주로 건너간 선구자, 농촌공동체 두레마을 대표로 120만평의 농장에 콩을 심고 된장을 만들어 1톤이 넘게 북한으로 된장을 보내준 인도주의자. ‘새벽을 깨우리라.’ 빈민사목의 대부인 성직자가 뉴라이트의 길로 접어들면서 정리해고의 아픔을 당한 대표, 그런 형님이 생태마을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살게 되었다.


오늘은 동지인 형님의 생일이다. 홍합에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 오전에 형님과 포도밭에 거름을 냈다. 오후에는 집과 창고 사이를 정리하고 밤자갈을 깔았다. 땅에 묻어놓은 김치 통도 정리를 했다. 배추김치 통에 총각김치가 한 포대 들어 있었다. 무농약으로 첫 수확한 무와 고추로 담은 김치였다. 누렇게 익은 총각무김치가 군침을 돌게 했다. 이심전심일까. 형님이 포대를 풀어서 총각김치 한 가닥을 때어주었다. 형님과 쪼그리고 앉아 먹는 총각김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국물에 국수 말아 먹으면 죽이겠는데…."
"좋습니다. 국수는 내가 끓일게요."


김치 통을 가지러 주방에 갔다. 밤자갈을 깔기 위해 삽질을 해서인지 촐촐했다. 샛거리로 백설기를 챙겼다. 백설기 반쪽을 떼서 형님 입에 넣어드리자, 총각무김치 한 가닥을 찢어 내 손에 건넸다. 백설기에 무김치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은 꿀맛이었다.


총각김치를 한 통 담아 주방으로 갔다. 저녁 6시, 프로판가스보다 경제적인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가스에 냄비를 올리고 포트에서 끓은 물을 부었다. 소면을 넣고 저었다. 빨리 퍼지라고 찬물 한 대접도 넣었다. 찬물에 국수를 씻었다.

사기대접에 국수를 얹고 미리 썰어놓은 총각무김치와 도토리묵을 올렸다. 국자로 총각무김치 국물을 네 국자 끼얹었다. 참깨를 뿌리자, 총각무 묵 국수가 완성되었다. 생일을 맞이한 형님을 위한 특별요리, 새콤한 김치 국물과 도토리묵과 얇게 썬 총각무김치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먹는 국수, 생일선물로 준비한 국수 맛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생태마을 공동체의 꿈과 연대의 맛을 아는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종수 /전주교구 신부. 진안 부귀에서 공소사목을 도우며 농촌환경사목을 맡고 있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태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신자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지독한 갈증>과 시사수필집 <첫눈같은 당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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