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김명준 감독, <우리학교>(2006)

2006년 가을에 열렸던 인디다큐 페스티발 개막작 <우리학교>는 반응이 너무도 좋아 일반극장에서도 한참 동안 상영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렇게 놀라운 반응을 얻은 것이 이례적인데, 영화 자체가 워낙 잘 만들어졌고 또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롱런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김명준 감독이 그곳 사람들과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 노고의 성과다.

눈 가득한 일본 홋가이도의 유일한 재일조선인학교가 영화의 배경이다. 모두 ‘우리학교’라고 부르는 이 학교는 분위기가 매우 활기차고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는 공동체다. 일본 속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조선인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은 먼저 말에서 시작한다. 일본어에 한참 길들여진 아이들이 조선어를 배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매번 자기와 서로를 체크하면서 말을 익히는 과정이 버겁게 보인다.

한 맺힌 역사를 고스란히 안은 일본 곳곳의 재일조선인학교는 동포들의 크고 작은 노력과 헌신, 일본인과의 투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것이 자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다. 이렇게 힘겹게 재일조선인학교를 만들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따로 대학자격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것에서부터 ‘각종학교’로 분류된 재일조선인학교는 많은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민족을 위해, 일본 내의 동포를 위해, 자신들의 부모님, 선생님과 동무들을 위해 사력을 다해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경기에서 진 후 엉엉 울고, 같이 우는 그 생각 바른 일본인 코치의 모습이 영화를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조국방문여행으로 북한을 찾는다. 이 여행에 국적이 남한과 일본인 학생들은 제외된다. 북한과 일본의 긴장관계로 힘겹게 만경봉호에 올라타고, 이들의 여행을 같이하지 못하는 김명준 감독은 한 학생에게 카메라를 살짝 넘겨준다. 카메라에 담겨진 그곳에서의 생활은 마냥 즐겁다. ‘사람들의 눈이 맑았다’, ‘사람들이 살았다’는 여행 뒤 학생들의 소감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분명 그곳에서의 환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온전히 동포로 받아주는 그 느낌이 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매우 소중했을 것이다.

영화 끝자락에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학교를 떠난다. 이들은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시절부터 여러 동무들과 선생님과 오랜 시간을 같이했기에 그 헤어짐은 너무도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래도 이들의 ‘우리학교’는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이 안에서 이들을 꼭 품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일본사회 안에서 굳세게 살아가야 한다. 졸업식장에서 앞으로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되뇌인다. 그 쉽지 않을 길을 그러나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걸어가리라는 희망 속에서, 그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온 편지의 낭독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국사회에서는 민족, 민족의식, 민족주의하면 많은 것이 용서되는 분위기다. 그것이 일정 정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참 맹목적으로 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도 몰고간다. 이 영화도 표면적으로 민족이 강조되어 자칫 민족이라는 관점에서만 가슴 울컥하게 될지 모른다. 물론 민족이나 민족주의적 가치의 소중한 부분마저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처럼 단일성이 지배하여 다양성과 소수성이 배제되고 억압되는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서의 삶을 생각해본다. 아주 엄밀하게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이중의 정체성에 힘겨워하지 않고 귀화하여 동화되어 잘사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삶이란 또 다른 선택의 연속이기에 그 귀화와 동화를 거부하고 조선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이들의 선택 또한 존중되어야겠다.

이 영화를 보고 울컥하게 되고, 찡하게 되는 것은 민족적 대의와 민족정체성이라기보다 다른 선택 속에서 이어지는 그 힘겨운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애환들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틀을 살짝 넘을 때 더 넓고 풍성한 가치들을 한없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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