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자원봉사자들이 ‘자비의 장인’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교종, 전 세계 신자들과 함께 하는 12월 기도지향 발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 세계 신자들과 함께 하는 올해 마지막 12월 기도지향을 발표하면서 신자들에게 자원봉사 단체와 그 안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자비의 장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메시지 내용.

“자원봉사 단체와 그 안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자가 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선택입니다. 세상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함께 일함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희망 증식의 기적을 현실로 만듭니다. 또한 정의의 요구, 가난한 이들의 보호, 피조물 보호 등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우리를 열어 줍니다. 자원봉사 단체와 봉사자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단순히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그것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눈으로, 주의 깊은 귀로, 우리의 친밀함으로 자비의 장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 자원봉사 단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공동선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국제협력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되도록 모두 기도합시다.“ 

한편 유엔 자원봉사 프로그램(UNV United Nations Volunteers program)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전 세계 자원봉사자는 총 8억 6240만 명이다. 많은 국가에서 자원봉사 단체는 그리스도교 가치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대림절은 위선의 가면을 벗을 은총의 시간”

교종, 12월4일 대림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4일 대림 제2주일 낮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겉보기에는 가혹하고 냉정한 사람인 세례자 요한의 ‘비밀’을 파악하도록 신자들을 초대했다. 교종은 “이중성과 위선의 알레르기는 우리 각자와 관련된 위험입니다. 대림절은 이러한 위선의 틀에서 벗어나 회개의 물에 잠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복음에 나타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금욕적이고 급진적으로 두려움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가혹함과 냉정함을 뛰어넘어 내면의 비밀을 이해해야 합니다. 낙타 털 옷을 입은 성 요한 세례자는 위선으로 알려진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이 호기심이나 기회주의로 접근하면 매우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위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례 요한은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도 때때로 그 바리사이들과 조금은 닮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우리 생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고, 하느님과 교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보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 때만 허용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모여든 사람에게 "당신의 삶을 버리지 마시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위선은 가장 심각한 위험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영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닌 겸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강하고, 위대한 사람들입니다"가 아니라 겸손하게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 이는 추상적이 아니라 우리 각자는 먼저 ’이것, 이것, 이것‘ 등 우리 자신의 죄와 결점, 위선을 고백하고 대죄에서 내려와 회개의 물에 몸을 담가야 합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지 않습니다. 대림절은 우리가 가면을 벗고 겸손한 이들과 함께 줄을 서고, 자급자족한다고 믿는 추정에서 벗어나 죄를 고백하는 은총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은 겸손입니다. 그것은 우월감, 형식주의 및 위선으로부터 우리를 정화하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성을 가진 우리를 위해 다른 형제자매, 우리와 같은 죄인, 그리고 다시 오실 구세주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보도록 촉구하게 합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합시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항상!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시며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 돌아가라는 세례자 요한의 사랑의 외침을 듣고 이 대림절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도록 합시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대림절은 은혜의 때입니다. 늦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은 우리 가까이 계시며 지금은 회심의 때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당신 옆에 계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시며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지루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피곤하지 않으십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서 우크라이나 평화를 중재해 주시기를”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날 삼종기도 후 우크라이나 평화와 폴란드 교회의 동유럽교회를 위한 기도와 모금의 날에 언급했다. 교종은 “이번 목요일은 교회가 기념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바라보고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이 우크라이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특히 순교한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성모님 전구에 맡깁니다. 또한 폴란드 교회가 매년 대림 둘째 주일에 실시하는 ‘동유럽 교회를 위한 기도와 모금의 날’에 동참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올해는 전쟁의 재앙으로 인한 전기 부족으로 불안과 공포의 추운 겨울을 지내는 우크라이나 교회를 위한 모금으로 헌정되었습니다. 폴란드 신자들에게 감사합니다. 

한편 폴란드 교회의 ‘동유럽 교회를 위한 기도와 모금의 날’은 1989년 폴란드 주교회의가 제정한 이래 동유럽 교회와 형제적 사랑과 연대를 표현하고 있다.

 

교종, 성탄절 전례 일정 발표

바티칸 공보실은 12월1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올해 12월과 새해 1월 초 사이의 예수 성탄 대축일 기간 전례 집전 일정을 발표했다. 

교종의 성탄 축하 행사는 12월24일 저녁 7시30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성탄 전야 미사로 시작된다. 성탄절 당일 25일 정오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로지아에서 전통적인 우르비 엣 오르비(로마에서 도시로) 강복을 거행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올해 마지막 날 12월31일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 한 해를 저녁기도와 테데움(장엄 찬미)을 주재한다. 

새해 첫날 1월1일에는 오전 10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마지막으로 교종은 1월8일 오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주님의 세례 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어린이들에게 세례성사를 베풀 예정이다.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많은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티칸 대림절 피정, 바티칸 설교자 칸탈라메사 추기경 강조

바티칸의 교종의 개인 설교자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은 12월2일 바오로 6세 홀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비롯한 바티칸 꾸리아 멤버들이 참석한 대림절 첫 번째 특강에서 이번 대림절의 세 가지 성찰 중 첫 번째 성찰의 주제인 ‘신앙의 문’을 종교간 대화에 대한 내용으로 강의했다. 강의 내용.

종교간 대화는 복음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화 스타일을 말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영원한 타당성’을 유지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세상과 모든 민족’이 예수님의 메시지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방식이었을 때‘ 쓰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유효하지만 이미 종교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들 종교에 대한 존경과 인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를 이해하고 실천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인준 받지 않은 회칙'(Regula non bullata)에서 쓴 것처럼 그는 사라센과 다른 이교도에게 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는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모든 인간 피조물에게‘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전능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시사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현재 ’종교의 다원주의적‘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은 실제로 그리스도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발전했습니다. 다른 종교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거짓으로 간주되었거나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과 달리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전통적 격언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얼마 동안 각 종교에 존재하는 가치에 대한 상호존중과 인식을 기반으로 한 종교간의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출발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선언문이었지만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가 비슷한 방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으로 교회 밖의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지금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믿음’에 부여된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고대 격언은 ‘믿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격언으로 결국 살아남지 않을까요? 일부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사실상 후자가 ‘주요 교리’로 선교적 헌신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원은 처음부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됩니다. 이것은 인류의 많은 부분을 박탈함으로써 잘못된 그리스도를 제시합니다. 

예수는 하느님이고 그 외 관련성이 제한된 단일 부문으로 제한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본성에 따라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이 자신들에게는 율법이 됩니다.”(로마 2,14-15)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마태 25,3) 결론은 ‘나는 신을 받아들이는가?’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도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라고 단언했습니다. 더욱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이 계시고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히브 11,6 참조) 이것은 물론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동일한 하느님을 믿는 유대인 형제들에게 적용됩니다. 

이러한 낙관주의의 주된 이유는 다른 종교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면적인 은총’(1베드 4,10)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절약하기 위해 하느님은 그분 은혜의 ‘통로’를 만들었지만, 하느님은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특별한 수단 중 하나는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짊어지고 구속하신 후에 그것 또한 그 자체로 보편적 구원의 성사입니다. 신비롭게도 신자들의 고난뿐 아니라 모든 고난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의 수난에 부족한 것'을 채웁니다.(콜로 1,24참조) 그리고 교회는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면서도 무고한 이들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결코 ‘불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정죄받을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긍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나타내신 무한한 선물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교종, 올해 성탄 트리 기증한 과테말라 대표단과 성탄의 의미 성찰

교종은 12월3일 올해 성탄절을 위해 성 베드로 광장 성탄 트리와 광장과 바오로 6세 홀 두 개의 성탄 구유를 봉헌한 수트리오, 로젤로, 과테말라 대표단을 바오로 6세 홀에 초대해 하느님과 친밀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성찰했다. 바티칸의 성탄 트리와 구유는 12월3일 저녁 축복식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었다. 말씀 내용.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마구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작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 베드로광장과 이곳을 장식한 여러분의 성탄절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이를 아름답게 만들고 장식한 목공예가들, 로젤로의 소년들, 그리고 팔레나 종묘장에서 전나무를 재배한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젊은이와 노인들의 수고로 하느님이신 아기 예수님의 상징적 거처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젊은이와 노인을 계속 매료시키는 두 가지 상징으로 특히 나무처럼 사람에게도 뿌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만이 굳건하게, 자라고, 성숙하면서 그것을 흔드는 바람에 저항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준점이 됩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여러분, 뿌리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견고한 기초가 없으면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도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굳건함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의 뿌리를 내리는 기초를 상기시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남아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탄 트리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장애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입니다”

교종, 12월3일 국제 장애인의 날 맞아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3일 UN이 제정한 국제 장애인의 날을 맞아 모인 장애인들에게 연설하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소속과 포용’이 특정한 경우에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사목활동의 목표가 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오늘은 UN이 제정한 국제 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리가 매일 전쟁 속보를 듣는 이 시기에 장애인들의 증언은 평화의 구체적 표시며, 보다 인간적이고 형제애가 넘치는 세상을 위한 열망의 표현입니다.​​장애인들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시민사회와 교회 공동체 의무입니다. 포용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지원한다는 것은 모든 차별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인정받고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구체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애와 상호 친교의 경험이 없다면 포용도 없습니다. 포용이 정치적 슬로건으로 연설에 사용되는 슬로건으로 남아 있으면 포용은 없습니다. 또 공존과 관계 실천에 전환이 없다면 포용이 아닙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시선은 권력자들과 심지어 종교의 관심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부드러움과 자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무관심을 근접성으로, 배제를 소속감으로 바꿀 때마다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의 다양한 차원에서 그들의 실존적 필요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남성과 여성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할 권리일 뿐 아니라 소속하고, 관계를 맺고 충만함을 경험할 정도로 영적인 삶을 계발하는 놀라운 선물에 대해 주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친교의 영성을 증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장애인이 건물과 집회 장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언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물리적 장벽과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의무이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친교의 영성을 증진하여 모든 사람이 고유한 인격을 가진 몸의 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각 사람이 자신의 한계와 재능을 가지고 전체 교회의 선익과 사회의 선익을 위해 자신의 몫을 다하도록 격려받을 것입니다. 

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희망은 소속과 포용이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사목활동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의 구원이시며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생명의 식탁에 초대하신다는 것을 선포할 때 신뢰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 결혼식에 초대했는데 손님들이 오지 않은 그 남자의 이야기를 말씀하실 때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마태 22,1-14 참조) 주인은 하인을 불러 "사거리로 가서 모두를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젊은이, 노인, 병든 자, 작은 자, 늙은 자, 죄인과 죄가 없는 자. 모두, 모두의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아무도 배제 없이. 모든 사람의 집이며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의 집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배제의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을 조금은 받습니다. ‘모두’라는 단어에는 포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참된 포용’을 의미합니다.

 

“지중해 복지를 위해 이주민 환영은 필수적입니다”

교종, 제8차 ‘우리의 바다’ 대화 컨퍼런스 참석자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3일까지 로마에서 진행된 제8차 로마 ‘우리의 바다’(Mare nostrum) 대화 컨퍼런스 참석자들에게 인간의 이동성에 대한 공통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지중해에서 용납할 수 없는 항상 피할 수 있는 인명 손실이 계속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회의에는 정치권 대표와 분석가, 사회, 경제 및 언론계 인사들이 모여 지중해의 주요 문제를 논의했다. 연설 내용.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역 문제의 세계화를 보여 줍니다. 이는 아무도 혼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상호연결성’은 가능한 광범위한 비전을 놓고 함께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헤아릴 수 없는 피해'로 군사적, 민간 피해, 에너지 위기, 금융 위기, 인도적 위기, 식량 위기 등 전 세계적으로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곡물의 80퍼센트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는 북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짓밟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가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세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어떤 위기도 다른 위기와 별개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무분별한 방식으로 개별 문제를 다루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만성적으로 만드는 부분적이고 결함 있는 해결책에 도달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바다‘ 소명은 ’진보, 발전, 문화적 소명‘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명은 세 대륙을 연결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주를 통한 매우 유익한 연결입니다. 오늘날 바다는 인류의 갈림길에 있고 수많은 기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교류와 나눔과 협력‘의 자리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욱 단순한 경제적 관계뿐 아니라 이주민과의 관계를 포함한 더 인간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형제애‘를 재건하기 위해 ’만남의 문화를 재개‘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에 봉사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톨릭 교육자들”

교종, 국제 가톨릭 교육 사무총장에 보낸 격려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1일 인류 봉사에 대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가톨릭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는 국제가톨릭 교육(OIEC) 사무총장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가톨릭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는 우리를 능가하고 초월하는 말씀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회의하고 있는 OIEC 필리프 리처드 사무총장에 전달된 메시지는 보다 형제애적 인간애를 위한 관계구조를 회복하는데 가톨릭 교육자들의 역할을 논의하도록 촉구했다. 메시지 내용.

교육은 교회생활의 본질적 부분입니다. 교육은 의무이자 도전이며 그리스도교인에게 ‘예수님이 교회에 맡기신 예언자적 역할에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프로그램, 훈련, 자원, 수용 영역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단순히 인간적 생각으로 교육에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사와 교육프로그램 작성자들은 개인의 온전한 형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는 도구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유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톨릭 교육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학교 전체는 가족이나 사회의 다른 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다양한 요소가 통합되는 교훈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가톨릭 학교의 정체성은 현존하는 불신자와 함께 대화에 들어가면 신앙인에게 도전이 되고 대화의 다리를 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지상생활을 보내셨고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과 제자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방법은 사랑의 행위이며 순종의 행위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각자의 소명에 따라 그분의 메시지를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육의 첫 번째 특성은 친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수업은 모나드(역자 주: monad, 넓이나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가 아니며 학교는 물이 새지 않는 구획이 아닙니다. 교육자들은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 안에서 인류를 위한 공동 프로젝트에 ’보냄‘을 받았다는 점을 잊지 말고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육의 두 번째 특징은 ‘항상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걷고 계시며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권고하시고 땅 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가톨릭 학교는 지역적으로나 보편적인 사회적 문제를 포용해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과 개념에 마음을 열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걷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언어를 조정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지혜를 키우고 이 일이 하느님의 도움과 모든 사람의 지원과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의 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밝히시고 인간의 현실에서 올라와 하느님께 대한 숭고한 지식에 도달하는 지혜를 여러분에게 허락하기를 바랍니다.

 

“협상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쟁은 국제범죄입니다”

교종, 바티칸 라테라노 대학 순회 평화학교 지도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1일 바티칸 라테라노 대학에서 ‘순회 평화학교’에서 봉사하는 ‘평화를 위한 지도자’(Leaders pour la Paix)들을 만나 분쟁으로 위협받는 인류 가족에게 가장 큰 위험은 평화를 구축하려는 의지의 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우리의 현실은 평화를 위한 지도자들의 막중한 책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 가족이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 상황의 큰 원인은 인류 평화를 건설하려는 의지의 부족입니다. 여러분 사명은 전쟁에 직면하여 무기를 침묵시키는 것이 첫째 단계지만 공존의 현재와 미래, 제도와 구조가 재구성되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평화에는 화해의 형태, 가치 공유, 필수 불가결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국제 관계의 일반적 패턴을 뛰어넘어 창의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제 또는 국내 분쟁을 해결하는 임무를 전쟁에 맡기는 자들과 민족들의 공존에 필요한 정의의 조건을 강제로 도입하려는 자들과 맞설 것을 요청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명피해, 인민의 고통, 민간 건축물의 무차별 파괴, 인도주의 침해는 단순한 전쟁 '부작용'이 아닌 국제범죄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복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나약함과 연약함의 표시일 뿐입니다. ‘용기’라는 핵심 단어는 '용기' 있게 협상하고 조정을 진행하며 화해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지 않는 용기는 갈등의 원인에 직면하고 이해관계와 헤게모니 계획을 버리고 적의 범주를 극복하고 보편적 형제애의 건설자가 되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의 공통 열망인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특권층의 시선은 가장 적고, 이는 전쟁의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이론적 평화가 아닌 인간 기대 수명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도전' 앞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빈곤과 기아를 퇴치하고, 건강과 보살핌을 보장하고, 공동의 집을 보호하고, 기본권을 증진하며, 이동성으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개발을 시작하고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우리들 각자의 존엄성과 동의어가 될 것입니다.

 

“가족은 형제애 요소이며 심각한 인구 겨울에 반응합니다”

교종, 이탈리아 가족협회 포럼 참가자들에 출산율 장려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일 바티칸 클레멘티나 홀에서 이탈리아가족협회 포럼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가족이 되는 기쁨은 부모, 자녀, 조부모, 삼촌, 사촌이 매일 단순함과 봉사의 스타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격려하는 구체적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정부 당국에 가족을 위한 좋은 정책과 출생률 추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결정을 요구했다. 연설 내용.

이번 이탈리아 가족협회 포럼은 이탈리아 가정, 특히 부당하게 차별받는 여러 자녀를 둔 가정의 현실과 필요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목소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녀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되는 기쁨, 즉 ‘행복과 고통의 순간을 함께 겪을 수 있는 기쁨, 때때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려운 기쁨‘을 증언하는 가정에는 이 모든 상황을 넘을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깊은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감사의 마음과 선물로 인식되는 가족이 되는 것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먼저 하느님께 감사하고 조상들과 조부모, 부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자녀와 손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노인들과 성인의 사랑을 재생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이 고유한 여정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부모와 자녀는 물론 조부모, 삼촌, 사촌과 함께 노력하는 단순함과 봉사의 스타일이 이를 증언합니다. 

두 번째로 이번 포럼은 ’교회교리와 사회적 실천에 기초‘하여 정부로 하여금 가정을 위한 좋은 정책을 촉진하도록 격려합니다. 이는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가족정책을 담당하는 모든 기관과 대화를 통해 이행된 약속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랑에 기반을 둔 모든 가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마음을 열고, 이웃과 더 넓은 범위에서 시작하여 환영하고 지원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족협회는 사회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 대륙의 모든 가정을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의 한 요소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동시에 세계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협회의 헌신은 인구학적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 출산율의 역전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는 여러 번 언급했지만 다시 반복합니다. 우리는 심각한 인구통계학적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힘과 작업, 설득할 아이디어로 이에 대응해야 합니다. 

제 비서 신부님이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다 어린이용 트롤리를 탄 아주머니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광장의 어린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트롤리 안에는 작은 개가 있었답니다. 이는 매우 상징적 광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출생률 절벽이라는 주제를 더 많이 끌어내고자 하는 계획과 현실적이고 문서화된 제안과 함께 전문가들의 조언을 제공하면서 건설적 방식으로 수행되는 담당기관의 업무를 감독하는 포럼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이 두 가지 길, 즉 가족이 되는 기쁨에 찬 증언과 가족을 위해 좋은 정치에 대한 헌신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나 부부로서, 가족으로서의 자신도 돌보십시오! 기도, 배우자 및 자녀와의 대화, 교회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연합적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헌신하기를 원하는 가정은 ’부부 영성과 가정 영성‘을 키워야 합니다. 모든 가족을 모범이신 마리아와 성 요셉 성가정 보호에 맡깁니다.

 

“베네딕토 16세 신학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결실”

교종, 라칭거 상 시상식에서 전임 베네딕도 교종 신학 업적 칭송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1일 거행된 2022년 라칭거 상 시상식에서 올해 수상자 미셸 페두 신부와 조셉 와일러 교수의 학업과 삶에 대한 헌신을 치하하면서 보편교회를 위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적 현존과 기도의 동반’을 강조했다. 또한 이 행사를 통해 ‘계속해 결실을 맺는’ 그들의 신학 연구과 사상에 대한 공헌을 재확인했다. 2011년 시작된 라칭거 상은 조셉 라칭거 교종(베네딕토 16세)과 같이 신학 분야에서 과학적 연구를 위해 두각을 나타낸 학자에게 수여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에는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예술 세계에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작곡가와 예술가 및 작가들도 수상자에 포함되었다. 연설 내용.

오늘 영예로운 라칭거 상을 수상한 미셸 페두 신부와 조셉 와일러 교수께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행사를 통해 특히 보편교회를 위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적 현존과 기도의 동반’과 이 행사를 통해 계속해서 결실을 맺는 그분의 신학 연구와 사상의 공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제2차 바티칸공의회 60주년을 기념하면서 당시 공의회에서 라칭거 신부님의 커다란 역할을 회상합니다. 그분은 훗날 베네딕토16세 교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성 요한바오로 2세 후임으로 보편교회 목자로 교회 공동체를 이끌면서 자신의 신학적 사상을 구현하셨습니다. 최근까지 베네딕토16세는 공의회가 우리 시대에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핵심문제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제공했기 때문에 공의회가 그 중요한 기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수행하는지 강조하고 계십니다.(제10회 라칭거 재단 국제심포지엄, 2022년10월7일) 

사실, 베네딕토16세는 ‘개혁과 연속성의 해석학’을 제안하면서 공의회 문헌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베네딕토16세의 신학적 공헌은 오페라 옴니아(Opera Omnia) 출판을 통해 제공되며 독일어판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고 다른 언어도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헌은 우리에게 교회의 여정을 위한 견고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친교 속에서 살라고 가르치신 '살아 있는' 교회는 시노드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움직이고 있으며, 그분의 신학적 성과는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살고 있는 세상을 섬기는 사명에 항상 열려 있습니다. 복자 요한바오로 1세와 성 요한바오로 2세의 이름을 딴 바티칸재단과 요제프 라칭거 재단의 협력과 봉사는 그분들의 교도권과 생각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위해, 공의회를 이행하고, 온전한 생태학, 인권,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 간 만남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라칭거 상을 받은 미셸 페두 신부와 조셉 와일러 교수는 베네딕도16세가 ‘매우중요’하다고 여기는 연구 및 교육 분야에 큰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특히 페두 신부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거장들인 동서양 교부들의 작품과 수 세기에 걸친 기독론의 발전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또한 그분은 과거에만 시선을 두지 않기 위해 신앙 전통에 대한 지식을 교회 일치와 타 종교와의 관계 분야에서 현재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키웠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신학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은 용감한 계승자인 페두 신부께 경의를 표합니다. 프랑스신학의 공헌이 없었다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자양분이 된 풍부함, 깊고 폭이 있는 성찰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그 실행을 위해 계속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또 한 분 수상자 조셉 와일러 교수는 유대교 신자로는 처음으로 영예로운 상을 받았습니다. 

베네딕토16세는 그의 개인적 신학 연구 목적은 처음부터 공의회 후 취해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간의 화해의 모든 단계를 공유하고 촉진하는 것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단언하셨습니다. 또한 현대 세계에서 신앙과 법적 이성의 관계를 포함한 다른 문제에서 베네딕토 16세와 와일러 교수 사이의 조화는 법실증주의의 위기와 주관적 권리의 무제한적 확장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사적인 영역으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는 문화에서 종교의 자유 행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와일러 교수는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용기 있는 입장을 취했으며, 필요한 경우 학문적 토론의 수준, '분별력'으로 이동해 근본적 가치에 대한 합의와 공동선을 위한 갈등을 극복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이 라칭거 상은 마땅히 이분들에게 돌아가야 할 상일 뿐만 아니라 헌신, 연구, 삶의 의미가 매우 깊음을 보여 주며, 모두의 관심과 찬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 수상자들께 거듭 축하드리며. 앞으로 계속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또한 수상자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라칭거 재단의 회원과 모든 협력자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교종, 2023년 초 콩고 공화국과 남수단 순방 일정 확정

바티칸 공보실은 12월1일 프란치스코 교종이 2023년1월31일부터 2월5일까지 에큐메니칼 평화순례를 위해 콩고 민주 공화국과 남수단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원래 프란치스코 교종의 콩고와 남수단 방문은 지난여름 예정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연기된 것이다. 공보실은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31일부터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사도적 순방을 하며 2023년 2월3일 킨샤사 일정을 마치고 남수단 주바로 떠나 그곳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와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의장과 합류해 함께 2월3일부터 5일까지 남수단 주바에서 세계 평화의 순례가 진행된다. 교종의 사도적 순방 하이라이트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내전 희생자들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수단에서는 국내 실향민들과의 만남과 교회 일치 기도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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