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첫 입장 발표, 민변 TF 통해 유가족 만남 진행
"유가족 만남 차단한 정부, 비인도적" 6가지 기본 요구안 밝혀

“아들의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일시는 추정, 사망 장소는 노상, 사인은 미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들이 어떤 순간에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능한 이 정부에 아들을 빼앗겼지만, 그저 눈물만 흘리는 무능하고 무지한 엄마는 되지 않겠습니다.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솔직하십시오. 제대로 조사하고 책임 있는 이들은 책임지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십시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처음으로 공개 자리에서 정부의 공식 사과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적극 지원을 요구했다.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는 유가족 30여 명이 참석해 심경과 입장을 말했다. 참사 발생 뒤 24일 만이다.

자리를 마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TF'은 기자회견에 앞서 연락이 된 유가족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했다.

민변은 참사 이후 변호사 50여 명이 참여한 TF를 구성하고, 현재 증거보존 조치를 비롯한 수사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으며, 가족들과 협의하에 부족한 사후 조치에 대한 문제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유가족 모임은 이 과정에서 구성됐다.

오민애 변호사(TF팀)는 “유가족들에게 정부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이들이 만날 방법이나 기회조차 없었다.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유가족 상황과 요구를 알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피해자 가족은 피해자를 대신해 억울함을 풀고 법에 호소할 권리, 즉 신원권이 있다. 국제인권기준도 진실과 정의, 배상, 재발 방지의 권리와 이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일방적 입장 공표가 아니라 당일 상황에 대한 진실,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고 직접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기자회견 배경을 설명했다.

22일 민변 사무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첫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시작 전,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저는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28일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돌아갑니다. 비엔나에서 제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셔서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북한 피살 공무원 사건으로) 국민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국방부, 해경, 통일부 장관을 구속하려 했던 정부에 묻습니다. 이태원에 있었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했고, 어디에 있었는지 답해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는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입니다. 10월 29일 10시 15분, 이태원 도로 한복판, 차디찬 현장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유가족은 묻습니다. 거짓말을 일삼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떠벌린 이상민 행안부장관, 용산구청장, 경찰서장, 112 치안 종합상황실장 등에게 꽃다운 우리 아들, 딸들 생명의 촛불이 꺼질 때 무엇 하고 있었냐고.”

“참사 이후에도 정부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의 모임 구성,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도 없었으며, 사고 발생 경과와 내용, 수습 상황, 피해자 권리 안내 등 기본적 조치조차 없었습니다. 참사와 관련돼 가장 공감하고 서로 위안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같은 유가족입니다. 이를 차단한 것과 다름없는 정부 대처는 비인도적입니다.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들끼리 만날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반정부세력입니까. 장례비와 위로금 지급은 그렇게 빨리 결정하면서,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족들이 만나 이야기할 공간은 왜 참사 24일이 넘도록 마련하지 않는 것입니까. 정부는 우리의 이야기에 답변해야 합니다.”

“해가 뜨는 것이 두렵고 제 입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이 싫어 입을 꿰매고 싶고, 제 뼈에 붙은 살을 갈기갈기 찢고 싶습니다. 이 참사는 분명히 초동 대처가 제대로 없어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입니다. 법을 공부한 적 없지만 살인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상하 체계가 무너지고, 탁상공론하는 지식인, 발로 뛰라고 뽑아 놨는데 숨만 쉬는 식물인간들.... 10만의 아이들도 보호할 수 없고, 158명을 구할 수 없다면 5000만 국민은 나라를 버려야 합니까. 다시는 우리 청년들이 생매장당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이들을 형사법으로 엄히 다스려 주십시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 6명이 그간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듣는 이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br>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 6명이 그간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듣는 이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희생자 6명의 가족은 참사 24일이 지나도록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점과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만나서 이야기할 자리가 한번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에 항의하고, 무책임한 발언과 태도로 일관한 관계 부서 책임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정부에 대한 6가지 요구사항에서 “정부, 지자체, 경찰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참사의 모든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할 것, 성역 없고 엄격하며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들이 참여하고 납득할 수 있는 진상 및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 지원, 유가족과 협의에 따른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 및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한 윤복남 변호사(TF 팀장)는 “기자회견을 목적으로 유가족을 만난 것이 아니다. 이야기하면서 이미 참사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진행되는 상황이 너무 분하고 원통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유가족이 그동안 만나지 못한 것, 시민분향소를 비롯해 어떤 것도 가족의 의견이 반영된 적 없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현재 불거지고 있는 희생자 명단, 영정사진 공개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유가족의 진정한 뜻이 반영되고 추모가 제대로 되느냐가 문제다. 배상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했으며, 또한 금전적 배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오늘 발표한 6가지 요구는 가장 기본적으로 선결되어야 할 내용이며, 구체적인 내용이나 요구안, 법적 대응은 이후에 협의에 따라 진행되는 대로 공개할 예정이라면서, “TF에서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계가 있다. 희생자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떻게든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22일까지 민변 측으로 희생자 34명의 가족이 연락해 왔다. 민변은 기자회견 당일까지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고 설명하고, “158명 가운데 34명의 가족이 대표성을 갖느냐고 묻는다면, 현재 대표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모이기 시작한 단계이고 이후에 계속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변은 이후 법적 조치 등 진행되는 과정은 정리되는 대로 계속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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