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사폐소위, 사형제 폐지 세미나 개최

26일 국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가 진행됐다.

세미나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이하 사폐소위)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권칠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상민 의원은 20대, 21대 국회에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사폐소위는 매년 사형제 폐지를 위한 기념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해 왔으며, 올해는 20주년을 맞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을 기념해 중형주의 정책을 주제로 세미나를 마련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엄벌에 처하자는 이런 중형주의 정책의 범죄 억지 효과, 그리고 범죄 억지 효과가 아닌 사형제도의 존폐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토론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전주교구장)는 “‘참혹한 범죄를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일은 그 자체로 ‘참혹한’ 일이다.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이는 바로 국가, 정부, 국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주교는 대한민국이 완전한 사형폐지 국가가 되면, 아시아 나라들의 사형 집행 중단과 사형제도 폐지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하태훈 원장도 인사말에서 “이제 사형제도의 수명이 다했음을 선언해야 할 때다. 정작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사형제도”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지만, 피해가 심각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범죄가 발생하면 형벌을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중단됐던 사형 집행 재개나 법정 형량을 늘리고 형사 처벌 대상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9월 26일 국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가 열렸다. ⓒ베선영 기자
9월 26일 국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가 열렸다. ⓒ베선영 기자

발제를 맡은 김한균 선임연구위원(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중형주의는 엄중한 형벌을 국회가 법으로 정하고, 경찰과 검찰이 엄중한 형으로 기소하며, 법원이 엄중한 형을 선고하고 행정부가 형벌을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범죄를 줄이거나 막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형주의가 범죄 방지에 효과에 있느냐는 질문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답하며, 사형제도가 중형주의 형사정책의 도구, 수단이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도 범죄 억지의 효과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형제의 범죄방지 효과가 입증된다면 사형제가 필요하고 정당하다고 볼 것인지를 중점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사형 집행이 없었던)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강력범죄율에 거의 변화가 없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문제는 강력범죄 범죄율이 상당 기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도 중형주의 형사정책이 지속되고, 특정한 강력범죄와 피해에 대해 중형주의 형사정책이 집중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경우든 중형의 필요성과 효과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형사사법 자원을 낭비한다는 비판, 그런데도 동원한다면 범죄방지 효과 이외의 정치적 의도에 중형이 남용된다는 비판, 정의 실현이나 범죄방지에도 효과가 없는 정책이 법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낳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한균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중형주의 형사정책이 부실하고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까지 형벌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계속 일어난다는 반론도 가능하기 때문에 중형주의 정책을 포기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중형을 높이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중형주의 정책 실패와 부작용을 덮기 위해 더 중하게, 더 우선적으로 형법을 투입하는 정책 방향에 집중하고 이는 형벌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형주의가 비용은 많이 들고 효과성은 없다는 비판에 대해, 국민적 요구나 ‘범정부 대책’의 명분을 내세우면 비용, 효율, 효과성 문제는 뒤로 밀려날 수 있으므로 중형주의를 포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살인죄에 관해 사형제도의 범죄 억지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모두 있기 때문에, “강력한 형벌로서 사형의 범죄 억지 효과 여부는 실증적 입증자료만으로 판가름 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 방지에 사형이 효과가 없다는 입증으로 사형제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사형제의 범죄 억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형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김 연구위원은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와 폐지한 나라 사이의 범죄율 비교, 사형제도 폐지 전후의 범죄율 비교를 근거로 한 사형제도의 일반 예방 효과나 특정 범죄 방지효과 논증은 사형제 존폐의 설득력 있는 판단기준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형제의 범죄 방지 효과 여부와 관계없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논거는 무엇일까?

김한균 연구위원은 첫째, 사형은 “잔혹하고 정상적인 사회제도 일부로 인정할 수 없는 신체형”이라며, “교수형은 목뼈를 부러뜨리는 완화된 참수형이고, 전기의자형은 신체 내부 장기를 태우는 완화된 화형이며, 총살형은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절단형이고 독물 주사도 신체 내부 장기를 파괴하는 절단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의 사형 집행이 비공개 은폐돼 있기 때문에 생명만 박탈하는 문명화된 방식의 형벌이라고 여기는 집단 착시현상에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도 존폐는 과거사 청산과 관련 있다. 그는 사형제가 “1958년 조봉암 사건, 1974년 인혁당 사건과 같은 오판과 돌이킬 수 없는 희생으로 오염되어 있다”며, “미래의 국민통합을 위해 과거사로서 사형을 청산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4일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 앞서, 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이 주최한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사형폐지를 염원하는 7대 종단 대표 공동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 주교회의 사폐소위도 함께했다. (사진 출처 = 한국 천주교주교회의)<br>
지난 7월 14일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 앞서, 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이 주최한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사형폐지를 염원하는 7대 종단 대표 공동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 주교회의 사폐소위도 함께했다. (사진 출처 =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이어진 토론에서 주현경 교수(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김한균 연구위원이 발제한 대로, 사형제가 폭력 범죄를 방지한다는 경험적 입증이 없고, 반대로 사형제가 폐지된다고 해서 범죄율이 줄어든다는 입증도 쉽지 않다는 것에 동감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현재 사형 확정자는 59명이다.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이 있었던 1997년 이후 사망한 사형 확정자는 12명이고, 그중 7명은 질병으로, 5명은 자살로 사망했다. 수용시설 바깥과 전혀 연락하지 않는 이가 4명, 가족, 친인척과 연락하지 않는 이도 12명이다.

그는 현재 이들의 “재사회화 문제”가 중요한 과제라며, 사형 확정자들은 제한적으로 출역 등을 할 수 있지만, 교도소의 재사회화 프로그램이나 교육에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한 사람을 20여 년 이상 가두면서, 그에게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제도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그는 사형 확정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사건 당시 사형제를 몰라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며, 범행 당시 사형에 대한 두려움 등은 범죄 실행의 조건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형제 폐지 논의는) 사형제가 적절한 형벌 제도로서의 합리성을 갖추지 못함을 증명하고, 사형제를 활용하는 중형주의 형사정책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장지웅 판사(대전고등법원 청주재판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역시 육체적, 종신적 고통 면에서 사형제보다 더욱 가혹할 수 있다고 봤다. 장 판사는 신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형벌은 사형뿐만이 아니라며, 사형제의 대체 형벌로 언급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감금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기약 없이 견뎌야 한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 나라에서 죽음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장 판사와 장태형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는 여론과 국민의 법감정이 사형제 폐지를 결정하는 판단기준은 못 된다는 김한균 연구위원의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장태형 검사는 “죄질의 정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국민의 정의 감정이고 상식”이라며,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살인죄 법정형을 10년 미만으로 하면 이를 정의와 상식의 법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극악한 흉포 범죄에 사형의 가능성을 열어 둘 것인지, 배제할 것인지에 관해 국민의 법감정이 사형의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며, 국민 여론이 사형제 폐지보다는 존치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사 청산을 위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장 판사와 장 검사는 수긍하지 못했다. 장태형 검사는 가슴 아픈 현대사를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하지만, “사법살인의 가능성은 이미 민주화와 시대 발전으로 극복되었다. 현재 사형수들 가운데 정치범은 없다”고 말했다.

장지웅 판사도 “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건은 모두 타인을 살해한 생명침해 범죄로, 공통적으로 피고인이 범행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자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존 피해자의 진술, 현장에 동석했거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의 진술, 살인 도구나 CCTV 등 명백한 물증의 존재 등으로 피고인의 유죄가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되는 사건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비춰 보면, 이론적으로 형사재판에서 오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중대한 오판으로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서정기 대표(회복적정의 평화배움연구소 에듀피스)는 “사형제 폐지를 위해 중형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체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고 말했다. 그는 “중형주의의 한계를 내세우거나 사형제 폐지의 사회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 범죄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실천으로 ‘회복적 정의’를 강조했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처벌과 통제가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고 깨진 관계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둔다.

마지막으로 국제인권기준 차원에서 사형제를 살펴본 서채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근래까지 이뤄지고 있는 유엔 총회, 조약기구 등의 공식 해석과 입장 표명에 비춰 보면 사형이 국제인권기준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폐소위는 10월 6일 저녁 청년문화공간 JU 다리소극장에서 사형제도 폐지 생명이야기콘서트를 연다. 10월 7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제20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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