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운동가 나브샤란 싱 간담회

2020년 11월부터 13개월간 인도 농민들은 농업개혁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 초반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억 5000만 명이 전국에서 참여했고, 수도인 뉴델리 인근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고, 트랙터를 몰고 뉴델리 시내에 진입하는 등 격렬히 투쟁한 결과 정부는 농업개혁법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 승리 뒤에 여성 농민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2일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가 마련한 정치운동가 나브샤란 싱(Navsharan Singh)과의 간담회에서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의 사회로, 인도의 기후위기와 농업의 현실, 그리고 농민 시위에서 여성의 참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브샤란 싱은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델리에서 달리트(불가촉천민) 여성과 그리스도인, 무슬림 등 종교적으로 차별받은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운동가이자 저술가다.

9월 22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인도 여성운동가 나브샤란 싱의 간담회가 있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종화 신부, 나브샤란 싱, 통역가 황정희 씨. ⓒ배선영 기자
9월 22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인도 여성운동가 나브샤란 싱의 간담회가 있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종화 신부, 나브샤란 싱, 통역가 황정희 씨. ⓒ배선영 기자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주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종화 신부(이하 김 신부) : 인도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농민이고, 제때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50도까지 올라 농작물 재배가 어렵다. 언론이 빚을 갚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을 보도한 바 있다. 농민들은 어떤 상황에 있고,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

나브샤란 싱 : 인구의 절반 정도가 농업에 종사한다. 인도에서 농부는 가장 흔한 직업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농이고, 토지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도 많다. 많은 농가가 빚더미에 올라 있고, 2000-15년까지 농민 34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자 주 : 2021년 기준 인도 전체 노동 인구의 약 47퍼센트가 농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7퍼센트 정도다. 한 농가 당 평균 경작지는 1.15헥타르(3500여 평)며, 농민 연평균 소득은 1000달러(한화 약 140만) 정도다.)

기후위기가 매우 심각한데, 근본 원인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농작물만 재배해서 그렇다. 식량 부족이 심각했던 인도는 60년대 관개농업을 위한 대규모 공사, 쌀과 밀 위주의 농업 장려 등 이른바 ‘녹색혁명’(품종개량 등 새로운 농업기술 도입으로 많은 수확을 올리는 농업상의 개혁)으로 식량 부족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살충제, 화학 비료를 도입했고, 결과적으로 식량 생산량은 늘었지만,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됐다.

지금 심각한 문제는 우선 물 부족이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물 부족이 심각하다. 흙이 산성화 또는 알칼리화돼 토양의 질이 떨어지며, 숲이 황폐해지면서 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나고 이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살충제, 유전자 조작 식품, 화학비료 등이 농민뿐 아니라 특히 품질 좋은 식재료를 살 형편이 안 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주고 있다.

농부들도 화학약품을 쓰는 농업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이나 유기농법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 이번 농민 시위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도 건강하게 농사 짓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 신부 : 기후변화로 고통을 겪는 농민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 2020년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개정한 농업개혁법이다. 비록 농민들이 승리했지만, 이때 시위로 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토록 반대한 이 법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왜 인도 농민들은 트랙터를 타고 거리로 나올 정도로 반대했는가?

나브샤란 싱 : 2020년 9월 인도 의회가 통과한 농업개혁 법안의 주요 내용은 ‘가격 보장 및 농업 서비스 계약법’, ‘농산물 무역 및 상거래 촉진법’, ‘필수식품법’으로, 기존에 정부가 관리하던 농산물 유통 시장을 개방해 민간 기업의 농산물 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민영화하는 것으로, 소농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농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기업에 넘기고, 도시로 가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로 내몰리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순한 저항을 넘어 매우 큰 변혁이 일어났다. 시위를 위한 상시적 캠프가 설치된 곳은 델리 주변이었고, 이후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중요한 것은 13개월간 아무것도 없는 캠프에서 투쟁하던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2020년 12월 인도 농민 시위 모습.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br>
2020년 12월 인도 농민 시위 모습.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 저항의 움직임에서 여성은 ‘척추’였다. 시위를 이끄는 32개 농업 조합 가운데 여성이 이끄는 곳은 없고, 앞에서 지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델리로 행진하기까지 여성의 역할이 컸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요리하지 않는다’를 첫째 원칙으로 정했고, 요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지지와 지원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 화장실 부족 등 환경이 열악했고, 지역 주민들이 불편해 하고 시위대에 적대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여성들 덕분에 이런 긴장감이 완화됐다. 집마다 찾아가 왜 이 법을 막는 것이 중요한지, 왜 시위에 참여해야 하는지 사람들을 설득하자, 주민들은 시위대에 화장실을 개방하고, 아이가 먹을 우유를 끓여 주고, 빨래를 해줬다.

인도에서는 농민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사람들이 다 어려운 상황인데, 이번 농민 시위는 희망을 보여 줬다. 시위 이후로 농민들은 더 연대하고 조직적으로 뭉치고 있다. 여성의 조직력도 높아졌다. 농업을 포기하고 떠나던 청년들이 농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김 신부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나브샤란 싱 : 같이 이야기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 우리 모두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다. 그동안 어렵게 쟁취해 온 권리와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기후위기도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층은 우리를 종교, 계급, 인종 등으로 분리시켜 각자의 권리에만 매몰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한국 사회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도에서는 엘리트 집단에 윤리적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의 손을 잡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도 농민 시위는 희망의 상징이 됐으며, 이것은 연대체를 만들고, 협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각자 공동체와 직업이 달랐는데도 연대했고, 농업 조합을 중심으로 종교성을 띄지 않고 활동했기 때문에 불공정한 법을 막을 수 있었다. 지배층은 국민을 분리하려고 해서 지금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는 희망 속에서 매일매일 살고 있다.

2021년 11월 29일 인도 의회는 농업개혁법 폐지를 통과시켰으나, 농민들은 농산물 최저가격제 보장 등을 요구하며 한동안 시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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