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거 실태, 대책 마련 토론회

지하 주거 문제의 실태를 짚고, 대책을 제안하는 토론회가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8월 초 수도권 폭우로 자신이 살던 집에서 목숨을 잃은 5명. 4명은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의 지하 거주지에서, 이주노동자 1명은 화성시 불법 가설 건축물(컨테이너)에서 숨졌다. 이번 폭우뿐 아니라 화재, 폭염, 한파 등 재난 상황에 자신의 집에서 숨지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폭우로 지하 거주자들이 잇달아 희생되면서 심상정 의원실의 요청으로 한국도시연구소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2005-2020년)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2020년)를 바탕으로 지하 주거 문제를 분석,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심상정 의원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한국도시연구소가 공동으로 마련했다.

최은영 소장(한국도시연구소)이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하(반지하 포함), 옥탑방, 고시원의 실태와 대응 방안을 발표했으며, 김선미 씨(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정책분과장), 방준호 씨(<한겨레> 기자), 이강훈 씨(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익진 씨(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가 토론했다.

실태 조사 그만하고 지금 당장 실행해야 

2020년 기준으로 32만 7000가구가 지하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 95.9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 61.4퍼센트, 경기도 27.2퍼센트, 인천 7.4퍼센트 순이다.

지하 거주 가구의 절반 이상은 직전 거처에서 계약 만료 및 임대인의 퇴거 요구, 좁은 면적 순의 이유로 현재 거처로 이사했다. 점유 형태는 전체 가구가 자가(57.9퍼센트), 월세(23퍼센트), 전세(15.2퍼센트) 순인 데 비해 지하 거주 가구는 월세(53.2퍼센트)와 전세(22.1퍼센트) 비율이 높다.

월평균 소득은 190만 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의 60퍼센트 수준이며, 기초생활수급 가구는 15퍼센트로 전체 가구 평균보다 5배 많다. 연령대는 50대와 60살 이상이 절반을 크게 웃돌았다. 여성 가구주 비율은 지하 거주 가구가 37.7퍼센트로 전체 가구 23.5퍼센트보다 높다. 

현재 거처로 이사한 이유.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
현재 거처로 이사한 이유.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
(위) 월평균 가구소득 (아래) 기초생활수급 가구 및 기준중위소득 50, 60퍼센트 이하 비율.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
(위) 월평균 가구소득 (아래) 기초생활수급 가구 및 기준중위소득 50, 60퍼센트 이하 비율.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

지하 가구는 현재 거처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다. 전체 가구 평균이 12.8퍼센트인 데 반해 40.2퍼센트가 전반적인 물리적 상태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지하 거주 가구는 모든 항목에서 불만족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어섰지만 전체 가구에는 불만족 비율이 20퍼센트가 넘는 항목이 없다. 불만족 항목은 채광 69.2퍼센트, 환기 53.3퍼센트, 방수 50.5퍼센트 순이다.

지하 거주 가구의 78.5퍼센트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원하며, 60.8퍼센트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사업 소득 기준에 해당한다.

현재 거처 물리적 상태에 대한 불만족 비율.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br>
현재 거처 물리적 상태에 대한 불만족 비율. (자료 제공 = 심상정 의원실)

최 소장은 “실태조사가 아닌 지금 당장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부터 조사가 이뤄져 자료가 쌓여 있고 지하에서 수해로 사람이 목숨 잃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면서 “지하 주거 환경 자체가 열악하고 조사 결과가 있는데도 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앞으로 재난은 상시화될 것이므로 가난한 이들에게는 집이 보금자리가 아니라 흉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2020년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같은 해 6월까지 지자체를 통해 지하 거주 가구를 전수 조사하고,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과 보증금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업무처리지침”에 지하 거주 가구가 포함된 것이 유일하다. 참사 직후 각종 대책이 발표되지만 참사는 아직도 반복된다.

너무 적은 주거 급여, 턱없이 모자란 공공임대주택

비적정 주거에서 살다 숨지는 이들 가운데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많다. 최 소장은 이를 주거급여가 주거의 질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주거급여 금액도 현실적이지 않다. 2022년 기준 서울 주거급여 수급자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기준 임대료는 32만 7000원이다. 수급비로 갈 수 있는 곳은 지하, 옥상, 고시원, 쪽방 등뿐이다.

최 소장은 “지원하고 있지만 너무 적게 지원한다. 내년에는 3000원 올라 33만 원이 되는데, 주거급여를 강화한다는 윤석열 정부는 커피값도 안 되게 올린다”면서,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고 예산 문제로 뒤처져 있던 것이므로 국회는 기재부가 주거 복지 관련 예산을 확보하도록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절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최 소장은 종합부동산세,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의한 부담금 등을 통해 주거 복지 예산을 늘리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현 정부가 감세 기조를 유지하므로 주거 복지 예산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16-20년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가 약 25만 호 늘었지만 주거 취약계층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로드맵 2.0’을 통해 2025년까지 공급 계획을 14만 호로 늘렸으나 윤석열 정부가 대선 공약에서 10만 호로 줄인다고 한 상태에서 지난 8월 16일 발표된 ‘국민주거안정 실현 방안’에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도 문제다.

최 소장은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배분 물량 늘리기 ▲부담 가능한 임대주택 공급 ▲주거 취약계층일수록 복지, 관계망, 교통 등 기존 생활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기존 생활권 안에서 매입 임대주택 방식 등의 공공임대주택 확대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으로 주거 취약계층이 내몰리지 않도록 정비사업의 공공성 강화 등의 실행을 제안했다.

(왼쪽에서 세 번째) 최은영 소장은 "지하에서 수해로 사람이 목숨 잃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태 조사는 그만 하고 지금 당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나 기자
(왼쪽에서 세 번째) 최은영 소장은 "지하에서 수해로 사람이 목숨 잃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태 조사는 그만 하고 지금 당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나 기자

지상으로 올라오기 위한 현실 대책은?

이어진 토론에서 이강훈 변호사는 2022년 1-7월 국토교통부 실거래 가격 상 서울의 연립, 다세대 주택 1층과 지하층 전세 보증금 및 월세를 분석한 결과 지하 가구가 지상으로 이동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현실적으로 지하 거주자가 부담할 수 있는 임대료의 지상 주택을 구하기 어렵고, 지하 주택을 대체할 주택 수마저 부족해 고시원, 옥상 등 비주택 주거가 늘어 이들의 임대료도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하 주거 문제는 결국 종합적인 주거 복지 대책으로 연결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지하층의 전세 보증금은 1층의 60-70퍼센트 정도다. 월세를 보증금으로 환산한 평균 환산 보증금 역시 지상층이 지하보다 비싸고 임대료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도 지상이 더 높다. 지하 주택은, 환경은 열악하지만 거주 면적은 지상층에 비해 넓은 편이다.

그는 “현재 서울의 주택 시장 임대료 상황에서 지하 거주자들이 주거 면적을 상당히 줄이지 않고는 단독 다가구 주택으로도 이동하기 어렵다”면서 8월 16일 발표된 서울시 반지하 주거 상향 대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20만 (반)지하 가구에 월 20만 원씩 최장 2년 지원, 지하, 반지하 주거지 사용 단계적 금지 등을 통해 2045년까지 24년 동안 20만 가구의 지상 주택으로의 주거 상향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물량 확보를 위한 방식이 소유주 등과의 복잡한 협의 등이 필요해 서울시 계획대로 물량 공급을 장담하기 어렵다. 지원금도 몇 가구에 지급한다는 구체적 계획이 없어 예산 규모를 알 수 없다. 반지하 주거를 금지할 경우 최저 주거 기준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반지하 주거를 금지하면서 그보다 더 열악한 고시원 등의 주거를 그대로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날 나온 국토교통부 대책의 핵심은 실태 조사를 통해 향후 수해 위험 지역에 대한 지하 주거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지하 주택 전체 문제가 아닌 재해에 취약한 주택을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이 변호사는 “지하 주택 문제는 시선에서 제외되고 수해 위험 지역의 주거 대책으로 한정된다. 이렇게 되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재원도 줄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지하 주거 대책으로 가장 중요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겠다는 내용도 없고, 최저 주거 기준의 관점에서 반지하 문제에 접근하거나 최저 주거 기준을 향후 개선하겠다는 언급도 없다”면서 “반지하라는 주거 형태를 순차적으로 없애고 추가 부담 없이 고품질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이 현실성은 부족하지만 방향성에서는 국토부 대책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하 주택 단계적 금지 ▲최저 주거 기준 개선 및 강제력 있는 행정 조치와 주택 개량 정책 병행 ▲공공임대주택 확대 및 시장 가격의 80퍼센트 수준 이하의 사회 주택 공급 ▲임대료 보조 정책 개혁 등을 제안했다.

(왼쪽부터)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 집행위원장), 이강훈(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 김선미(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정책분과장),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심상정(정의당 국회의원), 이익진(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 방준호('한겨레' 기자). ⓒ김수나 기자
(왼쪽부터)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 집행위원장), 이강훈(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 김선미(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정책분과장),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심상정(정의당 국회의원), 이익진(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 방준호('한겨레' 기자). ⓒ김수나 기자

지하 주거 사라질 동안 여전히 지하에서 살아갈 이들

김선미 센터장은 지하 거주 가구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때는 지하 주거 가구가 부담 가능한 주거비(보증금 및 임대료), 희망 위치, 가구원 등 가구 상황과 욕구를 파악하고,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명확한 공급계획을 밝히고, 단순한 물량 확보보다는 안정적 주거가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20년간 지하 주거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정부 정책은 20년간은 지하 주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면서 “남아 있는 지하 거주 가구들이 학교나 일자리 때문에, 고령이나 장애로 인해 지역 자원을 떠나는 것이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대책뿐 아니라 지하 거주 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지원책으로 지하 거주의 가장 큰 어려움인 습기 제거를 위해 제습기, 에어컨, 서큘레이터와 난방비 지원이 있다. 습기 제거와 충분한 환기를 위해서는 겨울철에 충분한 난방이 돼야 하는데 지하 거주 기초수급, 차상위 가구 대부분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을 쓰기 때문에 월 임대료만 반영된 현행 주거 급여에 난방비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논의에 대해 정부는 실제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이익진 과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32만 지하 가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재해나 화재 위험 주택, 저소득층, 최저 주거 기준 미달, 노약자 및 장애 여부 등 가구주 특성 등을 고려해 우선 지원해야 할 정책 대상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자가 여부, 소득 수준, 입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실태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며, 건축 연한에 따른 이주 지원 방식, 공공 입주가 가능하지 않은 자가 주택자들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 협력해 현장 방문을 통한 조사를 병행하겠다. 특히 이번 지하 수해 가구는 먼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축소 기조에 대해 그는 “구체적 공급 계획은 연말에 확정 발표되며,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이 조정되더라도 저소득층에 대한 물량은 변함없이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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