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응, 너가!"

“Hi, nice to see you, my name is Younghye Yu. Just call me Miriam.”

(안녕하세요. 제 한국 이름은 유영혜인데, 그냥 미리암이라고 불러주세요.)

잠자는 시간 빼고 한국어만 쓰는 우리의 언어 환경에서 꾸준히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영어 환경에 노출하는 기회를 규칙적으로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늦깎이 교육대학원 학생이 되어 갑자기 원어민 교수의 수업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민망함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민망함에는 점차 익숙해지지만 도무지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만, 저의 세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만 했기 때문에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도전입니다. 수도회 입회 전 영어 강사로 꽤 오래 일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 답게 듣기 말하기는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온 국민 새해 결심 1, 2위 자리를 다투는 것이 다이어트와 영어 공부라고 하니 매번 실패하고 또 새롭게 결심하는 건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연습해 보려고 온라인 화상영어 플랫폼을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끔 이용하는 영어 공부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 소개를 할 때 한국 이름으로만 소개를 하면 원어민 선생님들은 제 이름 발음하기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세례명인 ‘미리암’으로 저를 소개하면 선생님들은 그제야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Hi, Miriam.”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곤 하죠. 

최근 J라는 미국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는데요. 별반 다르지 않게 저를 소개하면서요. ‘이 선생님도 취미를 물어보겠지? 이번엔 스카이다이빙이라고 해야지.’ 취미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딱히 없는 저는 가끔은 단지 영어 연습을 위해서 안 써 본 단어로 창의적으로 대답을 해 보곤 하는데요. 물론 거짓말이니 양해를 구하고요. 그런데 J라는 선생님은 갑자기 저의 취미가 아닌 제 한국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저의 이름 ‘영혜’는  영화 ‘영’, 은혜 ‘혜’입니다. 영어 번역이 확실친 않지만 “glory and grace?”라고 대답했고요. 곧 다른 선생님들처럼 당연히 취미를 물어보겠지 예상하면서 ‘오늘 내 취미는 스카이 다이빙이다! 스카이 다이빙!!’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아니 이분 뜻밖의 질문을 합니다. “미국인으로서 내가 듣기에 glory(영광, 영화)는 싸워서 이기거나 애써 획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고 grace(은총)은 거저 주어지는 것 같은데요. 이름이 상반된 두 단어의 조합 아닌가요? 어떻게 생각해요?”

은총, grace. ©유영혜 그림
은총, grace. ©유영혜 그림

좋은 질문의 효과라고 할까요? 갑자기 모니터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저는 “영광이라는 말은 이기거나 지는 것과 관련이 전혀 없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더듬더듬 말했고 그리고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일 수밖에 없는 ‘자아’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 이어졌습니다. ‘나의 에고ego’가 영광의 대상이 되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아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것이냐 하면 인간의 숨이 멈추고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에 좀 더 오래 남아 있다고 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얘기를 영어보다 유창한(?) 저의 바디 랭귀지를 첨가해 가며 애써서 표현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제 말을 이해하셨는지 한참 후에 크게 웃었습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가? 오호~’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는 것은 평생의 작업일 거라는 꽤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뿌듯해 하려는 찰나 두번째 저를 놀라게 하는 질문을 하는 J.

“나는 한 인간이고 내 자아의 일부이기도 한데 세상을 지각하는 나 자체가 안 중요해서 사라진다면 이 세상에 나에 의해서 지각되어지는 것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나요?” 제 머릿속에서 어설픈 구글 번역처럼 이 원어민의 말이 한국어로 동시 번역되어 의미가 들려오긴 했지만 제가 들은 것이 맞는지 잠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기엔 J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습니다. 침묵의 압박을 못 견디던 제가 난데없이 “You are so important!”(당신은 정말 중요해요!)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갑자기 당신이 중요하다니 무슨 소리야?’ 그런데 이 진지한 선생님은 백배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Am I? Am I?”(내가 중요한 존재예요? 정말 그래요?)라고 물었습니다. 

모든 영어 듣기가 “Am I?”처럼 명료하게 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표현이 쉽다고 그 의미도 쉬운 것은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두번째 “Am I?”는 그 짧은 순간 무언가를 엄청 갈구하는 사람의 깊은 집중력으로 저 또한 대화에 몰입하게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의 질문은 어떤 절규로 들렸습니다. 마치 ‘내가 진짜 중요한 존재인 거 맞아? 나를 드러내지 않고 불순물 없이 투명한 유리창처럼 빛만이 온전히 통과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 그 나를 내려놓으라면서! 그런데 내가 중요한 존재인 것이 맞다고?’ 이건 사실 제 머릿속에서 J가 의미했을  거라고 추측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투명한 창, 당신만 오로지 통과하실 수 있는 그런 창이 되게 하소서. ©유영혜<br>
투명한 창, 당신만 오로지 통과하실 수 있는 그런 창이 되게 하소서. ©유영혜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제 머릿속에서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 말들을 문법이나 발음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실제로 제가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떤 답을 간절히 찾는 듯한 J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한 저의 모습 같았고 저는 천천히 이렇게 다시 말했던 것 같습니다. “Of course, you are so important. That’s why this whole universe is working very hard.”(물론이에요. 당신은 정말 중요하죠. 온 우주가 지금 열심히 작동하고 있는 이유예요.) 아직 수긍이 안 되는 표정의 J. 

다시 한번 저는 큰 고민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That’s why Jesus came here for you!”(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여기 오신 거잖아요!) 준비 없이 제 입에서 나와 버린 이 짧고 단순한 문장의 그 의미가 제 귀로 다시 들려와 그 여운에 잠시 먹먹해져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최근 꽤 오래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깊은 어둔 밤 홀로 방황하고 있는 저를 도우시려는 하느님께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진실을 다시 상기시키려고 하시는 말씀같이 느껴졌습니다. J도 이내 승복하는 미소를 짓고 말합니다. “Yes. You are so right.”(맞아요. 정말 그렇네요.)

You complete me. ©유영혜

진정한 자아(True-self)란 무엇일까요? 온전한 ‘나’로서 여기 실재 하면서 또 동시에 ‘나’를 통해 오직 하느님만 드러나길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떻게 상반된 것이 아닐까요? 

그분만이 온전히 채워 주실 수 있는 인간 존재 안의 텅 빈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진 않은지요.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 수 있는 큰 은혜, 거저 받는 은총, 제 이름 ‘영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분을 위해 사는 삶이 결국 저에게 최고의 선물인 것을요. 아 정말이지 진땀 나고 보람 있는 영어 수업이었습니다.

Thank you, J, 그리고 저의 주님.

“내가 되어야 할 내가 되지 못하고 내가 아닌 나로 남는다면 나는 어떤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됨으로써 영원히 나 자신과 모순된 삶을 살 것입니다. 나는 그분 안에서 몰아(沒我)될 것입니다. 즉 나는 나 자신을 찾을 것입니다.”
-토머스 머튼-

유영혜(미리암)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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