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이유

이 글은 <가톨릭평론> 36호(2022년 여름) '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농사는 우주적 친교

교황님의 말씀으로 서두를 시작해 본다.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89항)

이것은 창조물 모두가 ‘우리’를, ‘한 가족’을, ‘한 형제자매’를 이룬다는 것을 말한다. 교황님은 이런 신학적 진리 위에서 ‘우주적 가족’(universal family)을 말씀하시고, ‘우주적 형제애’(universal fraternity, '찬미받으소서' 92항, 221항, 228항)를 호소하시면서 ‘우주적 친교’(universal communion, '찬미받으소서' 76항, 92항, 220항)를 이루어 갈 것을 권고하신다. 그 권고에 따르는 우리 성가소비녀회도 총회에서 ‘통합생태적 삶으로 대전환한다’고 결정하고, 부서지고 상처난 내 백성을 회복하라는 하느님의 긴급한 명령에 응답하고자 한다. 이 응답은 가장 작은 존재에서부터 거대한 우주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부서지고 상처난 모든 생명을 돌보고 회복시키겠다는 결의다. 이 결의에 따라 다른 모든 피조물과의 연결성을 자각하고 모든 생명체와 우주적 성가정을 이루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생각에도 농사는 우주적 친교라고 여겨진다.

토종 씨앗 농사를 통한 자립생활

우리 공동체는 성가소비녀회 생태사도직 공동체로 자립생활을 한다. 자립이란 전통농사 방법으로 씨앗을 사지 않고 씨앗 받는 농사(토종 씨앗 농사)를 하며 덜 먹고 덜 쓰며,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우리 공동체 삶의 방법 첫 번째로 자립을 정한 것은 우리가 망가뜨린 환경을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갚아 보자는 결심 때문이다. 씨를 채종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씨앗 나눔을 하며 뜻을 같이하는 세상 사람들과 연대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자립의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 공동체의 밥상에는 거의 토종 종자로 농사지은 작물이 올라온다. 지속 가능한 삶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이 삶은 쉽지 않았다.

토종 씨앗들.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br>
토종 씨앗들.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

2014년 생태 공동체를 시작한 첫해, “단순한 사고로 생태계 안에서 주님을 만나자!”라고 공동체 실천사항을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생태 공동체 시작은 토종 씨앗 사용, 비닐 안 씌우기, 기계 사용하지 않기(기계는 석유로 움직이는 것), 화학비료 안 쓰기’를 실천사항으로 정해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데 토종 씨앗이 없어 작물재배 공부를 시작했다. 관행농이 아니 전통농사를 어떻게 하는지 책을 사보고 빌려 보고 또 정보를 농부학교에서 조금 얻었다.

첫해 월별로 실행한 것을 소개해 본다.

3월, 땅이 녹아 땅을 일구는데 너무 딱딱해서 이번에만 기계로 땅을 갈기로 했다. 양평군 친환경 교육센터의 자문을 받아 미생물을 공급받아서 퇴비로 사용했다.

4월 중순, 하우스 쪽 밭 일부에 토종 옥수수와 그 밑에 콩을 심었다. 농사 원칙은 무 비료, 무 비닐이었다. 식당 바로 앞쪽 꽃밭을 농작물 밭으로 변경해 칠성초와 대파, 상추를 심었다. 토종 씨가 없어 가톨릭 농부학교와 풀무학교에 부탁했다. 받은 씨는 고추(칠성초), 조선대파, 근대, 미니 찰옥수수, 조선오이와 콩 일부다. 농부학교에서 용문에 사는 농부학교 1기생(참고로 나는 2기생이다) 정지양 씨를 소개받아 들깨 씨를 얻었는데, 그분은 자주 봉사를 와서 힘든 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함께 사는 한 수녀님이 근대 씨를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포도나무밭 아래쪽 끝에 파종했다. 처음엔 싹이 안 나온다고 해서 갈아엎었는데, 나중에 여기저기 근대가 흩어져 올라와 여러 번 먹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토종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5월, 고구마 순 1000순을 사 심어서 많이 수확해 본원에 보내기로 했는데, 많이 타 죽어 수확이 적었다. 경험 부족을 실감했다.

6월, 하우스 쪽에 거의 콩과 들깨를 심었다. 옥수수를 처음으로 수확해 쪄 먹었는데 반응이 모두가 좋았다. 토종 씨에 대한 반응이 별로였는데 옥수수 맛으로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7월, 수녀원 총원에서 청원자 자매가 사도직 실습을 와서 함께 지냈다. 일손에 보탬이 되었다.

1년을 돌아보니 경험 부족으로 비록 실패를 했지만 좋은 체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작물자급 농사를 계획해 보기로 했다. 토종 씨도 더 얻고, 밭의 모양도 바꾸어 정원 텃밭처럼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땅을 살리는 방법의 하나로 돌려짓기를 실천하고, 작물생태 도표를 겨울에 만들기로 했다. 앞으로 5인 내지 10인 중소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함께 사는 수녀님들과 나누었다. ‘예언자적 소명으로 꿈은 크고 넓게, 생활은 작고 구체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며 지내온 첫해 1년의 이야기다.

어린이 텃밭 생태교육.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br>
어린이 텃밭 생태교육.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

땅을 훼손하지 않아도 되는 토종 씨앗 농사

예전에 농촌은 가족농이었다. 즉 소농이고 가족이 먹을 것을 전부 기르는 다작농이었다. 지금은 돈이 되는 환금작물에만 관심을 기울여 다양성이 사라진 단작으로 바뀌었다. 모두 기계에 의존하는 화학농인 흐름이어서 안타깝다. 땅은 기초경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땅의 가능성보다 인위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많을수록 수익이 많아진다는 생각으로 너도나도 기계와 화학성에 많이 의존하는 농사가 되었다. 단작과 화학이 땅을 고갈시켜 토양이 메마른 땅으로 변질되었다. 땅과 마주하면 땅이 “내가 메마르게 되어 순환되지 않아 영양가 없게 되었다”고 내게 호소하는 것 같다. 이 호소를 듣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마침 민간단체 씨드림이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다니는데, 양평군에서 한다기에 함께 다녔다. 양평군의 6개 면 36개 리를 돌았다. 이 중 24개 리에서 토종 씨앗을 수집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물림되어 남아 있는 들깨나 메주콩 정도였고, 강낭콩 호박류는 마을 한 사람으로 퍼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조선파는 동일 품종이었다. 씨앗 보전을 천명처럼 여기는 한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토종 씨를 보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 할머니들, 즉 여성이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성 농부가 씨앗 지킴이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어쩌면 여성이 더 생명에 가깝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 농부인 나도 우리 할머니들처럼 씨갑시(씨앗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씨앗 지킴이를 하고 싶었는데 양평에서 난 것들을 이 지역 사람들이 간직하는 씨앗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토종 씨를 수집하러 다녔을까? 내 안에 무엇이 이 일을 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걸까? 이런 물음을 던지면 사명감 비슷한 울림이 올라온다. 바른 먹거리, 먹거리가 정직하려면 씨앗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토종 씨 농사는 땅을 훼손하지 않아도 정직한 농사와 정직한 먹거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느낀 자연이 공명한다고 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다녔고 왜 토종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수도생활과 공동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름대로 정립한 철학 내지는 영성이 있지 않으면, 이 일은 무척 어렵기만 한 일이 된다. 공동체 안에서 같은 영성으로 무엇이 이 일을 피어나게 하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을 거스르고 다음 세대의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조작된 씨앗, 화학약품에 의존하도록 만들어진 씨앗, 품종의 다양성을 버리고 다수확과 유통의 편의성을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씨앗, 기업에 의해 상품화된 씨앗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런 현실에서 정직한 농사를 지어 바른 먹거리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열망이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토종을 지킨다. 토종은 씨앗을 받을 수 있다. 토종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귀한 유산이다. 그렇기에 토종 종자 안에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가 있고, 문화가 있고, 세월 속 변화를 겪으며 이겨낸 생명의 투지가 담겨 있다. 또한 토종을 지키는 일은 작물의 다양성과 유전적 다양성을 지키고 병충해의 만연으로부터 종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이에 더해 토종을 기르는 일은 친환경 농업과 불가분의 관계다. 작물의 특성에 맞게 유기농업을 하게 되면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조그만 논을 만들어 손 모내기도 해 보았다. 이는 좁게는 우리 토종 쌀을 지키고, 더 큰 의미로는 작은 논이지만 사람들에게 논의 중요성을 알리는 상징성을 갖는다. 우리의 조그만 논은 이렇게 의미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해가 거듭될수록 논 밟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모내기가 끝나고 조그만 논을 바라보니 무척 기뻐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농부이신 하느님께 여름을 맡기며 보리를 베고 참깨를 심으면서, 가을의 풍성함을 미리 그려 보는 재미도 가져 보았다. 저녁을 먹고 씻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피곤함이 몰려와 잠자리에 들게 된다. 내일의 작물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작은 논의 손 모내기 농사.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br>
작은 논의 손 모내기 농사.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우리 분원에는 8명의 수녀가 함께 농사일을 한다. 제각기 하는 일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공동체는 한마음으로 지역의 이야기와 특징이 담긴 씨앗을 지키고 싶어 한다. 농가에서 대대로 보존해 온 귀한 씨앗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눠 주고 싶어 한다. 이 소망 역시 쉽지 않았다. 무상으로 우리가 받은 씨앗을 나누어 주는데 돌아오는 씨가 없다. 가져가기만 하고 그 씨앗이 귀한 줄 모르는 것 같아 이제는 1년 행사로 모종을 판매하는 행사로 바꾸어 보았다. 토종 종자를 더 많이 확대하기 위한 염원으로 값을 주고 사게 하면 더 열심히 키우지 않을까 해서 바꾼 것이다.

지금도 우리 공동체는 토종 씨앗 보존과 증식, 보급을 위해 땅을 일구고 호미질을 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와 손을 잡고 함께 가기를 희망하면서 창세기 1장을 묵상해 본다.

분원 오픈 행사.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br>
분원 오픈 행사. (사진 제공 = 성가소비녀회 용문생태공동체)

백엠마
성가소비녀회 수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용문생태공동체. 1984년에 입회해 현재 용문 나자렛집에서 소임을 하고 있으며, 9년째 토종농사를 하고 있다. 생태 농사를 위해 2020년 유기농 기능사와 종자 기능사 자격증 취득했고, 2021년에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이 주최하고 양평군의 협조로 양평토종학교 1기를 시작해 텃밭지기를 하고 있다. 올해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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