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노동자 노동권 조례 개정 주민 발안에 동참
대전교구 정평위 적극 지원

대덕구 내 성당들은 조례 개정에 대한 홍보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대덕구 내 성당들은 조례 개정에 대한 홍보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민들의 갑질과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비 노동자들. 한 경비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2020년 10월 경비노동자의 업무 범위 현실화와 부당한 지시, 명령 금지 조항을 담은 ‘경비노동자 보호법’(공동주택관리법)이 통과됐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모순점이 남아 있다.

이런 경비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전 대덕구 주민들이 나섰다.

올해 4월 지역 22개 단체가 결성한 ‘대덕구 공동주택 노동자(경비노동자) 인권 증진 및 고용안정에 관한 조례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90일간 대덕구 지역 주민, 경비노동자들을 일일이 만나 ‘대전광역시 대덕구 공동주택 노동자 인권 증진 및 고용안정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하 조례 개정안) 주민발안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는 전국에서 경비노동자 관련 처음 시도된 주민 발안이다.

이들의 활동으로 주민발안 기준(구 인구의 70분의 1)인 2178명을 넘은 2826명이 서명에 참여했으며, 서명운동 과정에서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연대하고 대덕구 성당 신자들이 적극 참여했다.

조례 개정안은 적용 대상과 지원 범위를 경비원에서 “공동주택 노동자”, 그 권리 범위도 “인권증진뿐 아니라 고용안정”까지 확대했다.

조례 원안과 주민발안 주요 내용 

제2조 “경비원”이란 제1호에 따른 공동주택에서 경비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 “공동주택 노동자”란 대덕구에 주소를 둔 공동주택에 근무하는 경비원, 관리원, 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 등을 말한다.

제3조(구청장의 책무) ①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이하 “구청장”이라 한다)은 경비원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①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이하 “구청장”이라 한다)은 공동주택 노동자의 인권보호 및 증진과 고용안정을 위하여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위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5조(지원의 범위) 구청장은 경비원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1. 경비원이 부당한 인권침해로 인한 신체적ㆍ정신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법률지원에 관한 정보 제공
2. 정신적 고통에 대한 심리적 상담 등 정신건강서비스 공공기관 연계 (삭제)
3. 그 밖에 경비원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구청장이 인정하는 사항

-> 1. 공동주택 노동자를 위한 기본시설을 설치하고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보조금을 신청하는 경우 우선적 지원
2. 공동주택 노동자가 부당한 인권침해로 인한 신체적ㆍ정신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법률지원에 관한 정보 제공
3. 공동주택 노동자에 대한 권리구제 및 심리상담 지원
4. 공동주택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노무 상담 및 정책개발
5. 자치 관리 및 장기고용으로 전환하는 공동주택은 모범단지 선정, 공동주택 관리비용 지원, 공동체 활성화 사업 지원 등에 우선 지원할 수 있다.
6. 그 밖에 공동주택 노동자의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구청장이 인정하는 사항

8월 4일, 조례개정 운동본부는 대덕구의회에 주민 서명명부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8월 4일, 조례개정 운동본부는 대덕구의회에 주민 서명명부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운동본부는 8월 4일 대덕구의회에 청구인명부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아직도 이 폭염 속에 에어컨 없는 경비실이 있다는 것, 대부분의 휴게실이 지하에 있어 숨 막히는 습기로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현실. 3개월 초단기 계약으로 계약 연장이 안 될까봐 고용불안 때문에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얘기는 꺼낼 엄두도 못 내는 경비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게 된 대덕구민들께서는 너나없이 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90일간 대덕구 곳곳의 아파트 단지를 돌며 주민을 만나고 경비노동자와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약속했다”면서, “대덕구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노동자 370여 명은 주민들이 직접 경비노동자들을 위한 제도를 개선한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현장이 실제 바뀔 수 있을지 못 미더워했다. 수많은 제도가 약자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현실을 바꾸는 정책을 경험한 적 없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는 “의원 발의가 아닌 주민발안으로 조례를 개정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고, 주민 2826명이 이에 서명으로 답했다”며, 이제 대덕구의회가 화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대덕구의회는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운동본부는 이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민생을 살피고 구민을 위해 정책을 펼쳐야 할 시기에 자리다툼과 정쟁으로 제 역할을 방기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유 없이 의안 상정과 의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발안 조례는 수리한 날로부터 심사 이의신청을 거쳐 30일 이내에 구의회 의장이 발의해야 하고, 구의회는 1년 안에 반드시 의결해야 한다.

운동본부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손잡아 준 대덕구민의 마음과 의지를 받들어 조례개정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며, 조례개정 이후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 0내는 과정까지 지켜보고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민발안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도 함께했다.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 겸 정평위원장)는 이번 서명운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대덕구 내 각 성당에 협조를 구했다. 법동 성당, 송촌동 성당, 신탄진 성당 등 구내 성당은 주보에 안내 글을 내고, 토요일과 주일 미사에서 서명에 대해 설명할 시간을 내주는 것은 물론 참여를 독려했다. 각 성당에서 참여한 인원은 전체 서명자 수의 약 25퍼센트다.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김용태 신부(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사진 제공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용태 신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는 안분지족이란 말은 현실에서는 부유한 이들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다. 그래서 이 말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처지가 고통스럽고 부당하고 부조리해도 저항하지 말고 견디라는 의미가 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사람은 그저 생존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삶을 영위해야 할 존재이며, 최저임금 혹은 최저생계비란 것도 생존 비용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어야 한다”며, “죽지는 않았으니 다행이고, 나보다 더 비참한 누군가보다는 덜 불행해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 너도 나처럼 나도 너처럼 우리 다 함께 더 인간답고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정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란 ‘남보다 덜 불행한 삶’이 아니라 ‘다 함께 더 행복한 삶’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이웃은 그가 아무리 가난하고 약한 존재라 해도 ‘없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며,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웃이요 생활의 협력자요 삶의 동반자인 공동주택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지역 주민들의 작은 정성을 모아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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