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수녀, "함께 걷는 영적 여정, 영적 억압"에 대한 강의

누가 더 큰 힘을 가졌는가에 따라 일어나는 영적 억압, 그로 인해 생겨난 폭력에 직면하는 방법, 교회가 존폐 위기에 놓인 시대에 신앙인으로서의 연대감을 다룬 강의가 열렸다.

영성학 전문가인 박정은 수녀(미국 홀리네임즈대 교수)의 ‘함께 걷는 영적 여정을 위하여, 영적 억압을 넘어’를 주제로 한 강의다. 우리신학연구소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26일 마련한 이 강의는 서울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교육관에서 열렸으며 온라인에서도 동시 진행됐다. 이날 강의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현장과 온라인에서 모두 100여 명이 참여했다.

영적 억압은 힘의 차이에서 일어나

영적 억압의 문제는 7월 초 로마에서 진행된 여성 수도자들의 시노드에서 다뤄졌다. 세계 각지 수녀 20명이 모인 이 자리에 미국 대표로 참여한 박정은 수녀는 영적 억압은 우리 일상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생겨난다고 말했다.

영적 억압은 교회의 직분이나 개인이 지닌 권위 등을 이용해 교회 구성원들에게 착취, 과도한 권위나 의존, 무시, 폄하, 성적 폭력 등 다양한 유무형의 폭력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대표 등 모든 이가 영적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권력을 가진 이가 자신의 힘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타인을 향한 공격, 타인의 자원을 동의 없이 쓰는 것, 성직자나 수도자가 로만 칼라나 수도복을 이용해 적게라도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면, 그 돈이 아무리 좋은 곳에 쓰여도 그것은 착취라고 박 수녀는 설명했다.

성적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담론을 지나치게 억제하고 거룩함만을 강조하는 교회의 태도 역시 영적 억압이다. 이는 매우 부자유스럽고 교회 내 성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 수녀는 초기 교부인 오리게네스(185-254)가 “하느님은 에로스”라고 했고, “인간은 모두 성적 에너지를 가지며 성은 거룩함과는 뗄 수 없다”면서, “영적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현상도 성적 매력과 같은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교회 내에는 두 가지 영적 권위의 존재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카리스마라는 개인적 은사를 가진 자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조직이 권위를 부여한 사제, 부제, 수도자 등이다. 이러한 은사가 쓰이는 방식도 영적 억압의 원인이 된다.

박 수녀는 “은사와 영적 권위 사용은 충돌하게 돼 있지만, 교회 피라미드 구조에서 한 가지 은사만 쓰이면 문제”라면서 “은사는 사람마다 다르며 위아래가 아닌 다양성이다. 각자 가진 다양성을 피라미드에 쑤셔 넣을 수는 없다. 이 모두는 성령이 주신 선물로 공동체를 위해 쓰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늘나라는 아무 문제 없는 곳이 아니다. 각자의 은사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역동, 거기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 삶의 진실과 각자의 신앙적 절망 등을 통해 같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현재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적 억압을 이해하는 핵심이 힘의 차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식별은 시작된다.

박 수녀는 “먼저 직분이 가진 영적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자신의 은사, 영적 힘을 잘못 쓰는 경향이 계속된다면 정말 하느님 앞에서 멈추고, 관계 속에서 누가 실질적 힘을 가졌고, 그 힘은 어떻게 쓰이는가를 식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힘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잘못 쓸 때 다양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또 ‘사제나 목사, 수도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일, 즉 섬기는 일을 갈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서든 자신의 은사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불리움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것이며 그 안에서만 힘과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억압을 막을 수 있다.”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억압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자신은 어디에 있고, 누구와 관계하고 있는지 계속 짚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원하지만 영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은 수녀(미국 홀리네임즈대 교수) ⓒ김수나 기자<br>
박정은 수녀(미국 홀리네임즈대 교수) ⓒ김수나 기자

자신의 무너짐, 부끄러움, 구멍에 정직해지기

신자들이 특정 수녀나 신부를 매우 좋아하고 의지하는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특정 존재나 관계에 집착하거나 빠져드는 것은 실은 그 존재나 관계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그는 나의 어떤 것을 왜 좋아하는가를 늘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 수녀는 이런 관계는 짐짓 하느님나라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신의 갈망을 상대에게 푸는 것이라며 이는 다름 아닌 영적 억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없는 것, “그 비워짐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인데, 그 단계에서 그 사람을 만난 것뿐이므로 그 사람 말고 저 너머를 봐야 한다”면서, “인간적 외로움이 닥친 순간 다가온 사람이 많이 좋고, 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이때 영적 억압이 생기지 않으려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적 억압을 잘 당하는 이들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부분, 결핍되거나 부족한 점이 있을 때 신부나 수녀가 가진 권위가 주는 인정에 기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박 수녀는 “너도 약하고 나도 약하다는 전제 아래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를테면 나는 수녀니까 엄마가 돼 보지 않아서 엄마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를 인식하고 내게 부족한 것, 저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살피면서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개인적 성찰, 식별과 더불어 함께 기도하고 식별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혼자만의 식별은 자칫 잘못된 결론일 수 있어서다. 주변에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고 수다 떨며 진지하게 의논할 수 있는 인적 관계망을 갖는 것이 좋다. 수도자나 성직자에게도 이런 관계망은 꼭 필요하다. 자신이 무너진 이야기, 자신의 부끄러움과 구멍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나누고 교제할 수 있는 소통의 장 말이다.

박정은 수녀는 수도원, 신학교에서 양성 지도자들이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 온 백인 수련자에게는 매우 관대하면서 제3세계에서 온 이들은 괄시하거나, 젊다고 인격을 무시하는 것, 교회에서 “저 사람 옛날에 그랬잖아”라며 낙인찍는 것 등도 영적 억압의 사례라고 했다. 타자를 무시하고 천시하는 영적 억압을 자신이 행하고 있다면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내가 보지 않고 있는 나의 열등감과 상처는 무엇인가?”, “내가 만나는 신자나 동료들에게 영적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현재 이 교회에서 무엇이 행복하지 않아 자꾸 누군가가 불행했던 때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26일 서울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교육관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 ⓒ김수나 기자<br>
26일 서울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교육관에서 열린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 ⓒ김수나 기자

죽음으로써 새로 태어날 교회

영적 억압을 비롯한 교회 내 다양한 폭력, 팬데믹, 종교 불신 등으로 제도 교회는 사라질 것인가, 다시금 존재할 것인가란 문제 앞에서 섰다. 박 수녀는 지금은 사제, 평신도 모두가 갈등하고 흔들리는 시간이라고 봤다. 서로 돕고 진정성 있고 신뢰할 만한 소통의 장을 만들고,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을 계속 초대해야 한다.

박 수녀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 스타일이 나오겠지만, 복음의 수난처럼 일단 죽어야 부활한다. 우리 교회가 맞닿은 현실은 죽음을 충실히 맞는 것 아닌가”라면서, “과도기에 많이 힘들어 하는 신부들이 있다면, 이 죽음의 목격자가 되고 우리도 그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 연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요한 복음은 이를 교회의 탄생이라고도 보지 않나. 21세기에 십자가 밑에서 서로 죽음을 목도하는 친구로서 만날 수 있다면 기쁘겠다”면서, “같이 죽고 같이 불쌍하게 여기고, 혼자가 아닌 함께 절망하면서 정직하게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서로의 부족을 인정하며 함께 손잡을 때 진정한 시노달리티 교회가 시작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강의는 <가톨릭평론>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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