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제헌절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공휴일이었지만 2005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식목일과 더불어 공휴일 제외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을 마지막으로 제헌절은 공휴일 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날인 만큼 그 의미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제헌절은 여러모로 씁슬한 소식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후반기 국회의 공회전이 50일째로 접어든 것입니다. 여야는 17일 제헌절까지 원 구성을 마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결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제헌절 날 대한민국은 ‘국회 없는 제헌절’을 보냈습니다.

드러난 문제는 상임위원회의 구성입니다. 국회는 17개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회의에 안건을 부치기 전, 법안을 토론하기 위해 구성되는 조직으로 말 그대로 법을 만들어가는 조직이지요.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본회의는 그냥 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들기는 모습밖에 안 보이지만 상임위원회는 보다 큰 전문성을 가지고 법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어야지 제대로 된 국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법제사법위원회에 대한 갈등이 여물자마자 이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의 위원장 문제로 여야가 싸우고 있습니다. 과방위는 방송을 다루고 있고 행안위는 경찰청을 소관하고 있으니 요즘 정치 이슈와 직결된 위원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사실 각 정당 내에서도 아직 교통정리가 안 된 탓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할 것 없이 당 대표 문제부터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과연 정당은 왜 존재할까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나오는 개념입니다. ‘정당이란,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결사체로 정권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당법 제2조는 정당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 조직이다.’ 이 정권 획득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의 요구를 듣고 그것을 정책으로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 바로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입니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정당들은 폭넓은 참여를 촉진하고 공공의 책임이 모든 사람에게 미칠 수 있게 할 임무가 있다. 정당들은 시민 사회의 열망을 간파하고, 그 열망들이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하며, 국민들이 정치적 선택을 내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제공하도록 요구받는다. 정당의 내부 조직은 민주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통합과 입안 능력이 있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3항)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정당들의 내부 조직은 어떨까요? 여당은 당 대표의 임기와 거취 문제로, 제1야당은 당 대표의 선출 문제로 끊임없는 잡음을 내고 있습니다. 정당의 목적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인데 당내부터 아직 어지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기존 정치인들의 타락과 군부의 욕심으로 인해 군사 쿠데타로 두 번이나 정권이 바뀐 사례가 있는 나라입니다. 6.25 때 군인들은 싸우고 있었으나 정치인들은 개헌 문제부터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서 임시수도 부산에서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 흘리는 전쟁 중에서도 자신들만의 이익을 찾으려 했던 당시 대통령과 정치인들 때문에 당시 군인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지요. 결국 그는 군사력으로 정권 획득했고 그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되었습니다. 학습된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피로도를 느끼게 만듭니다. 정당과 정당이 정책을 두고 싸워야 하는데 정당 안에서 싸우기 바쁘니 정작 국민들을 위한 정책 입안이나 법제정은 나몰라라 하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가 속한 정당보다 개인의 당선과 자리 보존이 더 중요한 몇몇 정치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건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럴수록 국민들은 정치에 피로감을 호소할 것입니다. 혹시 국민들이 정치에 피로감을 느낄수록 이들은 더 편하다고 생각할까요?

201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지난 정권의 NLL 문제를 언급했던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힘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을 어찌하시려고 국가의 기본 질서를 흔드십니까?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만 보면 아침 출근길의 대통령부터 정당의 사람들까지 서로 남 탓하기 바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정말 정치 좀 대국적으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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