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시위 소음 아닌 원청 학교가 학습권 방해자

연세대 학생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학내 하청 청소 경비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원청인 학교 본부가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연세대 학생 3명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학내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이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는 반면, 지난 5월 이번 투쟁 시작 때부터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학생들이 낸 목소리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라는 이름으로 모인 학생들은 6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학생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연세대 학생 등 약 30여 명이 참여했으며 연세대 학내 단체로 연세대학교 언론출판협의회 등 9개 단체가 연대했다.

이들은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상승률에도 생존권을 위해 고작 최저임금 인상분인 440원을, 살인적인 청소업무 강도를 더 감당할 수 없어 정년 퇴직자 수만큼의 인원 충원을, 위생과 건강권을 위해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과도한 요구일 수 있나”라며 “연세대라는 공동체에 함께하는 구성원이자 미래 노동자로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한다”고 말했다.

6일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로 모인 학생들이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br>
6일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로 모인 학생들이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

투쟁으로 내몰리는 취약한 삶의 기반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학생들은 진정한 공동체 의미와 구성원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물었다.

장찬 씨(정의당 연세대 학생위원회)는 최근 노동자를 상대로 한 연세대 학생들의 소송 제기에 대해 “학생들의 학습권은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고, 학교 구성원들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면서, “하지만 학생들과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모두 학교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며, 이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다른 구성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한쪽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 다른 한쪽에서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강도 높은 근무를 한다면 그것은 좋은 공동체인가”라고 말했다.

연지 씨(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지 '연희관 공일오비')는 “공동체는 우리 개인을 촘촘하게 연결한 그물망이다. 그 그물망 속에서 개인은 타인의 노동, 돌봄과 같은 사회적 행위들에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 지성의 전당으로서 대학 공간의 기품이 실은 청소노동자들의 손길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이라면서, “우리는 내 일상과 평온이 결국 타인의 손길로 똘똘 뭉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반대로 누군가 자꾸만 투쟁으로 내몰리는 취약한 삶의 기반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며, 따라서 모두의 투쟁이 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흥준 씨(연세대 마이너리티 공동체 마실)도 “학교가 책임을 외면하는 동안 학생들마저 노동자의 투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면서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시끄럽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폄하하고, 법의 논리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권리를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을 법으로 단죄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모순적인가”라고 물었다.

연대서명에 참여자들 명단. 현재 3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br>
연대서명에 참여자들 명단. 현재 3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

노동자 아닌 수수방관하는 학교의 태도가 학습권 침해

학생들은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이 갖는 절대적 위치를 고려하면 학교 당국의 태도는 실질적 고용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유기한 것”이라고 봤다.

이들은 “학교 운영비를 낮추기 위해 용역업체와 계약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하고, 정작 노동자가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학교와 대화하려 할 때는 하청업체가 해결할 일이라며 손을 떼는 것이 지난 15년간 이어져 왔다”면서, “자유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학교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많은 학생이 매년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도 묵묵히 연대했던 것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투쟁이 나와 같은 학교 구성원의 처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문제를 수수방관하면서 노동자를 투쟁으로 몰아간 학교의 태도”라고 말했다.

현재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정년 퇴직자 인원감축 및 구조조정 반대”, “샤워실 설치”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현재 임금은 시급 9390원이다. 노동자들은 여기에서 올해와 작년의 최저 시급의 차액분인 440원을 올리고, 정년퇴직으로 줄어든 인력만큼을 충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시급 440원 인상 시 약 5억 5000만 원(노동자 1명 1달 노동시간 209시간x신촌, 국제캠퍼스 노동자 수 약 500명x12달)이 필요한데, 2021년 적립금 현황에 따르면 현재 연세대의 적립금은 5800억 원이며 임금 인상액은 적립금의 0.09퍼센트 정도라 등록금 인상 없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연세대 측은  440원 인상분만이 아니라 4대 보험, 수당 등까지 하면 약 10억 원 정도가 올라가며 다른 대학과 함께 집단 교섭 중이라 독자적으로 합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공대위에서 활동하는 해슬 씨는 "학교는 매번 다른 학교와 연결돼 있고 집단교섭이라 먼저 나설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연세대만큼 큰 학교도 없다. 연세대가 주도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면서 "홍대의 경우 몇 가지 잠정 합의한 것이 있다. 연세대 측은 다른 학교가 하면 자신들도 합의하겠다는 것인데, 그 말은 이제 연세대도 합의할 때가 됐다는 뜻"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어 그는 "학교 주장대로 10억으로 올라간다 해도 5800억 원이라는 적립금에서는 인상분이 0.12퍼센트 내외 선일 것이라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노동자가 그 정도의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다면, 누가 노동하려 할 것인가가 저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인원의 절반이 같은 크기의 건물을 같은 시간 내에 같은 업무의 질로 끝내야 한다는 말”이라며 “이러한 요구는 시간 외 노동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보고 있다.

샤워실 설치 요구는 서울시 청소근로자 환경시설 가이드라인(2014년 발표)에 따른 것이다.

청소노동자의 업무 공간에는 건물 유지, 관리에 관한 일을 준비, 정리하는 업무공간이자 휴식을 위한 편의시설로 휴게시설, 세면, 목욕시설, 세탁시설, 탈의 시설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특히 샤워 시설은 청소경비 업무상 흔히 겪을 수밖에 없는 열사병, 피부염, 만성 스트레스 등의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 현재 연세대 청소 경비 노동자 휴게실에는 세탁실은 물론 세면시설도 없는 상태다.

공대위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가슴에 땀이 차서 살이 짓무르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까 봐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도 못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반드시 샤워실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br>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

우리 모두 청소 경비 노동자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공대위는 지난 5월부터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에는 현재 모두 3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번 서명운동의 이유를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곳에서 시위하는 것은 판례상으로도 당연함에도 불법 시위라며 고소당하고 눈에 거슬리고 시끄럽다며 조롱당하기도 한다. 이는 과대 대표된 혐오이며 이에 맞서기 위해”라고 밝혔다.

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시위는 사업장 내 노조활동으로 집회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통상적 노조활동이라면서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실제 노동하는 공간에서 시위할 권리가 있고, 실제 작업장과 동떨어진 용역업체 주소지에서 시위하는 것은 어떤 효과도 낼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례(2015도1927)를 근거로 들었다.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학교가 교섭에서 이미 여러 번 책임 있게 답하지 않아, 문제를 더 알리기 위해 유동 인구가 많은 학생회관 앞을 시위 장소로 정하되, 학생들을 배려해 점심시간에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공대위는 “노동자들이 학생들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듯 우리 학생들도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며, 원청인 학교가 성의 있게 교섭하도록 학교 본부를 규탄하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면서, “이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마음 편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애초에 주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 모두가 청소 경비 노동자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음을 기억하며, 이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원청으로서 연세대가 부당노동행위 등 용역업체의 문제를 관리, 감독하지 않고, 오히려 용역업체와 불법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등 연세대 비정규직 문제는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2019년 용역업체인 코비컴퍼니에서는 산타 모자를 쓰지 않은 노조 조합원에게 꿀밤을 때리고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에 항의하는 조합원을 밀쳐 상해를 입히는 등 불법 노동행위가 일어났다. 또 용역업체 선정 시 경쟁입찰이 원칙이지만 원청인 연세대는 2019-20년 입찰공고를 내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기존 계약업체였던 코비컴퍼니를 선정했다. 용역업체는 노조 가입을 이유로 조합원 노동자를 부당해고 했다. 2021년에는 임금을 동결하고 정년퇴직으로 발생한 인원 감소에 대해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

공대위는 2007년 연세대 학생자치단체로 시작됐으며 학내외 노동 이슈에 대해 15년 동안 노동자들과 연대해 온 학내 단체들의 연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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