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 볼프강 베커 감독,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
주인공 알렉스의 어머니 크리스티아네는 남편이 서독으로 망명한 뒤에 열성당원이 된다. 동독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할 여러 방안을 내 놓는 등 분투한 공로로 ‘모범인민’에 표창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반체제 시위에 참가한 아들 알렉스를 본 순간 기절하고, 8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에 의사는 알렉스에게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알렉스는 열성당원이었던 어머니에게 독일민주공화국의 끝자락을 보여줄 수 없었고, 이때부터 기상천외한 거짓말이 펼쳐진다. 먼저 사라진 동독의 상품을 구해 어머니를 안심시켜야 했다. 코카콜라는 동독에서 처음 만든 것이고, 서독의 난민들이 동독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도 하다 보니 걷잡을 수 없다. 어머니를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따로 만들어야 하고,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지만, 재미도 들린 듯하다. 그렇게 한참 거짓말이 진행되는 중 어머니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사실은 아버지를 쫓아 서독에 가려고 했으나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어머니가 혼수상태로 있던 8개월 동안 동독의 여러 사람들은 좌절에 빠졌다. 존경받던 교장 선생님은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누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버거킹에서 일하고, 동독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우주비행사 지그문트 얀은 택시기사로 변해 있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던 동독의 인민들은 서독의 자본주의 물결 앞에서 무기력했고, 무능력했으며, 통일된 독일에서 2류 국민 취급을 당한다.
영화 속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주의 국가는 거창한 대의와 이념에도 불구하고, 여러 한계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표상적으로 볼 때에는 자본주의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가 인간을 위한 우월한 체제인가는 다른 문제다. 저 너머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장밋빛 미래를 갈구하지만 자본의 현실은 냉혹할 뿐이다.
이 영화는 자본에 덜 오염된 소박한 사람들이 자본 앞에서 당황스러워하고 힘겨워하는 이야기며, 아울러 자본을 넘어선 인간적 가치를 갈망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 이야기다. 어디 갑작스럽게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 사람들만의 문제겠는가. 부지불식간에 돈이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 한국사회의 없이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작금의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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