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두 개는 '여름 오후'라고 헨리 제임스는 이야기했다. 점심 후 게으름을 부리다 하지 못한 일을 걱정 없이 해낼 만큼의 긴 햇빛을 가져서일까? 내게 여름 오후는 부드럽게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여유이다. 수업에 사용하면 좋을지를 골몰하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조금씩 해도 되는 넉넉한 시간이다. 그리고 이 넉넉한 시간이 오면 난 내가 만나는 사물들과 친해지고 싶다. 앞집 문 앞에 활짝 피어난 꽃들과, 그 꽃을 스치는 바람과도 친해지고 싶다.

사진 작가 마리아 문은 어떤 대상을 찍기 위해서 최소한 24시간은 그 장소에 머물면서, 그 대상을 만져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 후에 촬영을 시작한다고 한다. 확실히 그런 친밀감 속에 찍힌 대상은 무언가 말을 하고, 흐르는 그 말들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한다. 친밀감을 가진 대상과 함께 있으면, 그 관계 사이에는 무언가 내밀한 어떤 것이 흐르기 시작하고, 또 그 흐름은 격려를, 그리고 생명을 만들어 낸다. 무언가 상처받은 관계는 움직임이 없다. 마치 정지 화면처럼,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다시 말해 생명은 흐르는 것이다.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 '여름 오후'에 가장 애정하는 일은 동네 꽃들과 친해지기. ©박정은<br>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 '여름 오후'에 가장 애정하는 일은 동네 꽃들과 친해지기. ©박정은

감히 삼위일체의 신비를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참 좋아한다. 소통하시는 하느님, 친교하시는 하느님의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움직임 때문에, 그리고 그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떨림 때문에, 또 게으르고 무딘 내 영혼도 조금은 움직이는 것 같아서 공연히 설렌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질을 가장 영민하게 본 사람은 13세기 독일의 여성 신비가  막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다. 그는 참으로 대담한 신앙을 가졌었다. 마치 기사가 고귀한 궁정의 여왕을 사랑하듯,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한 이 여성은, 하느님과 빠진 사랑 속에서는 자신이 남성이 되고, 하느님은 여성이 될 정도로 과감하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흐르는 빛을 은혜라고 정의했는데, 여기서 흐르는 이란 말은 지속되는 변화와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남성 두 분과 새 한 마리로 대표되는 갇히고, 생명 없는 신의 얼굴이 아니라, 늘 흐르고 움직여서 여전히 젊고, 떨리고, 그렇게 우리를 변화 시키는 신적 사랑의 역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 속에 불리워진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현재 이곳에서 우리를 건드리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도전들을 안고 흘러가는 일이다. 살다 보면 지쳐서, 또 때로는 이 상황이 맘에 들어서 그대로 남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상황도 또 변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나에게 다가온 어떤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또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한다.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삼위일체 하느님의 춤을 연상시키는 아틀란타 거리의 조각상. ©박정은<br>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삼위일체 하느님의 춤을 연상시키는 아틀란타 거리의 조각상. ©박정은

요한 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라” 하신다. 머문다는 말은 여기서 어떤 장소를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자유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고, 그 자유함 속에서 어느 곳이든 떠날 수 있는 것이어서, 인생의 여러 가지 초대들을 향해 초연히 걸어가는 당당함이다. 

난 지난주에 새로 쓰기로 한 늙음과 죽음에 대한 책을 준비하면서, 오리건 주의 포트랜드에 있는 우리 수녀원에 가서 죽음을 맞는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도 흐려 가고, 숨 쉬기도 힘들어 하는 헬렌 수녀님은 여전히 친절하며, 여전히 바이올린을 켜셨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걸으면서도 내 손을 잡고 윙크를 해 주셨다. 콧날이 시원하게 잘생긴 우리 수녀님의 여전히 멋진 콧날을 보는 데 내 코끝이 시큰하다. 수녀님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제 곧 하느님께 돌아갈 것 같다 하셨다. 수녀님의 천천한 걸음에서 사랑 안에 머물며, 또 흘러가는(fließend) 빛을 보았다. '바베트의 만찬'이란 영화에서 바베트가 하는 유명한 마지막 대사는, “예술가는 가난할 수 없다”인데, 난 죽음을 준비하는 수녀님들을 만나면서, “예술가는 늙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베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로마 외곽에 있는 '세상을 향하여'(ad gentes) 피정 센터에서 각국에서 모인 수녀님 신학자 22명이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일주일 간의 경청을 시작했다 . ©박정은<br>
로마 외곽에 있는 '세상을 향하여'(ad gentes) 피정 센터에서 각국에서 모인 수녀님 신학자 22명이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일주일 간의 경청을 시작했다 . ©박정은

나는 지금 로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피정 센터에 와 있다. 아틀란타에서 가톨릭 신학학회 발표를 마치자마자, 공항으로 달려 나와, 부랴부랴 로마까지 간 것은 세계에서 신학자 수녀들 스물두 명이 모여서 신학과 수도생활을 나누는 자리에 초대된 때문이었다. 밤을 새워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옆자리에 육 개월 된 아기의 아빠가 앉았다. 그 아버지가 아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밤을 새우면서,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아기를 사랑하는 부드러운 손길을 보면서 하느님의 모습이 이런 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아빠는 단단하게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고요하게, 그러나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름다움은 동사이고,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기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더 확실해졌다.

나도 열다섯 시간 비행기를 두 번 바꿔 타면서 이곳에 와서, 천천히 흘러가 보기로 했다. 피정 센터의 이곳 저곳을 천천히 걸어 보고, 나무들과 친해지면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흐르는 빛을 묵상했다. 우리의 모임은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로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그러나 참 가깝게 느껴지는 수녀님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면서, 어떤 울림, 그리고 우리 안에 흐르는 자매애가 느껴졌다.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머무는 것이고, 그래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랑 속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청하면서 배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일주일 간 함께 기도하고 공부할 '아드 겐테스' 피정센터는, 글자 그대로 세상을 향해 가는 보편적 미션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상을 향해 다가오시고, 그렇게 춤을 추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따라, 일주일 동안, 작은 맘으로 감히 하늘을 사랑하면서 받은 아픔을 함께 격려하는 그런 축제를 살아 보려고 한다.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