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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기도] 당간지주의 기도

 

   

 

저는 경주 황룡사 터에 서있는 당간지주입니다.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꽃은 피어납니다.
여지껏 사람의 손이 닿아
신운(神韻)처럼
햇발처럼
유채꽃
이 사방에 깃발처럼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여기는 거룩한 땅이라고
알려주는 당간지주,
항시 절 입구에 서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저는
그래요, 당간지주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고
세속의 호흡들이 잠시잠깐 이승의 그늘을 내려놓고
쉬는 곳, 그래도 좋을 곳이 되었답니다.
열락의 꿈들이 천년 이상 잠들어 있는곳,
그러나 사람의 꿈이 영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 다시 울릴
목탁소리를 기다리며
기다리며
이렇게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주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승과 저승이 따로 있겠습니까? 기실 거룩함의 영역과 속된 자리가 따로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 성소일 테고, 마음 맑은 영혼들이 노니는 땅이 성전이겠지요. 아무리 사람들이 '여기는 신성한 땅'이라고 우겨도 거룩한 신분을 자처하는 사람이 좌정하였으니 예배하라 윽박질러도, 그 사람이 거룩하지 않으면 그 땅은 오염되는 법이지요. 가끔 청와대에도 꽃이 피는 지 궁금합니다. 가끔 주교관에도 햇살이 쪼이는 지 궁금합니다. 알지 못해서,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모양입니다. 낮은 곳으로만 흐르던 주님의 물길이 때로는 위로 솟구칠 날이 오겠지요. 대통령이 시민을 공경하고, 주교가 하느님 백성을 두루 품어안을 그 날이 조만간 오겠지요. 조만간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오겠지요. 허기사, 그런 게 다 무어 소용이 닿겠어요. 우리가 하늘이고 우리가 제 삶의 주인이 되면 그로 족할 따름이겠지요. 다만 그 와중에 여전히 상처받는 백성이 있고,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는 산천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파 심장이 저릴 테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망령들지 않도록 제 영혼을 다시 찾아 얻기를 기도하고 갈망하며 마음을 모웁니다.

/한상봉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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