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왔던 성자"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

올해는 1922년 음력 5월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금까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여러 깊은 족적과 기억을 남겼다. 인간 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공동선의 추구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 실천 과정에서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또 반공, 멸공이 국시처럼 취급되는 서슬 퍼런 시기, 북한을 위로하고 화해보다 전쟁을 추구하는 남한 정권을 꾸짖었던 김 추기경은 교회의 여러 북음적 역할 가운데 특히 언론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 역시 ‘예언자로서의 언론’을 실천했다.

그런 김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언론, 출판, 방송인, 사제, 수도자 등 20여 명이 그의 가르침과 삶, 추억을 기록했다. 김 추기경의 소신학교 시절부터 이후 추기경으로 살아가는 동안 동시대를 숨 쉬었던 언론인들이 김 추기경과 만난 일화와 에피소드, 추억을 엮어 출판한 책은 “우리 곁에 왔던 성자 -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현인아, 김후호정, 허영엽, 류철희, 송란희 저 외 14명, 서교출판사, 2022. (이미지 제공 = 서교출판사)
"우리 곁에 왔던 성자-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현인아, 김후호정, 허영엽, 류철희, 송란희 저 외 14명, 서교출판사, 2022. (이미지 제공 = 서교출판사)

“김 추기경은 1956년, 독일 뮌스터대학 유학길에 올라 은사인 요셉 회프너 신부로부터 ‘그리스도 사회학’을 배운다. 또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소식을 접하면서, 교회가 자성, 쇄신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하면서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러면서 공의회 핵심 주제 중의 하나인 대중매체의 역할에 대해 눈을 떴다. 귀국 후 가톨릭시보사(지금의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일할 때에는 세상의 사건과 흐름을 신앙적 눈으로 조망하는 주제의 사설을 지면에 자주 실었다.”(책 105쪽)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지영 씨는 김수환 추기경이 특별히 언론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또 <서울신문> 전 편집국장 최홍운 씨는 1987년 5월 26일 홍보 주일 김수환 추기경의 강연을 통해 언론, 언론인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며, 자신의 신문사 면접 자리에서 “왜 사제가 되려다가 기자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제가 하는 일이나 기자가 하는 일이 같다”고 대답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강연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진리와 정의의 선포 및 사랑의 확산으로써 보다 인간다운 사회, 보다 인간다운 세계로 만들어 가는 데는 양자가 거의 같은 사명을 지고 있다”며, “그 때문에 언론인을 그가 지고 있는 사명의 신성함에서 볼 때 성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언론인은 단순히 그 분야의 전문 기술자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인간과 사회에 진실로써 봉사해야 하는 천직”이라고 말했다.(118쪽)

이런 김수환 추기경의 언론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그가 유학 뒤 돌아와 맡은 <가톨릭시보> 사장으로서, 이후 추기경으로서 언론 지면을 기획, 운영하고 인터뷰하는 실천과 말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교회와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는 김 추기경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김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정신을 가톨릭신문을 통해 신자들과 우리 사회에 널리 소개하고 알림으로써 교회 쇄신에 앞장섰다.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유력 매체들이 생중계하는 미사 강론을 통해 또는 미디어 인터뷰를 활용해 현실 상황을 전하고 비판하며 복음적 가치관을 널리 알렸다.”(147쪽)

“동일방직 여성 근로자가 126명이나 해고되고, 그 와중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구속 및 입건되는 사태까지 빚고 있는데도 주요 일간지와 방송 미디어들이 오늘까지 한마디도 여기에 관해서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아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언론의 침묵속에 묻혀 버렸습니다.”(124쪽. 1978년 6월 5일 명동대성당 기도회 중 김수환 추기경 강론)

이런 행보 덕에 김 추기경은 ‘정치적 진보’의 틀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답하듯 김 추기경은 <평화방송>, <평화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1970-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111쪽)

김 추기경의 이러한 언론관, 세상을 대하는 성직자로서의 태도뿐 아니라 필자들은 그의 소통 태도, 유머의 대가,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휴머니스트로 기억한다. 하지만 1969년 추기경에 서임된 뒤 그가 가난한 이들을 향해 행했던 수많은 일들, 세상과 교회에 당부하고 요청하고 꾸짖기도 했던 말들은 여전히 유효해서 기억하며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이 됐다.

“지도자가 민심을 바로 읽지 못하면 국민은 지도자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아무도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가 떠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긴박하다. 검찰도, 정부도, 대통령도 힘을 잃은 채 나라가 표류하는 데 대해, 정치인들은 방관하고 언론도 합세하면 이 나라는 누가 붙잡아 살리는가?”

이 말은 1977년 3월 1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이다. 이 말의 어느 부분도 지나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김수환 추기경을 책의 제목처럼 “우리 곁에 왔던 성자”로 기억한다면, 그의 호소, 당부, 가르침의 실천은 단지 ‘추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이 이 책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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