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제연, 국회 앞 46일 간 단식농성 마무리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단식농성이 26일 마무리됐다.

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공청회 단계를 넘지 못한 가운데 이날로 단식 46일째인 미류 씨(인권운동사랑방, 차제연 책임집행위원)의 건강이 크게 악화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가 단식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앞서 19일에는 39일 동안 미류 씨와 함께 단식했던 이종걸 씨(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차제연 공동대표)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차제연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활동가의 절박한 호소에도 절반의 공청회를 응답으로 내놓은 국회에 가슴 깊이 분노한다. 이 투쟁의 시간은 21대 국회의 가장 부끄러운 날들로 기억될 것”이라면서, “공청회마저 거부한 국민의힘은 최소한의 역할마저 저버렸고, 더불어민주당은 스스로 선언한 법 제정 의지가 기만이었음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문제는 모두의 삶이 위기임을 드러냈다”면서, “코로나19로 확인된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정책과 비전을 내놓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정부, 이를 개혁할 의지나 민생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음을 증명한 더불어민주당으로 인해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무너진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공통분모이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째 단식한 미류 씨(인권운동사랑방, 차제연 책임집행위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째 단식한 미류 씨(인권운동사랑방, 차제연 책임집행위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날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정부 입법으로 차별금지법을 처음 발의한 지 15년 만에 열린 공청회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불참했으며, 공청회 개최 자체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발했다.

앞서 차제연은 이번 농성을 시작하며 차별금지법을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라는 요구안을 더불어민주당 모든 의원실로 보냈고,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과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장)에게 25일 정오까지 답변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류 씨는 “공청회조차 거부하는 국민의힘은 여당 자격이 없고, 시민들이 간절히 요구하는 법안 심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민주 세력 자처를 그만하라”면서, “시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행동하기 위한 계획을 내지 않고, 국민의힘 핑계만 대는 것이 기만임을 모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 정치의 참담한 실패다. 그것은 단지 법을 못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개선할 능력이 정치에 없다”면서, “수많은 이들의 간절함으로 함께 싸웠고 평등 밥상은 나날이 풍성해졌다.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서로 단단히 연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사위어 가는 몸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께 더는 지켜보고 함께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국회는 미안해 하지도 않는데, 미안해 하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받을 염치가 없다. 죄송하고 고맙다”면서, “아픔 없이 응시하기 어려운 이 시간을 외면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저를 살렸다. 단식은 중단하지만 싸움은 중단되지 않는다. 차별에 맞서는 것은 자신의 존엄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멈출 수 없는 싸움이다. 법 제정을 넘어 평등으로 우리 사회와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걸림돌은 다름 아닌 국회

과반의 의석수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지오 씨(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는 “끝내 당 차원의 입장을 내지 않은 박홍근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핑계를 대며 여야간사 합의로 권고만 한 채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두 사람에게 소위원회 차원 공청회로 상반기 국회가 마무리되는 상황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다”면서 “특히 국민동의청원 심사를 2024년으로 미룬 장본인인 박광온 위원은 이 기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영옥 씨(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는 “우리는 국민, 시민, 주민으로 옆 사람들과 의존하며 살아간다. 나의 안전이 너의 안전 덕분이라는 걸 인식하고 내 편이 돼주는 법 하나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국회에 법을 만들어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만든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알아차리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국회는 그 오만한 자세를 반성하고 국민이 합의한 법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26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단식농성의 마무리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6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단식농성의 마무리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호림 씨(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는 “국회 앞 농성장에서 봄을 지내는 동안 민주정당, 개혁정당을 자임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증명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가로막는 장본인들이란 점”이라면서, “비겁하고 무능한 더불어민주당과 국회의 무책임에 매우 지치고 슬프지만 우리 삶은 계속되기에 계속 나아가겠다.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당신들의 실패이기에 절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보라 목사(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평등을 향한 탄탄대로의 커다란 걸림돌은 바로 시민의 뜻을 받아 제 할 일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었고, 특히나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말하면서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예수의 복음에는 눈곱 만치도 관심 없어 하는 이들 임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최장 46일 단식을 이어온 힘은 차별과 혐오를 끝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으로부터 이어져 왔다. 진작 멈추었어야 할 단식,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차별금지법은 단식하지 않아도 진즉 제정됐어야 한다”면서, “정치인들의 무능함은 (단식으로 인한) 심장과 뇌 손상보다 더 유해하다는 것을, 진일보한 사회로 가는 길의 훼방꾼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한편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로 단식 21일째인 이진숙 씨와 17일째인 임푸른 씨는 메시지를 보내, “평등을 외면한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고 시민들은 거부한다. 이미 우리는 차별이 사소하지도 괜찮지도 않다”면서, “시민들은 인간다운 삶, 인권이 있는 사회에서 평등은 기본값임을 지지했고, 누가 평등을 막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차별금지법은 민주공화국의 기본법이다. 시민의 힘으로 차별금지법은 기본값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 11일 시작돼 46일 동안 이어진 이번 농성에서는 이종걸 씨와 미류 씨의 단식에 동조해 모두 900명이 단식농성에 함께했다. 이 기간에 차제연은 기자회견 24번과 문화제 35번을 진행했고, 집중 집회에는 연인원 500명, 비상 시국선언 연명에는 각계 인사 813명,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성명에는 712개 단체에서 5735명이 참여했다.

차제연은 이날 저녁 7시 국회 앞에서 ‘함께 싸운 우리가 이긴다. 평등으로 가자’는 이름으로 마무리 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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