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린이 미사 때 벌어진 일입니다. 보편지향 기도 때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문을 읽는 아이 옆에 앉은 친구의 목소리가 제대까지 얼핏 들렸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뭐야?’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어떤 일인 줄 아니?’ 두 친구의 대답이 갈렸습니다. 한 친구는 광주 시민들의 반항(초등학생의 표현임을 감안해 주십시오)이라고 이야기했고 한 친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하긴 성당 안에서도 ‘빨갱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왜 반항이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그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시는데 옆에서 같이 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제5공화국’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저 역시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재방송을 꽤나 즐겨 봤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 제작된 드라마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어 뇌리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드라마입니다. 이어지는 편이 궁금해서 가지고 있던 휴대폰의 비디오 상품을 통해서 드라마를 1화부터 끝까지 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소위 말하는 ‘공화국 시리즈 드라마’ 전부를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드라마는 광주 민주화운동를 무려 5화에 걸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에 주인공인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역할을 맡은 이덕화는 끊임없이 짜증을 냅니다. 쉽게 진압될 줄 알았던 광주의 시민들의 저항이 갈수록 극심해지기 때문입니다. 불안함과 짜증 속에서 지쳐 가던 이덕화는 이러한 말을 내뱉습니다. ‘다 조용한데 왜 하필 광주냐?’ 주인공의 짜증에 그를 보좌하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인 허화평 대령, 배우 이진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건 왜 하필 광주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잘 아신다.’ 몇 년 전 그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이 법정에 출두했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을 향해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지요. ‘이거 왜 이래?’ 그 말에 당시 이진우 씨의 대사를 빌어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이거 왜 이래?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그 이유를 더 잘 아신다.’ 그리고 전두환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지요. 그 사람의 입에서 진정한 사과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원통스럽습니다.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잘못된 공권력을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잘못된 공권력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따르지 말아야 할 것 역시 교회는 명확히 가르칩니다.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그러한 거부는 도덕적인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권은 바로 그 자체로써 국법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02항) 5월의 광주는 바로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동료 신부님들과 서울 현충원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현충원을 돌아보다가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한 묘역에 들어가 보니 당시 공수여단의 군인으로 시민군과 교전을 하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묘비 뒤쪽에 ‘전사’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군인들이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 두고서라도 묘비 뒤쪽에 선명히 새겨진 ‘전사’라는 표현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군이 민간인들을 진압하는 행위가 적을 두고 벌인 ‘전쟁’이었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그들에게 광주 시민들은 바로 ‘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의 역사 앞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인 듯 합니다. 누구는 그런말을 합니다. 과거는 과거로 보내고 이제는 미래를 향하여 가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타협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란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일까 고민하던 저에게 화두로 다가온 말씀이 있습니다. 저에게 한창 화두가 되었던 그 말씀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3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5항)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함께 되새겨 보는 5월이 되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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