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시대의 끝자락에서

이 글은 <가톨릭평론> 35호(2022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

“어떤 책이든 중요한 차원에서는 맥락의 산물이다. 어떤 책이든 아무리 혁신적이라고 하더라도 맥락 속에 있으며, 맥락에 대한 반응이다.”(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말문을 열며

종이책 시대, 인쇄물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전에는 종이책에서만 얻을 수 있던 많은 정보를 이제는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손쉽게 무료로 구할 수 있다. 약간의 외국어 실력을 쌓으면 알찬 정보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종이책 읽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종이책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으며, 현대 지성사와 사회운동사에서 종이책 홀로 찬연히 빛나던 과거 시대로 회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시집이나 사변적 신학책, 또는 묵직한 사상서나 복잡한 이론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를 다시 맞을 수 있을까? 개별 서적이 반짝 그렇게 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시대의 흐름과 추세를 종이책이 다시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종이책은 서서히 박물관의 유물처럼 변해가고 있으며 일회성 소비재에 그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제 더는 지적 성장이나 인간 양성을 종이책 홀로 이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종이책 없이 전자책(E-book)만 발간되는 경우가 흔해졌고, 오디오북 등 종이책을 대체하는 매체도 늘어났다. 그러나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유튜브는 어떤 종이책을 어떻게 얼마나 대체하는 것일까? 이들 매체와 종이책은 완전히 다른 것인가, 아니면 서로 보완하는 것인가? 종이책에 담겨야만 그 가치가 제대로 확보되는 콘텐츠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종이책은 미래에도 존재 이유를 스스로 담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과연 종이책에 미래는 있으며 있다면 어떤 미래를 어떻게 종이책이 담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이야 어떻든 미래와 관련해 분명한 사실은 과거와 현재에 의존해 미래를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담을 수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읽은 과거와 현재뿐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읽으면서 다가올 시대의 조짐과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지만, 우리의 독해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한국 가톨릭 지성사에서, 그리고 얼마간은 한국 문화사에서도 독특한 색채를 보였던 ‘분도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분도출판사 전성기의 책들

오는 5월이면 분도출판사가 창사 60주년을 맞는다. 나는 이 글에서 분도출판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람들과 책들을 중심으로 60주년의 의의를 논하면서, 가능하다면 교회 출판사에서 내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말하는 ‘전성기’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주로 1970-90년대를 가리키는 시기다. 어떤 출판사든 전성기가 있다면 거기에는 훌륭한 역저자들과 독자들과 시대정신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없다면 전성기는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이 글에서는 범위를 좁혀서 출판사 운영진과 편집진 및 주요 책들에 초점을 두고 논의하겠다.

지난 2012년 분도출판사는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흥미로운 도서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를 발간했다. 저자 권은정이 20여 년간 분도출판사를 이끌었던 임인덕 신부(세바스티안)와 인터뷰하고 출판사 내외의 여러 자료를 추적해서 임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지만 임인덕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독일에서 보낸 수도생활 및 한국에서 펼친 활동, 특히 분도출판사에 얽힌 일화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분도출판사가 50주년을 맞아 사장으로 일했던 외국인 신부 이야기를 기념도서로 발간한 것은 그만큼 그의 선한 영향력이 컸다는 뜻이다. 임인덕 신부를 빼고 분도출판사를 말하기는 어렵고, 혹시 지금도 누군가 분도출판사의 위상을 긍정적으로 기억한다면, 그것은 상당 부분 그의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임 신부는 신학 및 성서 관련 서적들과 더불어 사회 정의와 건전한 사회의식을 고취하는 서적들을 발간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화와 만화를 비롯해 시와 소설 등 문학 서적들도 여럿 펴냈고, 베네딕도미디어를 통해서는 그림, 슬라이드, 음악 카세트, 사진말, 이콘과 성물, 비디오물 등 당시 활용 가능한 거의 모든 매체를 이용해 동시대 한국인들에게 부단히 말을 건넸다.

임인덕 신부는 가톨릭 문화의 발전은 물론이거나 한국의 출판문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분도출판사 제공)
임인덕 신부는 가톨릭 문화의 발전은 물론이거나 한국의 출판문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분도출판사 제공)

임인덕 신부는 1972년 분도출판사 사장으로 부임한 이래 20여 년간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임 신부가 오랜 고민 끝에 처음 펴낸 책은 영국 경제학자 바바라 워드의 "성난 70년대"였다. 바바라 워드는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처음 제기한 학자로 이 책에서 후진국의 경제 개발과 환경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임 신부는 독재정권이 주도하는 경제개발 시대에 이 책을 첫 책으로 내면서 출판사가 ‘시대의 징표 읽기’를 도외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어서 낸 두 번째 책은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였다. 성서 메시지가 정의 평화 문제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간결하게 보여 주는 이 책은 한 달도 안 되어 초판 1만 부가 매진됐다. 임 신부는 이렇게 한국 출판계에 등장했다.

1970년대는 또한 분도출판사가 총서를 펴내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분도소책’은 20여 년 동안 73종이 출간됐고, ‘신학총서’는 34종이 출간됐다. 이들 총서는 현재 거의 중단된 상태이지만 총서 중 일부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1975년 "꽃들에게 희망을"을 선보이면서 우화 시리즈를 열었다. 이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이상한 나라의 숫자들", "점과 선", "저만 알던 거인" 등을 포함해 36종을 발간하면서 신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독서계에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 우화 시리즈는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br>
"꽃들에게 희망을". 이 우화 시리즈는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그런데 1973년에 발간한 돔 헬더 카마라의 "정의에 목마른 소리"는 예상치 못했던 갈등을 낳았다. 교회 일각에서 이 책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분도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책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앞으로 책을 낼 때는 상의하고 내면 좋겠다고 경고했다. 임 신부가 향후 발간할 책들에 대해서도 타협할 여지를 주지 않자 교회는 판매망을 끊으려고 했다. 문제 있는 책의 판매만 아니라 분도출판사에 의뢰해 출간하던 전례집이나 미사 경본 등의 인쇄도 전면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유일한 판매로를 막아버리는 이 결정은 출판사와 분도수도원에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임 신부는 출판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책의 판매에 매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시 전례서 등의 교정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편집장 김윤주는 “이제 마음놓고 우리 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이 일을 계기로 임 신부는 영업 전선에 직접 뛰어들었다. 가방에 신간을 가득 채우고 다니면서 대학가와 종로의 서점들을 방문해서 판매했고, 대구시내 본당들을 돌면서 열심히 영업활동에 매진했다.

1977년에는 구티에레스의 저 유명한 "해방신학"이 출간됐다. 이 책은 분도출판사를 한국의 비판적 지성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회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사제들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대구대교구에서 교회인가를 받지 못할 것을 염려해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직접 출판 승인을 받았다. 당시 문화공보부는 이미 인쇄된 "해방신학" 전량을 당장 불태우라고 종용했다. 임 신부는 책을 다락방으로 숨기고 또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주문이 오는 대로 소포로 판매했다. 이렇게 초판 3000부가 1년 안에 판매됐고 ‘2쇄’ 표시를 할 수 없어서 초판본 그대로 계속 발행했다. "해방신학" ‘초판’은 매번 3000부씩 무려 14회를 찍었다. "해방신학"이 일으킨 여파는 전 세계 곳곳에서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해방의 신학’은 구조적 불의와 빈곤과 억압에 정면으로 맞서며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었고, 그들과 심층적으로 소통했던 거의 유일한 신앙언어였으며,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매혹했고 투신자를 양산했다.

"해방신학". 1980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 책은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저서이기도 하다.&nbsp;(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br>
"해방신학". 1980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 책은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저서이기도 하다.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1970년대 막바지에 이해인 수녀의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가 출간됐다. 이후 이해인 수녀는 한국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하면서 분도출판사가 세간에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현재도 가장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79년에는 교회일치적 신앙고백 해설서 "하나인 믿음"과 서인석 신부의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출간됐다. "하나인 믿음"은 대한성서공회가 1977년 출간한 공동번역 "성서"와 더불어 가장 의미 있는 교회일치운동의 결산이었고,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은 시대정신과 궤를 같이하면서 많은 개신교인과 운동가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간의 공동 노력을 감안한다면 현재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가 당시보다 대화가 뜸하고 더 멀어져 보이는 현실은 사실 기괴한 현상이며 전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다. 신학적 영성적으로도 분명한 퇴보다. 1978년에는 초대 편집장 김윤주가 뒤로 물러나고 2대 편집장 정한교가 뒤를 이었다.

1980년대 분도출판사는 ‘200주년 신약성서 주석판’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1년 정양모 신부의 "마르코 복음서"를 시작으로 신약성서 각 권을 주석판으로 간행하면서, 2002년 "요한 묵시록"을 끝으로 18권을 완간했다. 20년이 소요된 작업이었다.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에도 새로운 총서를 시작했다. 1982년 아시아신학 총서와 사목 총서를, 1986년 종교학 총서를, 1987년에는 원전 대역 교부 문헌 총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중요한 고전적 텍스트들이 포함돼 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총서들은 현재도 끊일 듯 이어지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폭넓은 사랑을 받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을 비롯해 김지하의 시집 "검은 산 하얀 방"과 이야기 모음집 "밥", 이현주의 "아가씨, 피리를 부셔요", 권정생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와 "초가집이 있던 마을" 등 빼어난 문학작품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해방신학의 영성",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 "해방하시는 하느님", "아시아 해방신학", "제삼세계의 해방신학", "구원과 해방", "해방의 실천과 전략" 등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책들이 1980년대에 출간됐다.

1990년대에는 여성, 환경, 영성 관련 서적들이 붐을 이루었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여성", "아들만 하느님 자식인가?", "따뜻하고 촉촉하고 짭쪼롬한 하느님", "동등자 제자직", "신학, 그 막힘과 트임", "여왕과 야성녀" 등의 여성신학 서적들과 "땅의 신학", "교회의 녹화", "공생의 사회", "우리 시대를 위한 지구 이야기", "창조신학" 등의 환경신학, 앤소니 드 멜로와 안셀름 그륀 신부의 영성 서적들이 다수 소개됐다. 교회 쇄신과 관련해 이제민 신부의 "교회, 순결한 창녀", "녹지 않는 소금", "교회는 누구인가?", 정양모·서공석 신부의 "한국 가톨릭교회 이대로 좋은가" 1권과 2권, 서공석 신부의 "새로워져야 합니다" 등 지금 읽어도 신선한 시선을 제공하는 서적들이 출간됐다. 복음서 연구에 필수적인 "네 복음서 대조"도 1993년 발간됐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출판사에서는 권정생 선생의 이 책을 비롯해 다수 뛰어난 문학작품을 출간했다.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br>
"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출판사에서는 권정생 선생의 이 책을 비롯해 다수 뛰어난 문학작품을 출간했다.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2000년대에 이르러 분도출판사는 기존의 ‘신학총서’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신학 텍스트 총서’를 열면서 현재까지 15종을 출간했다. 2007년 ‘중세철학 총서’가 출범돼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도대전"이 출간 중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오틸리아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2009년 출간된 "분도통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100년 전 이 나라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2012), 한국전쟁 전후(1949-52) 공산주의자들 손에 희생된 서른여덟 분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덕원의 순교자들"(2012)은 한국사와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저작들이다. 2008년 첫발을 내디딘 "교부들의 성경 주해"는 2022년 3월경 총서 발간을 완료할 예정이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는 분도출판사 60주년 기념도서로 지정됐다.


전성기 이후의 평가

지금까지 분도출판사가 1970-90년대에 발간한 주요 책들과 2000년대 발간한 책 일부를 살펴보았다. 지면의 한계상 말한 부분보다는 말하지 못한 부분이 더욱 크며, 말할 수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 오직 여백과 공백으로 남길 수밖에 없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지극히 제한된 인력과 자본으로 수준 높은 책들을 다수 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상찬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어렵게 펴낸 중요한 책들이 신자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심지어 학자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크다. 서공석, 정양모, 이제민 신부의 신선하고 애정 어린 신학적 비판, 성염 교수를 비롯해 고전어에 조예 깊은 학자들의 땀이 녹아 있는 원전 대역 교부 문헌 총서, 교부학회의 오랜 염원으로 이루어진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와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신학총서의 주요 저서들, 종교학과 신학을 종합한 학술지 '종교신학연구'(1-10집), 종교학 총서, 아시아신학 총서, 신학텍스트 총서 등 분도출판사가 펴낸 굵직한 저서들과 총서들은 정말 어렵게 발간됐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진지한 비평도 별로 없었다.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비평으로서의 신학은 여전히 제 길을 찾지 못한 듯싶다.

교회 내 지성과 젊음의 상실은 필연적으로 신학적 영성적 문화적 퇴보를 가져온다. 교회 안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나오는 책들은 얇고 내용도 가볍기 일쑤다. 읽는 데 수고를 들여야 하는 신학 책이나 사상서들은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출간을 아주 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 안에서 비판적 지성이 실종되고 있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은 빠른 속도로 교회를 떠나고 있다. 어쩌면 이 현상은 종이책 시대의 황혼과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런 현상이 종이책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는 아닌가? 여기서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은 든다. 굳이 종이책이 아니어도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종이책을 찾아서 재미없고 지루하며 난해하고 복잡한 것을 맞닥뜨리려고 도전하는 독자들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이러한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늘 수 있는 기반이 쌓이기를 바란다.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조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한때 분도출판사는 그토록 여러 종의 책을 내면서도 높은 수준의 책을 발간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가? 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간략히 정리하고 싶다. 분도출판사의 전성기를 돌아보면 지금은 심히 약화된 세 가지 사항을 알아챌 수 있다. 

첫째는 수준 높은 책을 가려서 낼 수 있었던 신학적 사회적 안목과 그 안목을 실현하려는 투신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임인덕 신부는 좋은 책을 고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한국사회와 대화하고자 함은 물론 영업사원의 역할에도 헌신적이었다. 

둘째는 뛰어난 편집자들이다. 초대 편집장 김윤주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50권의 번역서를 냈고 그 공로로 가톨릭문화상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편집자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빼어난 번역가이기도 했다. 2대 편집장 정한교는 신학을 깊이 공부한 편집자로서 역시 30권의 역서를 낸 훌륭한 번역가였다. 정한교 편집장이 분도출판사 20주년에 출판사 연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신학과 외국어가 짧고, 다년간 외국서 배워 온 분들은 우리말이 시원치 않습니다.... 간절한 소망을 하나만 말한다면, 번역서도 아니고, 여러 사상의 모자이크만도 아닌,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쓴 역작이 200주년 성서 외의 분야에서도 더러 있을 수 있으면 오죽 신나겠습니까.” 그는 뛰어난 편집자요 번역자였지만, 번역 신학을 넘어서 새로운 한국 신학의 탄생을 누구보다도 열망했다.

편집장들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함께 일했던 편집자들도 탁월했다. 정협모, 배영희 편집자는 30년 이상 분도출판사에서 교정을 보았는데, 본인들이 교정에 만족하지 않으면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도 원고를 책으로 내는 일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 때문에 한 편의 원고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세 번째는 판매망을 잃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출판의 자유, 사상의 자유다. 분도출판사 전성기에는 교회 인가를 거의 받지 않고 책을 출간했다. 주교회의에서 수시로 검열을 받고 인가를 받으라는 공문이 날아와도 개의치 않고 책을 냈다. 지금은 검열을 받고 교회 인가를 받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인가를 받지 않은 책은 판매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전에 인가받지 않고 팔던 책들도 다시 찍을 때는 인가를 받는다.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 우리말을 깊이 사랑하는 잘 훈련된 편집자, 출판과 사상의 자유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않으면 좋은 책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 시대의 징표를 읽는 예언자적 시선,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우리의 맥락에 대한 주체적 사고, 마지막으로는 방해받지 말아야 할 자유로운 사고의 지평이다.


나가면서

“모든 책은 맥락의 산물”이라는 캔트웰 스미스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저자든 역자든 사장이든 편집자든 어떤 개인이 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아무리 뛰어난 저자나 역자가 멋진 글을 썼더라도 그 글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글을 쓴 그 개인 자체가 맥락의 산물일 뿐 아니라, 그의 지식과 앎도 홀로 얻은 것이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전승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은 사유화할 수 없는 공적 영역, 공동의 자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어떤 책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발간 당시 그 책이 나올 만한 필요충분조건이 완벽히 갖추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촘촘히 얽힌 이 구조에서 단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나무와 공기와 물과 인부들과 종이와 인쇄 기사와 편집자와 저자와 역자와 영업부 직원과 판매상과 서점 외에도 무수한 요인들이 한 권의 책에 투입된다. 온 우주의 합심과 조화로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반성적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교회는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교회기관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누구의 것인가? 사장의 것인가? 장상의 것인가? 주교의 것인가? 추기경이나 교황의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유래하며 우리 자신마저 그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아니던가. 교회기관이나 사업체의 결정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 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준해서 내릴 것을 요구받는다. 신앙인이라면 이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다. 이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이 기본을 잃지 않는 선에서만 신앙인의 활동은 정당화된다.

모든 책이 맥락의 산물이며 맥락에 대한 반응이라는 캔트웰 스미스의 말은 정당하고 당연하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맥락을 넘어서는 절대 맥락이 있다. 우리는 이 절대 맥락을 하느님 나라의 맥락,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맥락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신앙인이 하는 모든 일은 이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책을 내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란 복음에 관한 신앙언어가 축적된 전통이며 이 전통을 실천하는 하나의 생활방식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언어는 어떤 형태로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학과 신앙언어는 복음을 성찰하고 해석한 결과요, 복음의 성찰과 해석을 통해 또 다른 복음을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끝없는 생성과 창조의 과정 중에 있다. 책을 내는 일도 이 과정에 포함되는 일이다. 종이책을 내든 전자책을 내든 교회 출판사가 책을 낸다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 출판사에서 내는 책이 꼭 교회적이거나 그리스도교적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은 교회보다, 그리스도교보다 더 크신 분이지 않겠는가.

교회는 교회를 비판하는 서적도 자유롭게 발간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인가를 불허한 책들도 원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여유를 좀 주었으면 좋겠다. 신앙인들의 신앙감각과 집단지성을 신뢰하며 과감히 문을 열고 복음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벗이요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심지어 지극히 중요한 안식일마저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종이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여전히 종이책만의 영역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이책은 의외로 멀티미디어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현재의 전자책이 담보하지 못하는 예술성과 편리함을 품을 수 있다. 전자책 리더기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전자책은 편리하고 실용적이며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종이책을 읽으며 특별한 구절을 만났을 때 책장을 덮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특별한 시공간을 전자책에서 만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종이책이 지닌 비가시적인 부분, 곧 촉감, 여백, 종합적 시선, 무게감, 행간, 상상력,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기, 때로는 책에 담긴 향기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종이책에서 전자책보다 더욱 많은 멀티미디어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종이책은 계속 살아남을지 모른다. 종이책이라는 물질에 담긴 비가시성이야말로 종이책의 생명을 다른 방식으로 연장해 줄지 모른다. 우리는 눈으로만 책이나 세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과 직관과 상상과 이성을 동원해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읽는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읽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읽는 일은 ‘책’을 넘어서는 행위다. 우리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자연의 섭리와 현상을 읽으며, 때로는 사랑하는 님의 눈빛과 의중을 읽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꼭 성서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종이책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종이책 시대의 황혼기에 종이책을 통해서 하느님을 읽고, 예수를 읽고, 민중을 읽고, 해방을 읽고, 자신을 읽는 독자들이 늘어가기를 바란다.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에서 10여 년간 일했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한다.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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