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다른 이들의 고통으로 이끕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4월24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4일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를 주제로 묵상했다. 이날 하느님 자비 주일 미사는 코로나 팬데믹 후 처음으로 베드로 대성당에서 많은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리노 피시첼라 대주교가 집전하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론했다. 강론 내용.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자비의 말씀이 기쁨을 주고, 다음에는 용서를 베풀고, 마침내 모든 어려움에서 위로를 준다는 것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처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기쁨에 가득 찼다고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3일 후까지 두려움에 웅크리면서 주님을 버리고 비극적 순간에 주님을 부인한 죄책감과 실패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수치심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의 인사’로 그들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다시 예수님께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평소와 같은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을 소생시키고, 잃어버린 평화로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완전히 값없는 용서로 깨끗한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같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자신의 결점을 뚫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의 기쁨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고 일으키게 하는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자비’를 분배하기 위한 ‘화해의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과 날마다 교회에서는 자신을 어떤 힘의 소유자가 아니라 자비의 통로로 여기고 자기가 먼저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붓는 자비로운 고해신부의 겸손한 선하심을 통해 이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교회 전체를 ‘자비를 베푸는 공동체, 모든 인류를 위한 화해의 표징이자 도구’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삶의 모든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평화의 인사’를 하신 것은 토마스가 예수님의 부활에 불신을 표현한 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토마스를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예수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토마스는 예수님의 친절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불신자에서 신자’가 되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하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토마스의 이야기와 불신앙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비의 마음과 따뜻한 표징’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상처를 보여 주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이러한 하느님 자비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열어 줍니다. 또한 하느님 자비에 대한 경험은 우리들이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고통의 상황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더 나쁜 일을 묵묵히 견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의 상처를 돌보고 그 위에 자비의 향유를 부으면 상처받은 이웃이 우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위로받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변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 하느님 자비의 주일을 자신의 주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시련에 짓눌린 모든 이에게서 하느님은 자비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두려움과 불신앙을 몰아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으시오”

교종, 4월24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부활 삼종 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4일 낮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하느님 자비의 주일’ 부활 삼종 기도 가르침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물기 위해 다시 오시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찾고 부르기를 기다리실 뿐이며, 우리가 두려움과 불신앙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는 순례객 수천 명과 이번 주말 로마에 초청된 ‘자비의 선교사’ 수천 명이 함께 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요한 20,19-31)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사도 토마스와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제자들 중 하나인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고, 8일 후 두 번째 나타나심을 직접 목격할 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토마스의 태도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토마스가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보기를 원하거나 그분의 임재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시를 구하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토마스의 이야기는 ‘주님은 결코 의심하지 않고 항상 확고한 믿음을 과시하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의심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모험’은 위안과 열정의 순간이든, 피곤함과 의심의 순간이든 상관없이 ‘빛과 그림자’가 특징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삶과 믿음의 위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토마스의 위기’를 보여 줍니다. 신앙생활의 건전한 위기는 우리를 겸손하게 할 수 있으며, 토마스가 주님의 상처를 만지고 그분의 사랑을 새롭게 경험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교만하고 오만하게 만드는 강하지만 주제넘은 믿음보다는 불완전하지만 항상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겸손한 믿음이 더 낫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두 번 나타나신 일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처음 나타나신 8일 후 다시 한번 나타남으로써 우리의 의심과 연약함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문이 잠긴 상태에서도 우리의 두려움과 의심을 없애기 위해 다시 오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지지하신 그분 사랑의 표징인 그분 상처를 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피곤함과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머물기 위해 다시 오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이 도우실 수 있도록 우리의 의심과 불신은 그분의 인내와 자비로운 사랑으로 극복됩니다. 우리는 피곤할 때 예수님을 찾고, 그분께 돌아가, 용서받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약속합시다. 그래야 우리도 타인의 상처에 편견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연민이 될 수 있습니다. 자비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여정에 동행해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교종, 우크라이나 부활절 휴전 촉구와 카메룬 평화 기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부활 삼종 기도를 마치면서 오늘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방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이 부활 대축일을 축하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 부활절 휴전을 촉구했다. 교종은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의 부활 대축일을 축하하고 평화에 깊은 상처를 준 전쟁의 잔학성을 한탄하면서 “주님께서 전쟁의 야만으로 상처받은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교종은 이날은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두 달이 되는 날로 전쟁이 더욱 폭력적으로 발전했다고 개탄했다. 교종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거룩하고 엄숙한 부활시기에 우리는 부활의 종소리보다 무기의 치명적인 소리를 듣는 것이 슬픕니다. 폭력이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휴전은 ‘평화에 대한 열망의 가장 작지만 가장 가시적인 신호’라며 즉각적 휴전을 거듭 촉구했다. 교종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공격을 즉시 중단하시오. 부활절에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 전쟁을 즉각 멈추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는 가능하다’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도 갈등의 확대가 아닌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와는 별도로 아프리카의 카메룬을 성모 마리아에게 재봉헌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카메룬 신자들의 성지 순례를 격려했다. 교종은 “오늘 카메룬의 주교들과 신자들은 카메론 국가를 하느님의 어머니께 재봉헌하고 보호에 맡기기 위해 마리엔베르그의 마리아 성지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카메룬의 가톨릭 신자들은 지난 5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나라에 평화가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이 사랑하는 나라에 참되고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속히 주실 수 있도록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에 동참할 것을 당부합니다”라고 기도의 동참을 당부했다.

 

“우리는 우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교종, ‘성모님 눈물의 순례 성지 공동체 회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3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이탈리아 북부 트레빌리오의 ‘성모님 눈물의 순례 성지 공동체’(Comunità Pastorale di Nostra Signora delle Lacrime) 회원 2800명을 접견하고 연설하면서, 마리아께서는 500년 전 눈물로 하느님의 자비를 보이셨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인해 ‘마음으로 울’ 능력을 상실했다고 안타까워했다. 16세기에 건립한 성모 순례 성지는 1522년 2월28일 프랑스 군으로부터 함락 위기에 빠진 도시를 눈물로 구한 동정녀 마리아의 기적 500주년을 기념하는 곳이다. 연설 내용.

우리는 우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인들은 눈물이 선물, 때로는 은혜, 회개의 표시, 마음의 해방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모 마리아의 눈물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우리들의 비참함에 대한 ‘예수님의 눈물’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이신 성모 마리아의 눈물은 하느님 긍휼의 표시이자 자비의 표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죄와 인류를 괴롭히는 악, 특히 어린아이들, 무고한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통의 표징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마리아께서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인류를 파괴하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해 울고 계십니다. 전쟁은 패자와 승자 모두의 패배임입니다. 진실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관련된 모든 민족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패배자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보기 위해 피상적인 뉴스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파괴합니다. 전쟁은 모든 사람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평화와 자비의 어머니이신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했습니다. 이는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평화의 어머니이시며 또한 하느님 자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티 없으신 성심께 우리의 간구를 맡겼으며, 평화의 여왕이신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평화를 위해 중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울음은 ‘훌륭하신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에 감동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차례나 모른다고 부인한 후 회개했을 때처럼 이를 환영하며 기뻐하는 자와 함께 나누고 함께 우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께 우리가 보는 것, 즉, 전쟁뿐 아니라 우리가 보는 황폐함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용도에 대해 ‘울음의 은총’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울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버려지는 노인들과 태어나기도 전에 버려지는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 등 버려지는 비극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시대의 비참함은 우리를 울게 해야 하고, 우리는 마땅히 울어야 합니다. ‘눈물의 성모 공동체 여러분은 마리아의 모범에서 영감을 받아 ‘부드러움, 동정심, 친밀감에 대한 사목적 보살핌을 수행하고 있는 공동체 정신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항상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계속하여 사랑 위에 세워진 사회를 건설하고 형제적 관계와 타인에 대한 인간적 대우가 토대를 이루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격려합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강조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그들의 삶을 위해 최선을 추구하도록 움직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우정과 모두에게 열려 있는 형제애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와 선교를 통해 선과 진리의 근원에서 이끌어내고,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긍정적인 시각과 사랑, 희망, 연민, 부드러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힘을 찾기를 바랍니다. 또한 희망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말과 행동으로 인류애 가득한 메시지를 전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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