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 정치, 혐오와 차별이 가득찬 판도라 상자가 열리다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인종주의적 선거전략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마침내 끝이 났다. 이번 선거 캠페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리겠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여성과 이주민을 향한 혐오차별의 선거전략이 한국 정치 캠페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시도된 선거전략이다. 특히 윤석열 후보는 2022년 1월 30일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국민이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 해결하겠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외국인’, 특히 ‘중국인’을 지목하면서 무분별한 피부양자 등록을 통해 과도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린다고 비난했다. 외국인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했고 국민은 ‘불공정과 허탈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이주민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전했다.

당시 윤석열 후보의 글은 즉각 여당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명백한 혐오차별 발언이라며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20-30대 청년층에 만연한 반중 감정을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혐오차별의 수사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국민의힘의 선거전략이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인종주의적 선거전략이라는 것이다. 비록 윤석열 후보의 외국인 건강보험 발언은 단 한 차례에 그쳤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대선에서 선거전략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정치에서 매우 위험한 독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30일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게시글. (이미지 출처 = 윤석열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지난 1월 30일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게시글. (이미지 출처 = 윤석열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민주 정치의 독, 진보적 의제를 갉아먹는 개 호루라기 정치

윤석열 후보의 외국인 건강보험 발언은 ‘개 호루라기 정치’(Dog Whistle Politics)로 일컬어지는 미국 인종주의 정치와 밀접하게 닮아 있다. 이를 분석한 이언 로페즈에 따르면, 미국의 선거 정치에서 인종주의 수사는 백인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주요한 선거전략 가운데 하나다. 보수주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선거 때마다 동원되는 인종주의 수사들은 마치 개 호루라기, 즉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개에게만 인식이 되는 신호와 같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혐오 발언은 공개적으로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백인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사소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백인들이 알아채고 반응할 수 있는 말과 표현을 사용해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자극한다.

개 호루라기는 대중의 비난을 피해 백인을 선거에서 결집시키고 보수주의 정당의 승리를 끌어내는 선거전략으로 사용되어 왔다.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법과 질서’(Law & Order)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 말은 단순히 사회 안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1968년 리처드 닉슨이 당시 대선에서 흑인민권운동을 진압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강령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법과 질서의 호루라기를 불면서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을 결집시켰던 것이다.

외국인 건강보험 무임승차의 글에서 윤석열 후보는 대상을 외국인 혹은 중국인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가 비난하는 대상은 명백하게 재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지칭하고 있다. 그와 국민의힘은 중국인이라는 말을 통해 다소 사소해 보이는 반중감정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주민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역시 명료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주민을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장본인으로 취급하면서 마치 한국인에게 쓰여야 할 재정을 이주민이 뺏어가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주민을 가해자로, 한국인을 피해자로 취급하면서 이주민에게 적대적인 인종주의적 감정을 소환하는 것이다.

혐오와 인종주의 정치의 시작, 시민이 막아내야 한다

로페즈는 개 호루라기 정치가 민주주의 체제에 위험한 본질적인 이유는 인종주의적 정치가 진보적 의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개 호루라기 정치전략은 유색인종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전체를 위한 복지제도를 공격한다. 이를 통해, 인종주의적 정치 수사는 소수자뿐만 아니라 백인 중산층과 노동 계층에게도 해가 된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76년과 1980년 선거 캠페인에서 복지정책을 비판하면서 허술한 복지 프로그램을 악용해 일하지 않고 복지 수당을 착복하는 '복지 여왕'(Welfare Queen)을 반복적으로 상기시켰다. 그는 한 번도 인종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백인들은 그가 흑인 여성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인종주의적 메시지를 통해 레이건은 백인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고 취임 후 빈곤층에 대한 복지를 대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었다.

윤석열의 선거전략 역시 인종주의적 국민 감정을 소환하기 위해 보편적 사회복지 정책을 비난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인종주의 정치 수사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그러나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이주민은 내국인보다 소득 대비 훨씬 많은 보험료를 지불하고 적게 이용한다. 이주민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0년 약 5000억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사회 소외 계층의 폭넓은 보장을 위해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의 인종주의적 공격은 결국 진보적 복지 의제에 대한 당위성을 약화시켜 내국인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후퇴시킬 것이다.

여성혐오와 함께 인종주의적 선거전략은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사회분열적 정치 수단이다. 이는 단순히 이주민 혐오 감정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한국 정치의 인종주의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치 선전에 편승해 이주민을 향한 혐오와 차별에 계속해서 찬성한다면 그 해악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우리 시민의 손으로 인종주의 정치의 시작을 막아야 한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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