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2026년 동계 올림픽은 알프스 가까운 이탈리아 밀라노와 근처 몇 도시에서 개최한다는데, 4년 뒤에 말과 탈이 줄어들까? 코로나19 상황에 치른 올림픽에서 중국은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했을 것 같은데,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언론의 부정적 반응과 달리, 시진핑 3기로 이어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는 게 아닌가.

베이징 올림픽을 평창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두 대회 모두 참여한 해외 선수의 소감을 예로 든 우리 유튜버의 해석인데, 자화자찬이 가미되었으리라. 우리 선수단의 파벌과 불화 소식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개최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 사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작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도 넘은 편파 판정에 화가 치밀었다. 우리나라의 이번 성과는 어떤가? 평창보다 양해할 만한가?

금메달 수가 예정보다 대폭 줄어든 작년 도쿄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메달의 색깔이나 숫자보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완연한 거다. 이번 대회도 비슷해 보이므로 베이징 올림픽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방송과 광고는 메달을 걸고 온 인물을 잠깐 주목하겠지만, 시민은 최선을 다한 선수,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선수의 자세에 박수를 보낼 것 같다.

사고도 있었다. 쇼트트랙 도중 넘어진 우리 선수가 뒤에서 달리던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우리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사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를 겨루는 얼음판과 설상 경기는 워낙 빨라 위험해 보였다. 낯선 이름의 썰매 경기는 시속 100킬로미터 넘나드는 속도로 굴곡진 얼음판을 내려간다. 현기증이 돌 거 같았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면 엄두 낼 수 없는 종목에서 공정한 경쟁에 목숨을 거는 듯했다. 막을 내렸다. 평창이 그랬듯, 베이징도 일반인은 엄두 낼 수 없는 경기장들을 없애거나 놀릴까?

대한민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 차민규 선수와 함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nbsp; 올림픽 트위터)<br>
대한민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 차민규 선수와 함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참여한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올림픽 트위터)

올림픽 창시에 공헌한 쿠베르탱 남작은 1894년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올림픽 정신을 내놓았다. 그는 최선 다하자고 격려한 것일 텐데, 요즘은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사이의 경쟁이 격해지면서 선수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승리했다는 선수의 자부심은 초라해지면서 부작용이 속출한다. 부와 명예를 노리는 선수는 물론 국가까지 노골적으로 경쟁에 가담하면서 승리를 위한 격렬함은 무자비해졌다. 모든 종목과 선수가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번 올림픽은 그 정도가 심했다.

김연아 선수가 3바퀴 돌았을 때 감탄했는데, 이번에 우리 선수가 3바퀴 반을 돌아 탄복해야 했다. 한데 이번에 러시아에서 온 선수는 4바퀴를 돌았다. 은메달을 땄는데, 그 선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압도적 기량으로 금메달을 기대한 선수는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고, 긴장이 풀렸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승리 압박이 얼마나 심했으면 금지 약물을 끌어들였을까? 어린 선수의 의지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게 승리하면 뿌듯할까? 실패하면 인생을 포기해야 하기라도 하는 걸까?

메달 색깔에 따라 포상에 차이가 있는 올림픽만이 아니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스포츠가 대개 그렇지만, 스포츠만이 아니다. 승리하면 포상이 두둑한 분야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공연 분야가 그렇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정을 내세우는 경쟁 대부분이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시가 특히 그렇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분명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가! 죄를 밝혀내 명성을 얻고 죄를 없애 줘 부를 창출한다는 검사만이 아니다. 사기꾼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입건된다니, 변호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걸까?

어떤 젊은 정치인은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세웠다. 섬뜩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에서 거푸 승리했기에 그 자리에 앉은 걸까? 경쟁이 과연 공정할 수 있는가? 보장되는 부와 명예가 클수록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경쟁 이후는 물론이고 이전에도 거의 공정하지 않다. 도핑 검사가 없으면 운동선수의 금지 약물은 들키지 않는데,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분야, 심지어 과학도, 들키지 않는 불공정은 진정 없을까? 공정을 가장하지만, 진입 장벽은 얼마나 많고 높은가. 사실, ‘공정한 경쟁’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에 가깝다.

대통령 선거 운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모순된 약속을 서슴없이 내세우는 후보도 있는데, 어떤 후보의 선거 운동원인지 모르는데 번잡한 교차로를 점거했다.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장인가? 되새기기 싫은 경험이 갑자기 소환된다. 후보와 측근이 은밀하고 근사한 보상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질 내일을 미래세대에 떠넘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미면서 진정성 소음은 일단 피하고 싶다. 눈을 감아도 소용없으니 쌀쌀한 날씨에 길을 돌아선다.

박병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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