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획 2] 부동산 공약 뒤로 밀린 주거권 - 주거빈곤을 중심으로

20대 대선을 30여 일 앞두고 각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 부적절한 발언, 유권자 편 가르기 등이 이어지면서 이번 선거가 구체 정책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시급한 목소리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각 분야 대표 활동가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한국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번 대선과 차기 정부가 꼭 챙겨야 할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기후위기와 농업, 노동과 인권, 주거 안정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들어봤습니다.

[대선 기획 1]  인간 존엄성을 말하는 대선 후보는 누구? - 노동과 인권 - 불평등과 생명안전,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집값 폭등,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특정 민간 업체만 막대한 이익을 본 대장동 개발사업 등 부동산을 고리로 부의 양극은 더욱 벌어졌다.

부동산으로 돈을 얼마나 늘릴까 고심하는 이들의 다른 한편에는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집에 살거나 그마저도 없는 주거 빈곤층이 있다. ‘집걱정끝장! 대선주거권 네트워크’에 따르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현재 활용 가능한 최신 자료) 상 한국의 주거 빈곤 가구 수는 약 228만 가구에 달한다.

대선 후보들은 부의 불평등 완화, 집값 안정,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개발이익 환수, 부동산 세제 개편, 공공주택 공급 등 방안을 내놓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는 공약인가, 더불어 시급한 주거 빈곤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언급이나 선언은 어디에 있는가란 지적이 나온다.

집값이 떨어진다 해도, 비주택과 세입자 가구 등 주거 취약계층이 내 집을 갖기란 거의 어렵다. ©김수나 기자
집값이 떨어진다 해도, 비주택과 세입자 가구 등 주거 취약계층이 내 집을 갖기란 거의 어렵다. ©김수나 기자

현실성 없는 주택 대량 공급 공약만 무성

‘불평등끝장 2022대선 유권자네트워크’(이하 불평등끝장넷)가 지난 1월 13일 발표한 대통령 후보 공개질의 결과를 보면, 대답을 거부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뺀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심상정(정의당), 안철수(국민의당) 후보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린다는 기조다.

이재명, 심상정 후보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5년 내 100만 호 추가 공급(2019년, 110만 호), 안철수 후보는 60만 호 이상 공급에 찬성했다. 공공택지 민간 매각 금지 및 공공택지 100퍼센트 공공주택 공급(장기공공임대 50퍼센트 이상)안은 심상정, 안철수 후보가 찬성했고, 이재명 후보는 공공택지의 80퍼센트 이상 공급안에 찬성했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금호1가동 선교본당 주임)는 “근거 없이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을 부풀릴 것이 아니라, 거기에 누가 들어가 살 것인지 그 사람 입장에서 봐야 한다”면서 “지금 공약들은 수취인 없는 편지 같다. 정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호 위원장(빈곤사회연대 정책위원회)은 “부동산 세제 완화와 주택 대량 공급 중심인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의 주거공약이 오히려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방해하고, 투기 우려가 높은 부자감세 공약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주택 311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이재명 후보나 25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문재인 정부의 집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 공급 부족이라고 잘못 진단한 것에서 나온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집값 폭등은 금리 인하 등의 영향이 더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전국적으로 그전보다 많은 주택이 공급됐고,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서울의 주택 인허가 물량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보다 올랐다. 그런데도 집값 폭등을 수요대비 공급 부족으로 진단하고 주택 대량 공급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투기적 가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공약이다.

불평등끝장넷은 “이 후보의 공약인 기본주택은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에 중산층을 포함하는 만큼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물량이 줄거나 큰 폭으로 늘지 않을 것이라 우려되고, 안 후보의 250만 호 공급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구체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재개발을 앞두고 입주민이 퇴거한 뒤 폐쇄된 양동 쪽방촌 건물 모습. ⓒ김수나 기자<br>
2021년 재개발을 앞두고 입주민이 퇴거한 뒤 폐쇄된 양동 쪽방촌 건물 모습. ⓒ김수나 기자

주거복지 더 확대돼야 하는데 주거권 공약은 후순위

이원호 위원장은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 공약이 있을 뿐 주거권에 대한 정책 공약이 제시되지 않거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값 안정이 서민 주거 안정에 중요하지만 집값이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떨어진다 해도, 무주택 가구와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에 사는 취약계층이 내 집을 갖기란 거의 어렵고, 월세 가구는 무주택 가구인 세입자 가구의 60퍼센트에 이른다는 것이다.

주거권을 중심으로 한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주택 자가 소유 촉진을 위한 세제 개편이나 공급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구체 정책을 제시했다.

주거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주거급여 선정 기준의 확대 ▲주거급여의 기준 임대료 현실화와 주거품질 상향 ▲최저주거기준 개선 ▲비주택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상향 지원 정책 강화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의 계약갱신청구권 및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강화 ▲분양 중심이 아닌 장기공공임대주택 중심의 주택 공급 등이 필요하다.

현재 주거급여 대상 가구를 선정하는 소득 기준이 기준 중위소득 46퍼센트 이하인데, 이는 노동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도 포함되지 못하므로 기준 중위소득 60퍼센트 이하로 올려 대상 가구를 넓혀야 한다.

실제 임대료에 턱없이 모자라는 주거급여의 기준 임대료 역시 현실에 맞추고, 주거 품질을 높여 주거급여 수급자가 열악한 거처에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11년 개정, 공포된 뒤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최저주거기준'도 개선돼야 한다.

서울의 한 주상복합 건물. 현재 대선에서는 “부동산 공약은 있지만 주거권 공약은 없거나 후순위로 밀린 것"이 문제다. ⓒ김수나 기자<br>
서울의 한 주상복합 건물. 현재 대선에서는 “부동산 공약은 있지만 주거권 공약은 없거나 후순위로 밀린 것"이 문제다. ⓒ김수나 기자

주임법에서는 임차인의 갱신 요구권 행사 횟수를 늘리고, 임대인의 갱신거절 사유 및 행사 방법 개선, 신규 임대차에 인상률 상한제 적용 등이 필요하다.

현재는 임차인이 원하면 1번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거주 기간은 2년 보장되지만, 임대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 있다. 또 계약 갱신 때에는 임대료를 5퍼센트 이내로 올리도록 하는 전월세상한제가 적용된다. 그러나 전월세상한제는 신규 임대차에는 적용되지 않아, 2020년 주임법 개정 뒤 임대료 상승 압력이 신규 임대차에 집중되고 있다.

한편 이원호 위원장은 쪽방촌 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선이주-선순환’ 개발방식의 공공주택사업도 확대, 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약계층 공공임대주택 물량이 부족하고 동자동 쪽방촌처럼 소유주들의 민간개발 주장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면서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취약계층 주거 상향 정책을 강화하고,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을 중단 없이 추진, 이를 전국 쪽방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先)이주 선(善)순환’ 개발 방식에서는 쪽방촌이 공공주택으로 개발되더라도 주민들이 기존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정착할 수 있다. 공공주택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인근 지역에 주민을 위한 임시 이주공간이 마련되고, 기존의 돌봄, 자활 등 복지 서비스도 지속 제공된다. 공공주택 건설이 끝나면 쪽방 주민들은 원래 살던 곳에 재정착할 수 있다. 

주거 빈곤에 놓인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홈리스행동 건물 마당에 걸린 현수막. ⓒ김수나 기자
주거 빈곤에 놓인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홈리스행동 건물 마당에 걸린 현수막. ⓒ김수나 기자

“사람을 만나는 대선 돼야”

나승구 신부는 “주거빈곤 정책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나 신부는 “빈곤 문제는 개별 복지냐 통합 복지냐를 떠나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빈곤한 이들 중심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개 후보들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공약하기보다는 그로 해서 얼마만큼 자신의 주가가 올라가는가,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정책 접근을 하기 때문에 인권 중심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빈곤한 독거 중장년이 모여드는 서울 대학촌이나 사근동처럼 이들이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도우면 이들이 잘 살 수 있을까 길게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사람은 정책으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 없는 대선인 것 같아 아쉽다. 사람을 만나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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