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는 저개발국 인력 착취의 수단일 뿐이다

한 이주노동자의 죽음

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속헹은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에서 영하 18도 날씨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그는 제대로 된 거주시설이 아닌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임시거주시설에서 난방 장치마저 고장난 채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속헹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일터를 바꿀 생각은 하지 못했고, 타국의 추위 속에서 속절없이 죽음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단순기능직 이주노동자의 일터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10년 전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린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헌재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 내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필요하며 안정적으로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주민 단체들은 헌법재판소가 이주민의 노동권을 부정하고 사실상 강제노동을 허가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우리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도입을 규정하는 이민정책은 전문 인력과 단순기능 인력을 구분하고, 전문 인력만을 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해외 전문 인력의 경우는 정착과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단순기능 인력은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라는 미명 하에 내국인이 부족한 업종에 한해서 도입을 허용하고 정착을 불허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문 인력과 비전문 인력의 구분은 사실상 출신국에 따른 차별적 이민정책에 가깝다.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버팀목으로 전락한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는 2004년부터 시행된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전문 취업 인력으로 불리우는 단순기능 인력의 도입과 관리를 규정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는 구직자가 일터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에게 외국인의 고용을 허가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외국인이 내국인과 노동시장에서 자유로이 경쟁하는 것을 차단하고 기업의 효율적인 인력공급을 위한 목적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은 고용허가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이동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동의 없이 변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주에게 전적으로 종속된 이주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은 내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할까? 외국인 인력을 배치할 직종과 인력의 규모는 매년 정부의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국내 경제상황을 다각도에서 검토하여 정한다. 이주노동자가 일할 업종과 그 수는 정부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자유로이 옮겨 다닌다고 해서 내국인의 일자리를 침해할 우려는 거의 없다. 이는 비전문 취업인력 정책의 또 다른 축인 방문취업제에서 증명된다. 재외동포의 비전문취업 이주를 규정하는 방문취업제도는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을 36개 단순노무 직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사업장 변경 제한의 규정은 없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방문취업제로 인해 내국인의 일자리가 침해받았다는 평가는 없다.

이제 우리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이주노동자와 공존을 상상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효율적인 고용관리를 위한 것인가? 오히려 고용허가제가 미등록자를 양산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부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을 악용하여 저임금, 차별, 폭언, 폭행, 심지어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부당대우에 대해 이주노동자가 귀국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법체류’뿐이다. 2019년 한 해 비전문취업 노동자의 작업장 이탈비율이 방문취업 노동자의 7배에 달한다는 통계는 고용허가제가 고용관리에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이미 국내에는 약 40만 명의 미등록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내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단순노무 업종은 임금이 낮고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나아가 위험하고 유해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일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유해환경을 피해 일터를 옮길 수 없다. 반면 사업주는 노동자와 작업장 안전에 대한 투자 없이도 이주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운용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이주노동자의 높은 산업재해율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8-20년 산업재해 통계에 의하면 이주노동자의 산재비율은 내국인보다 2배가량 높았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착취의 버팀목이 되었다.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으로 불거진 국내 이주노동인력 정책은 전반적인 제고가 필요하다. 우리의 이민정책은 내국인을 대신하여 저개발 국가의 국민을 저임금의 위험한 일자리에 갖다 쓰고 돌려보내고, 선진국의 전문 인력만을 수용하겠다는 차별적인 기조 위에 마련되었다. 하지만 정작 선진국의 전문 인력은 거의 오지 않았고 저개발국 출신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위험과 차별을 감내하며 우리의 경제를 지탱해 왔다. 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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