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ANEWS의 기사.(윌리엄 그림)

약 20년 전 나는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지 편집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듣자마자 엄청 크게 웃어댔다. 숨을 돌리고 나서야 나는 내게 그 제안을 전달하러 온 사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얼굴을 좀 봐요!” 일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일본어 신문을 맡아 달라니, 참으로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 뒤 나는 주교회의에서 그 주간지 담당 주교를 만나서 만약 편집장 자리를 맡으면 일반 신문 편집장이 갖는 편집의 자유와 권한 등을 나도 갖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이단 같은 보도를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자유를 가집니다. 우리를 믿어 보세요.”

나는 그 자리를 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말을 시험할 기회가 왔다.

한 주교가 소송을 당했는데, 그 사건은 그 어떤 가톨릭 매체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한 일반 신문과 한 불교 신문에서만 다뤘다. 그가 맡고 있는 교구에서 그 일을 알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 침묵하라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 주교가 재판에서 패소하자 나는 우리 기자들에게 이 일은 “뉴스”인데 신자들에게 알려진 적이 없으니, 이 사건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의 기사가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주저했고, 나는 그들에게 이 기사를 내서 문제가 되면 모든 책임은 나 혼자 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기사는 1면에 나갔다.

기사가 보도된 날, 주교들을 믿어 보라고 말했던 그 주교는 마침 도쿄에 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구로 돌아가기 전에 주교회의에 근무하는 신부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나도 당연히 참석했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오자, 그 주교는 내 이름을 불렀다. 즉시 모든 사람이 수저와 커피 잔을 내려놓았고, 초대된 사제들은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당신 전임자(그가 속한 수도회에서 내는 잡지 출신이었다)였다면 그 기사를 안 냈을 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내 전임자는 신문을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러기를(신문을 내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모두는 디저트와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이틀 뒤, 그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그 주교에게서 소포 하나가 왔다. 그 사건에 관해 그가 쓴 설명과 관련 서류들이 담겨 있었는데, 메모도 하나 있었다. 자신은 그 판결에 항소하지 않을 것이며, 추가 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서류들을 자유로이 이용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내 어머니는 언젠가 교구 신문에서 가톨릭 언론과 한 주교 사이에 (내 이야기와) 완전 다른 종류의 관계가 있음을 보고 불평한 적이 있었다. “1면에서 11면까지 보는데 우리 주교님 사진이 9번이나 나왔어!” 그 사진들 가운데 소송에 관한 기사에 쓰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9월 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밀란 라스티슬라프 스테파니크 국제공항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알이탈리아 항공기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br>
9월 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밀란 라스티슬라프 스테파니크 국제공항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알이탈리아 항공기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두 언론인에게 국가원수가 아닌 평신도에게 주는 최대의 영예인 교황 비오 9세 훈장을 주며 그들이 지난 40년간 바티칸을 취재해 온 공로를 기렸다. 두 기자는 교회 관련 언론 소속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회 관련 잘못된 것”을 지적해내는 모든 언론인들에게 감사했다.

그런 봉사를 수행해 온 것은 거의 별 예외 없이 교회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세속 언론매체들이었다.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와, 책임질 자리에 있는 이들에 의한 은폐는 세속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조만간에 다른 이야기들이 더 나오겠지만, 아마도 교회 관련 매체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독립적인 교회 관련 뉴스 매체가 그런 기사를 내려 할 때, “교회를 보호한다”는 이들이 그런 매체를 공격해 왔다. 실상 그런 공격은 자기 방어인 경우가 아닌 경우보다 더 많았다. 독립적이지 않은 뉴스원들은 주교들 사진을 인쇄한다.

가톨릭 뉴스원들은 객관적이고, 전문적이며, 솔직하고 정직한 경우가 드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인들을 칭찬했지만,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진정한 저널리즘을 원하지 않는다.

2000년 전, 아직 지금의 저널리즘 같은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믿는 이들 사이에서, 믿는 이들에게 반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위선을 지적했다. 오늘날, 그 일은 이제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사명의 한 부분이다.

오늘날 교회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교회의 커뮤니케이션은 그저 홍보활동일 뿐이며, 교회와 교회의 사명은 고통을 겪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숨겨 있던 부패와 추문이 어쩔 수 없이 타인에 의해 폭로될 때 곤혹스러워진다. 높은 수준을 기대받던 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추문이 된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교회 안에서 봉사의 삶을 선택했을지 모를 이상주의자들이 진실보다 은폐를 더 중히 여기는 조직에 등을 돌린다. 혐오를 느끼며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에 비하면, 교회 관리자들은 어떻게 심지어 사실을 보도할 때조차(또는 특별히) 그것을 나쁜 언론이라 주장할 수 있는가?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 즉 복음에 대한 신뢰성의 상실이다. 교회는 정직하고 객관적이며 전문적인 뉴스원이 아주 절실히 필요하며, 그런 뉴스원을 갖지 못하면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데 쓸모없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정직성은 때로는 당혹스럽겠지만, 우리가 진실에 충실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 신뢰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는 증표가 될 것이다.

일본의 주교들은 교회의 온전한 그림을 보여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백성과 복음에 드리는 봉사임을 알았다. 다른 교회의 관리자들도 일본 주교들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 담긴 관점은 필자의 의견이며 <아시아가톨릭뉴스> 편집진의 공식 입장과 반드시 같지는 않다.)

(윌리엄 그림은 미국 뉴욕 출신으로, 1973년부터 일본, 홍콩, 캄보디아에서 봉사해 온 메리놀회 선교사이자 사제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honest-evangelization-needs-honest-journalism/95056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