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성사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2-3년 전쯤 한국을 찾은 미국 여성사제에 관한 기사를 보고,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유럽 여성사제 강연회에 참석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도대체 남성사제로 무엇이 부족하기에 여성사제 얘기가 자꾸 거론되는 것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여성사제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새로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중세시대였던 12세기에도 여성사제 문제가 거론되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살아계실 때는 저명한 성서신학자들을 모아놓고 성경 안에서 여성사제가 왜 불가한가 이유를 찾아내게 하였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적확하고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2008년 5월 30일, 로마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여성사제 수품을 준 사람이나 수품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 모두 자동 파문이라는 가차 없는 어조의 교령을 내린 것일까?

대한민국 서울 근교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줄곧 서울에서 40년 넘게 가톨릭신자로 살아온 나에게, 아직까지 한국 교회에서 여성이 사제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거나 사제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는 사제를 낯선 곳에서라도 만나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가가서 인사하고 무언가 챙겨줄 것을 찾아 재빠르게 움직이는, 어쩌면 조금 오버하는 여성신자들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어찌 언감생심 스스로 사제가 되겠다고 나서는 여성이 이 한국 땅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한국교회 현실에서 왜 나에게 여성사제와 여성리더십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것일까?

2006년 11월 4일 워싱턴 내셔널 커시드럴 영국성공회 주임사제 취임식의 새 (여성) 주임사제 캐더린 제퍼츠 스코리(사진출처-연합통신
한국교회에서 사제로 살면서 교계제도와 교회 현실을 비판하는 소수의 사제를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분들은 한평생 충실한 사제로 살아오셨고, 제 살을 깎는 심정으로 교회와 사제가 무사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밝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신다. 전반적으로 그분들은 한국 교회의 경직된 가부장적 체제와 권위주의를 비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수장으로 우러름 받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정말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 섬기고 치유하며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니, 그분을 따르는 교회 지도자들은 마땅히 그분이 보여주신 섬기고 내어주는 삶을 살기 위해 늘 노력하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시는 것이다.

나는 이분들 말씀을 통해 무릇 사제의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결코 녹록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고 참된 신앙생활의 부담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러면서 역사의 예수가 보여주신 섬기고 치유해주며 못난이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일은 여성도 충분히, 아니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자주 더 많이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나처럼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다소 부족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성과 모성성을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강요당하면서, 대다수 여성들은 싫든 좋든 상대를 배려하고 따뜻한 미소로 반기며 살지 않을 수가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게다가 21세기에 들어서자, 삭막해지고 피폐해진 지구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성을 더욱더 지향하고 그리워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유럽 가톨릭교회에서는 진작 여성사제가 등장하여 남성사제가 찾아가기 어려웠던 정말 가난하고 제도교회에서 완전 따돌림받아온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공회에서도 올해 드디어 첫 여성사제가 배출되었다. 성공회 남성사제들은 여성사제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수녀였던 이 여성사제는 남성사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며 더 친근하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사제 수품을 주는 사람이든(분명 제도교회에서 수품받은 주교일 것이다) 여성사제 수품을 받으려 하는 이든(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사욕 없이 헌신하는 여성일 것이다) 자동 파문시키겠다는 교령은 이 세상 인구 절반에 해당하고, 전체 그리스도인 중 70%가 넘는 여성에게 일말의 가능성조차 배제한, 실망스러운 공표이다. 또 여성사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편교회와 한국교회의 편견은 하느님 백성의 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망나니같이 살다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맨발로 달려가 반기는 아버지 같은 남성사제와 제 새끼를 품어 안고 젖을 먹이며 사랑으로 키워내는 어머니 같은 여성사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하느님 백성을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가는 미래 교회 모습을 꿈꾸어본다. 이미 우리 가까이 성공회가 이 길에 들어섰으니, 우리 가톨릭교회도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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