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형숙 감독과 다큐영화 <경계도시 2>를 말하다

▲ 구속을 앞두고 대책을 논의하며 고뇌하고 있는 송두율 교수. (사진제공/시네마 달)

송두율 교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7년 만에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여 양심적인 학자에서 '거물간첩'으로 몰렸던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긴장된 열흘. 그리고 그후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사회의 속살을 증언하는 영화가 개봉된다. <경계도시2>. 2002년에 <경계도시1>을 개봉하고, 7년만에 다시 <경계도시2>를 내놓은 홍형숙 감독은 <두밀리 -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본명선언>(1998) 등 독립다큐멘타리를 꾸준히 연출해 왔는데, 이번 작품은 그가 <경계도시1>에서 촬영한 송두율 교수가 드디어 37년만에 고국땅을 밟으면서 겪은 고뇌와 울분, 좌절과 희망의 한끝을 보여주고 있다.

감독과 인터뷰를 나누기 전에, '영원한 경계인'이라고 부르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송두율 교수는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하버마스 교수를 통해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1982년에 사회학 분야 교수 자격을 얻었으며, 그동안 뮌스터대학, 베를린자유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베를린 홈볼트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해 왔다.  

그런 송교수가 독일유학을 마치고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사연은 1974년 재독 반유신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197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여섯 차례에 걸쳐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대회'를 성사시키는 등 학자로서 남북화해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오랫동안 국가정보원에서 친북지식인으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송두율 교수는 1991년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로 초청되었으나 반정부 활동 전력이 문제되어 무산되었고, 2000년 제5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귀국하려다 국정원의 '준법서약서' 제출요구로 역시 무산되었다. 그러나 2003년 9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초청되었으나, 국정원 조사를 받고 검찰에 구속되었으며, 긴 법정투쟁 끝에 2004년 7월 2일 재판에서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갔다.

당시 송두율 교수는 한국에 오면서 "37년 만에 고향을 찾으면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강산은 네 번 가까이 변했고, 이에 따라 한국사회도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됩니다"라고 하였지만, 돌아온 조국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법정투쟁 가운데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역사가 무죄와 함께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시간을 분명하게 기록하리라 믿습니다. 오랜 외국생활에 시달리는 제 영혼의 외로움을, 멀리서 달래주었던 고향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뜨거운 대지와의 재회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하였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다. 이 시점에서 <경계도시2>는 우리 한국사회의 현주소와 향방에 관해 다시 묻고 있다.

다큐 제작, 7년이나 걸린 이유는?

▲홍형숙 감독
2004년 송두율 교수의 재판이 끝난 뒤로 그동안 촬영했던 400개의 촬영테이프와 100개의 자료테이프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작품을 내놓는데 7년이나 걸린 것은 홍형숙 감독이 그 당시 받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의 귀국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베를린에 가서 일년 가까이 작업해서 내놓은 <경계도시1>의 후일담 형식으로 단순하게 편집할 생각이었으나, 송 교수가 검찰에 구속될 때까지 아카데미하우스에서 합숙하며 겪은 한 달 동안 홍 감독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한국사회는 송 교수가 귀국할 때 예상한 것보다 훨씬 완강했다. 한국사회는 송두율이라는 리트머스 시약이 떨어졌을 때 국정원과 언론, 보수세력이 신속하게 총동원되어 마녀사냥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레드 컴플렉스가 국가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서 곤경에 처한 송 교수를 구하고 진보진영이 받을 타격을 최소화시키고자 했던 '친구'들은 더 깊은 곤경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여론에 끌려다녔으며, 결국 마지막 원칙조차 지키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홍형숙 감독은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10분 이상  편집기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볼 수 없을 만큼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이때마다 함께 쵤영팀에 합류했던 김명학 PD가 떠나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니, 아무리 힘들어도 꼭 만들어야 돼. 이민 갈 준비하고 반드시 만들어야 돼." 그래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작업을 할수밖에 없었다. 다만 남편이자 동료였던 강석필 PD가 고민을 나누어줘서 가능했던 일이다.

'성찰하는' 진보 아니면 희망 없어

그는 영화를 편집하면서 진보진영 안에서도 반성적 사고가 없었음을 개탄했다. 그 한달 동안 이뤄진 일은 지금여기의 우리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는 말하지만, 공적으로 거론하면 좌절감만 얻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거대담론을 일으키는 것보다 우리의 일상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일상적 담론의 소재가 되어 거론되다 보면, 결국 정치적 담론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환부를 드러내고 인정하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 우리 문제를 열린 공간으로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병을 인정하는 순간에 치유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해 '절망'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절망을 제대로 해야 다음이 보인다. 그 다음의 이름이 희망이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내일을 볼 수 있다"

홍형숙 감독은 이 지점에서 '성찰하지 않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는 조국 교수의 입장을 되뇌었다. 진보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또 다른 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있는지' 묻는 데서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지난 세월 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는 크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고 간 것은 없는지 살피자는 것이다. 그걸 <경계도시2>에서 담아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편집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책은 임지현 교수의 <우리 안의 파시즘>이었다. 거기에 강준만 교수의 <대한민국 소통법>이나 <지식인을 위한 교양브런치>, 그리고 조국 교수의 <성찰하는 진보>같은 책들이 도움을 주었다. 여기서는 "권력은 인간에게 영원한 욕구다. 진보세력들 역시 권력추구를 부정하면서 자신들은 신념과 가치를 따라서 일한다고 하지만, 그 또한 균형을 잃는 순간 권력의 다른 모습이 된다."고 경고한다.

경계는 '선'이 아닌 '공간-지대'의 개념이다  

▲ 사진제공/시네마 달
'영원한 경계인'이라고 부르는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사건 속에서 우리는 '경계'란 말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한다고 제안하는 홍형숙 감독은 여기서 '경계'란 '선'의 개념이 아니라 '공간이나 지대'의 기념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계를 '선'(경계선)으로 이해하면, 선을 중심으로 양자는 서로를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송두율 교수를 북측으로 넘어간 사람으로 단죄했으며, 노동당 탈퇴와 준법서약, 독일국적 포기 등을 강요했다. 남한의 진보인사들 역시 '전술적 차원에서'라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송 교수를 채근했다. 이른바 "빨갱이로 남아 있는 한 남한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송두율 교수는 곤경에 처한 남한의 진보진영에게 지은 빚을 갚는다는 심경으로 참담한 마음으로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그 상처가 남아서, 한국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답을 하기 전에 한국사회가 먼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송두율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경계를 공간이나 지대로 해석한다면, '경계'란 양자 사이에 놓여 있는 교집합이며, 비무장지대처럼 서로 만나고 호흡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경계인'이란 이 지대를 좀더 확장시켜 가는 사람이다. 어쩌면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1,2>라는 제목 역시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둔, 또는 좌우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서울 같은 공간이 아니라, 다채롭고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고 길도 다양한 성숙한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괘씸한 영화지만 손 잡아주고 싶은 영화"

홍 감독은 이 영화를 편집하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모두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에게 술 한 잔 사고 싶다는 말이 그 뜻이었다. 그 상처는 그들만의 상처가 아니라 분단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상처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그런 상처를 들추어내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송두율 교수 뿐 아니라 좌우 모두에게 그렇게 반가운 영화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갈라져 다투는 가운데 모두가 아프기 때문이다.

▲홍형숙 감독
그러나 홍형숙 감독은 무성하던 반응이 사그라든 10개월 간의 재판과정 보다, 송 교수가 귀국한 직후인 한 달 동안 내부에서 어떤 진통을 겼었는지 주목한다. 이것은 송두율이라는 프리즘에 비친 한국사회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 아픔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송 교수는 구속 이후 자유롭게 한국사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그는 구속 이후 한국사회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송두율 교수는 한국사회를 가리키며 "냉전의 고도가 37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이 서로를 '내 안에 있는 타자'로 여기길 바랬다. 남남도 아니고 동일인도 아닌, 내 안에 있지만 나와 다른 타인이라 여기고 소통하길 바랬다. 내 안에 있는 존재이기에 떼어버릴 수 없고, 결국 화해해야할 대상으로 여기자는 것이다. 그 교집합 부분이 바로 '경계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런 경계인을 우리는 '생산적인 제3자'라고 부르고, 김지하 씨는 "양측에 틈을 여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송두율이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은 여전히 숙제로 남겨져 있다"고 말하는 홍형숙 감독은  이러한 논의를 무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경계도시2>를 사람들이 많이 보길 원한다. 좌도 우도 아닌 자유로운 개인이 발언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술 권하는 경계도시2'가 되더라도 많은 이들이 술 마시며 이 영화를 소재로 자기 이야기를 하길 바란다. 

이 영화의 다큐프렌즈인 박원순 변호사 조차 "괘씸한 영화지만 손 잡아주고 싶은 영화"라고 평했다. 두고두고 이야기 해야할 영화라 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반가운 영화가 아니라서 이 영화 자체가 조기에 간판을 내리고 날선 경계 위에 서게 될 가능성도 높다. 말미에 홍 감독은 이 영화를 강준만 교수가 꼭 보고 평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송두율 교수가 독일에서 보내온 메일을 소개했다.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러나 따뜻한 봄날처럼 이 영화가 한국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한다."

*3월 18일 서울에서 개봉하는 <경계도시2>는 하이퍼텍 나다, 압구정동 CGV, 홍대앞 상상마당, 이대 안 아트하우스, 시너스 이수점과 파주 이채점에서 상영되며, 이어 지역 영화관과 공동체 상영 등을 기획하고 있다.(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bordercity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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