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내가 사는 아파트는 양재천변에 자리잡고 있어, 밤이면 천변(川邊)을 따라 호박색 가로등 불빛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도곡동 타워 팰리스가 지어지기 전에는 관악산을 물들인 노을 속으로 비행기들이 김포를 향해 떠가는 모습이 정취를 자아내곤 했다. 살아계실 적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관악산 노을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여러 가지 꽃을 돌보곤 하셨다.

처음 이사올 때부터 아래층에 사는 아저씨-오십 중반쯤 나이로 오빠라고 불러야 되는데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우리 집에 드나들며 엄마와 모자지간(母子之間)처럼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냈다. 막걸리를 사들고 혹은 소머리떡을 한 팩 가져오거나 해서 둘이 맛있게 먹으며 별 대단치도 않은 얘기를 나누는 걸 보며 젊은 사람이 별스럽다 느꼈었다. 그러나 십 여 년을 두고 그러는 모습을 보니 한결같은 아저씨의 너그러움 같은 게 우리 집 분위기까지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와 아저씨는 죽이 잘 맞는 커플이었다.

같은 기억, 같은 상처를 안고

어머니와 이 아저씨가 가까이 지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향이 두 분 다 충청도 청양으로, 고향의 개천이나 산사(山寺) 오일 장(場)의 국밥집 풍경을 같이 기억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두 분은 천렵하던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월 초파일에 인절미를 해서 들고 산사를 찾아가던 경험을 되풀이하며 얘기하곤 했다. 이전에 하던 얘기에 조금씩 첨삭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구전(口傳)되는 청양의 역사를 듣는 느낌이어서 푸근했다. 다만 어머니야 나이 들어 그렇게 지낼 수도 있다싶었지만 젊다면 젊은 남자가 좀 특별하다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두 사람의 우정에는 서로의 아픔이 하나씩 엇갈리게 맞물리어 상실한 감정을 보완해주고 있었다. 엄마는 장성한 아들을 잃어버리고 손자들을 키우는 회한을 안고 품고 살아가셨다. 반면에, 아래층 아저씨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서(?) 집안은 유복했으나 늘 마음은 좌불안석이었다고 한다. 혹시나 늦잠이라도 들면 새어머니는 세숫대야에 찬물을 담아다 이 의붓아들의 자는 방에 쏟아부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많이 섭섭한 일이었던가 보다.

아들을 잃은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를 일찍 여읜 아래층 아저씨는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지냈다. 아저씨는 예쁘고 능력있는 보험 세일즈맨 아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어엿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뚜렷하게 직장을 가지지 않은 채, 부모님이 남겨주신 땅을 기반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허망한 춤

어느 날 일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허연 손수건을 들고 혼자 방안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긴 낮 동안 죽은 오빠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냈는지 아들의 영정사진과 앨범들이 방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울화가 치밀어 죽은 오빠의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엄마의 치맛자락에 던지며 냉혹하게 물었다. "엄마, 살거야? 죽을거야? 아들 하나 죽은 게 그렇게 대단해? 그럼 죽어! 죽으면 될 거 아냐!"
삶을 온통 죽음으로 색칠해 버리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데 신경이 다 소모된 상태였다.

그때 아래층 아저씨가 배즙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누가 온다고 해서 진정될 마음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듣는다며 아저씨는 열려진 아파트 현관문을 닫고, 어허어, 으흠으흠 짤막짤막한 허사(虛辭)를 토해내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지 흩어진 사진들을 수습하고 방안을 정돈하며 어머니는 자신이 진정시킬 테니 나보고 바람이나 쏘이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때서야 일하고 들어온 딸이 안 되어 보였는지 어머니는 내게 미안하다며 베란다로 나가 찬물을 마시고 어두운 양재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상실감을 수습하듯 "사실 이 세상 울 일도 읎고 웃을 일도 읎는 거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고부터 늘 그렇게 살아갔다. 이 세상은 무가치한 것, 마음을 붙여볼 대상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가져온 박스 속에서 배즙을 꺼내 어머니와 내게 빨대를 꽂아 한 봉지씩 안겼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살아서 나란히 밥도 먹고 싸우기도 하는 게 이 세상 사는 맛이 아니겠냐며 우리 모녀를 위로했다. 우리 모녀는 코미디스럽게 배즙을 빨대로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배즙이 어머니를 저승에서 이승으로 불러왔는지, 다시는 죽은 자식들 생각은 안할 것이며 살아있는 딸과 손자들을 위해 열심히 살겠노라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딸을 애지중지하는 지를 말하며 어린 딸을 멀리 두고 지내며 혼자 흘린 눈물을 운운하며 돌이켜 나를 향한 회한을 풀어내셨다.

머리에서 증기가 나며 분노로 눈앞이 어질어질해짐을 느끼며, 나는 어머니 가슴에 못이 박힐 말을 했다. 어머니와 나는 우리 모녀의 의지를 넘어 헤어져 지내야 하는 기간이 많았다. 그 시간들이 서로에게 회한으로 변해서 나는 가끔 마음을 보내오는 어머니에게 마음에 없는 말을 토하곤 했다.

아저씨는 다시 으흠으흠 하며 자식이 어찌 부모 마음을 다 알 것이며 어찌 그 사랑을 짐작이나 하겠느냐며 젊은 사람답지 않게 허공을 향해 부처님 말씀-부모은중경?_을 설하였다. 그 분의 어머니는 임종을 맞기 전, 초등학생인 아들의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연필을 모두 깍아서 담아주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분의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다

그렇게 애증을 나누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해마다 초겨울이면 아래층 아저씨는 그 분의 과수원에서 수확한 배 한 박스와 배즙을 어김없이 우리 집으로 올려보냈다. 아저씨는 사각사각 깍아놓은 배처럼 상냥하여 어머니는 아들처럼 의지하고 더불어 막걸리를 마시며 회한을 풀어내셨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웃 사람들의 왕래도 드물어 그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해 아래층 아저씨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얘길 들었다. 몇 달 전에 일어난 사고였다. 가락시장 근처 송파대로는 사고다발 지역인데 고3인 아저씨의 아들이 한밤중에 부모 몰래 오토바이를 타고 송파대로를 달리다 자동차와 부딪쳐 그 자리에서 숨이 졌다고 한다.

아저씨의 한 생이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탓에 세상과 겉돌며 물과 기름처럼 스며들지 못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이제 그 분의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니 뭐라 위로의 말을 하기 어려웠다.

한번 찾아가 뵈어야지 하며 차일치일 미루고 지내다 엊그제 엘리베이터에서 술이 취한 아저씨를 만났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아저씨는 비틀거리며 6층을 누르고, 나를 보더니 7층을 눌러주었다. 나는 뭐라 아는 체를 해야 하는데 말을 건네지 못한 채 으흠으흠 허사를 뱉어내다, 생뚱맞게 뭐 사셨어요? 하며 말을 걸었다. "우리 아들 빤쓰를 샀어요."하며 아저씨는 비닐봉지에서 팬티 서너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1층에서 6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빙하의 얼음 속에 갇혀 얼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냉혹하게 말을 했을까

오래 전, 상실의 슬픔 너머 앞뒤가 텅 빈 허무의 몸놀림을 나는 어머니의 춤자락에서 읽어내고 많이 원망했다. 그런 어머니를 향해 살자고, 살아있는 한 살자는 간절한 사랑의 고백을 한다는 게, 거칠게 쏟아지며 분노가 뒤섞여져 미움의 말을 수없이 쏟아부었다.

죽은 아들의 옷을 사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저씨의 아내와 딸이 남편의, 아버지의 손에 들린 아들의 팬티를 보는 순간 느낄 좌절감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아들 잃은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이전의 내가 어머니에게 쏟아부었던 냉혹한 말을 그들은 하지 말기를 바랬다.

구차한 인생을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천상병 선생의 <귀천(歸天)>을 읊어보면 죽음조차 아름답다. 그 죽음은 순서를 어기지 않는 순리를 타고 오고 가는 것이기에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리라.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이 세상일을 마주하며 처리하시는 구조에 감탄했다. 게다가 사건과 정황의 마디마디에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명대사로 인간의 상처를 싸매주셨다.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끌어다 놓고 치죄하는 현장에서,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는 대사를 처음 읽었을 때, 구차한 인생을 아름답게 이끌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무지개로 떠올랐다. 말씀에 도취되어 한 동안은 누구를 봐도 웃고 상냥했다. 성경 속의 명대사들을 곱씹으며 나도 이런 멋진 대사를 꼭 써보리라 다짐하며.

구원의 에너지를 담은 대사를 찾아내 아저씨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런데 내 입에선 어어, 으흠, 저어, 등등의 뜻을 담지 못한 허사만 맴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그 분과 나누었을지 헤아려 본다.

돌아가시고 시간이 흐르자, 더욱 어머니의 생애가 또렷해지며 자식들을 향해 쏟은 마음들이 하나하나 더욱 색채를 선명히 드러낸다. 지상에 남은 자식들은 또 다시 어머니를 추억하며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은 이렇게 죽음을 넘나들며 서로를 완성시켜가는 하늘의 연(緣)이 맺어준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식이 부모 곁을 먼저 떠나면 부모는 그 자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여의어 간다.

이 봄볕을 보낸다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황혼 속에서 어머닌 베란다 가득 분꽃이며 봉숭아를 심고 가꾸다 담배를 피워물고 관악산 쪽을 바라보셨다. 그 곳이 아들이 머무는 서방정토인양. 아래층 아저씨는 저 노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지 염려스럽다. 빙하기를 지내고 있을 아저씨에게 이 봄볕을 보낸다.


어버이 살아생전 그 은혜 갚고프나

굶주리는 어버이께 제 살을 도려내어
백천 번을 드린들 다 갚지 못한다네


추우신 어버이께 제 몸에 불을 붙여
백천 번을 쬐 드린들 다 갚지 못한다네

늙으신 어버이를 양 어깨에 들쳐 업고
아름다운 수미산을 구경시켜 드리고자
천 번을 돈다 한들 다 갚지 못한다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이규원 20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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