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피해 호소자 인터뷰
성적 언동 가볍게 넘기는 조직 문화
문제 제기했다 피해 더 커져

ㅇ씨는 4년 전 도교육청에서 일하다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당했다. 대화 중 동료(이하 행위자)가 한 성적 표현으로 수치심과 혼란이 컸다. 행위자에게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사과는 없었다. ㅇ씨가 문제를 먼저 알리지 않았는데도 얼마 뒤 행위자의 직속 상급자가 ㅇ씨에게 신체 접촉 여부부터 확인했고, 나서서 중재 자리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행위자는 해명하기 바빴고, 중재는 실망스러웠다.

ㅇ씨는 중재했던 상급자에게 자신의 직속 상급자에게 알리는 것이 어떻겠냐 물었다. 그는 문제를 알리면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행위자가 잘못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ㅇ씨가 생사람을 잡는다고 할 수도 있으니 둘 중 하나는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ㅇ씨에게 직원 상담 예산이 있으니 도교육청 위탁 기관이자 한 천주교 교구가 운영하는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라고 권했다. ㅇ씨는 평소 직속 상급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었고, 중재했던 상급자는 그런 ㅇ씨를 업무적, 심리적으로 지원했기에 고민 끝에 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상담센터에서 ㅇ씨와 상담한 상담센터장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행위자의 발언들이 성희롱이 아니며 ‘손을 잡은 것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ㅇ씨에게 정식으로 행위자에게 사과하고 오해를 풀라고 했다.

ㅇ씨는 상담사의 권유대로 행위자에게 정식 사과했지만 더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됐다. 한 여성 동료는 ㅇ씨 앞에서 꽃뱀이란 말을 입에 올렸고, 행위자는 보란 듯 그 여성 동료와 ㅇ씨 앞에서 성적 농담을 주고받았다. 중재와 상담 뒤 이어진 2차 가해가 고통스러워 ㅇ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퇴사 뒤엔 같은 센터의 다른 상담사와 상담했는데 그 역시 ‘그럴 수 있다, 세상이 다 그렇다’고 했어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정당화돼서는 안 되고, 특히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니죠. 그들은 상담의 기본윤리를 어겼다고 봐요.”

상담사들은 ㅇ씨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상처를 있는 그대로 공감하지 않았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상처만 더 커졌고, 상담사를 준비한 적이 있던 ㅇ씨는 상담사들의 반응을 납득할 수 없었다. 도교육청이었던 직장과 상담센터가 업무적으로 연결돼 있고, 작은 지역사회다 보니 다들 한통속이란 의구심도 생겼다.

ㅇ씨가 겪은 일은 상담사들로부터 “직장 생활 중 흔한 음담패설”, “현실적이고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로 규정됐고, 어느새 ㅇ씨는 “별일도 아닌”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돼 있었다.

"손을 잡은 것도 아닌데....?"

"직장 생활 중 흔한 음담패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

"문제 될 게 없다, 오해다".... 

 

(이미지 출처 = Pxhere)
(이미지 출처 = Pxhere)

ㅇ씨는 같은 업계 취업에도 계속 실패하자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과거에 붙들리지 말고 다시 시작하고도 싶었다. 진로도 바꾸고 자신을 추스르려 했지만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는 혼란과 억울함은 그대로 남았다. 당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생각, 직장 동료들과 상담사들 태도까지 해결되지 못한 시간들은 ㅇ씨의 일상을 침범했다.

결국 그는 퇴직 3년 만인 지난해 10월 직장 내 괴롭힘, 올해 1월 성희롱 및 2차 가해를 도교육청에 정식 신고했다. 도교육청은 신고 한 달 만에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 간 갈등으로,  성희롱 및 2차 가해는  지난 7월 성희롱 아님으로 결론 냈다. 

도교육청의 성희롱, 성폭력고충심의위원회는 “신고인의 진술 중 일관적이고 구체적인 부분이 일부 인정될 수 있지만 당시 사실 확인 및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고 “사건 당시 성희롱이 일어났다는 사실 또는 정황을 증명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불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기관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강화, 2차 피해 예방 등을 실시해 재발방지 대안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심의위에서 행위자는 자신이 한 부적절한 표현을 모두 부인했다고 한다. ㅇ씨는 허언증처럼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비참했다. 일상적 대화에 대한 증거를 대기도 어려웠다.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ㅇ씨는 도교육청이 피해를 호소하는 자신에게만 증거를 요구하지 말고 당시 주변인들을 더 적극 조사해야 한다고 봤다. 

“처음엔 심의위도 열지 않으려 했어요. 묵살하면 저러다 말겠지라는 분위기였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이란 말을 실감했어요. 하지만 속에서 썩어가는 것보단 차리리 깨지고 알을 새로 낳는 게 낫다 싶었어요. 감정이 계속 올라와서 일상생활이 어렵기도 했고요.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란 말을 들을 때마다 기운이 좀 나요.”

ㅇ씨에겐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겪은 일이 문제”라고 봐주는 이들이 필요했다. 사과를 받고 억울함도 풀고 싶다. 당시 상담사들도 상담사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끼길 바란다. 그때로 돌아가 자신의 눈물을 닦아 줘야만 후련하게 새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문이 있다면 다 두드려 볼 참이다.

상담사라면 먼저 내담자의 고통부터 존중
내담자가 사건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기 삶 찾도록 도와야

한편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문제를 다루는 조직과 구성원들의 태도 문제, 공식 절차를 통한 해결이 아닌 사건을 축소하고 무마하는 관행,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적절히 보호되지 않는 문제 등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지적했다.

김태임 상담실장(한국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은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고충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먼저고 그 뒤 현실의 한계점도 같이 말해 줄 수 있다”면서 “상담이 ㅇ씨를 더 힘들게 했다. 5년 넘게 한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상태로 당사자가 매우 피폐해졌을 것이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더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김 상담실장은 “당사자가 지금 가진 고통이 방점이다.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 지금의 고통에 대해 (해당 조직과 관련 기관에) 고민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회구조적, 현실적 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더는 당사자가 발목 잡히지 않고 삶을 찾을 수 있게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지금 가진 고통이 방점"

"상대방의 불편한 감정 존중하고 자기 행위부터 사과해야...."

"사실관계 판단 전, 내담자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먼저" 

이어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을 상담할 때 상담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도 짚었다.

그는 “성희롱을 판단할 때 행위자의 의도는 기준이 아니며, 실제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그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이가 불편함을 느꼈는지가 기준”이라며, “나는 성적 의도가 없었으니 문제 없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행위자는 먼저 상대방의 불편한 감정을 존중하고 자신의 행위를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성희롱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문제이므로 상담사는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내담자에게 당신이 겪은 일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고,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말고 내담자의 고충을 존중하고 해소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년간 현장에서 여성들을 상담해 온 리따 씨(임상심리사) 역시 “상담자가 상황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세상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상황이나 사실관계를 판단하기 전 내담자의 감정부터 충분히 수용하고 공감해야 한다. 이후 내담자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표현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상담”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성적 언동 가볍게 넘기는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문제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상한 사람 아닌 귀한 사람”

한편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성적 언동을 용인하는 조직 문화, 그에 대한 조직 운영진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두나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법)는 성적 언동을 용인하는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성희롱 피해자 보호, 신고로 인한 2차 피해 및 불이익 방지 조치, 사업주의 의무, 위반 시 형사처벌 등 법적 장치가 있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은 성적 언동을 가볍게 넘기는 조직 문화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조직 문화나 문제를 점검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 근본적으로 조직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하지만 이를 막는 것이 조직 문화”라면서 “조직 안에 만연된 성희롱적, 성차별적 언행,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조직은 피해자와 신고인 보호라는 자신의 의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고, 성적 언동에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는 선언도 필요하다. 또 성적 언동을 하는 구성원에 동조하거나 농담으로 넘기지 말고, 정색하고 지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슬아 활동가(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는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어야만 조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제기하는 이들의 존재가 매우 귀하다”면서 “하지만 문제 제기 과정에서 퇴사 등 불이익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문제 제기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문제 제기뿐 아니라 조직 차원의 지속적 점검, 주요 의사결정권을 지닌 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정슬아 활동가는 “성희롱,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의 자리가 성평등한 조직 문화에 대한 선언적 내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구성원이 믿고 문제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조직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 실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ㅇ씨처럼 관련 업계에 재취업이 어려운 문제, 본인이 문제를 공식 제기하기 전 동료들 간 소문이 도는 등 비밀이 유지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조직 차원의 점검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비정규직이라면 계약 연장이 안 돼 문제 제기가 더 어려우므로 정규직 등의 조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육체적 행위는 물론 언어, 시각적 행위도 성희롱에 해당된다. 언어적 성희롱은 음란한 농담,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성적인 사실관계 묻기 등이며 업무 중 음담패설이나 야한 농담으로 당혹감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

성희롱은 성적 언동 등으로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는가로 판단하며 피해자가 반드시 그 당시에 현실적으로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성적 언동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위협적, 적대적 고용환경을 형성해 업무능률을 떨어뜨리게 했는지도 성희롱의 판단 기준이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다면 누구든지 그 사실을 사업주에 신고할 수 있고, 사업주는 조사 과정에서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불리한 처우에는 집단 따돌림, 폭행, 폭언 등 정신적, 신체적 손상 행위 및 이를 방치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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